메뉴 건너뛰기

김형민 법률사무소 민하 대표변호사
김형민 법률사무소 민하 대표변호사


AI 전문 변호사로 일하다 보니 정부 기관이나 언론으로부터 관련 문의를 자주 받는데, 이번 챗GPT의 지브리 사태는 오히려 주변 지인들로부터 저작권 침해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번 사태는 AI를 업무의 영역에서 문화와 놀이의 영역으로 확장시킨 기념비적 사건이다. 챗GPT 개발사 OpenAI는 가입자 수 증가는 물론 사실상 텍스트 데이터 학습이 완료된 상태에서 앞으로 학습해야 할 이미지 데이터를 확보하게 되어 데이터 싸움이라 불리는 AI 산업에서 또 한번 앞서가게 됐다.

지브리 프사는 주로 자신이나 가족의 사진을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 특유의 부드럽고 따뜻한 화풍으로 변환해 카카오톡 프로필이나 SNS에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에는 연예인들이 이를 사용하면서 저작권 침해를 부추긴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지브리 프사는 정말 저작권 침해일까?

법조계에서는 기존 저작권 변호사들의 ‘OpenAI가 저작권자인 스튜디오 지브리의 허락 없이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였으므로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며, 사용자도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침해지인 한국 및 OpenAI와 지브리 스튜디오의 본점 소재지인 미국과 일본의 저작권법 등을 고려할 때 OpenAI는 물론 국내 이용자의 저작권 침해도 인정되기 어려워 보인다.

먼저 OpenAI의 저작권 침해여부에 관해 살펴보면, 스튜디오 지브리의 ‘화풍’은 아이디어나 방법론에 해당하며 구체적인 표현물이 아니므로 저작권 보호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 법원도 “회화에 있어서의 화풍이나 소설류에 있어서의 테마기법 등에 아이디어 자체는 독점적인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단지 그 기법이나 아이디어에 의해 작성된 표현물 자체가 저작권 보호의 대상이 된다”는 입장이다(서울중앙지방법원 89가합39285 판결).

위 판례는 미국의 베이커 대 셀든(Baker v. Selden) 사건을 참조한 것으로, 회계상 새로운 ‘부기 방식’을 개발해 그 ‘해설서’를 발행한 자에게 그 ‘해설서’의 저작권은 인정되지만, 그 ‘부기 방식’에는 저작권을 부여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는 미국 저작권법상 확립된 이론인 아이디어-표현 이분법(idea-expression dichotomy), 즉 아이디어 자체만으로는 저작권으로 보호될 수 없고 창의성을 가진 표현만이 저작권으로 보호된다는 원칙의 초석이 됐다.

또한 일본 문화청은 2024년 3월 ‘AI와 저작권에 대한 고찰’ 보고서에서 ‘작풍, 화풍 같은 아이디어가 유사해도 기존 저작물과의 직접적 유사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저작권 침해로 볼 수 없다’면서 화풍은 아이디어에 해당해 저작권으로 보호하지 않음을 명시적으로 밝혔다.

나아가 침해물 이용자가 해당 작품의 불법성을 인지·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이용한 경우에는 고의성이 추정되나, 사실상 관련 법이 없고 백악관은 물론 수많은 대기업에서 위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국내 이용자의 불법에 대한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

AI 시대를 맞아 ‘AI 학습 저작권’ 등 다양한 형태로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해 인간의 창작의욕을 고취시킬 필요성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관련 법제를 정비해야 함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아직 그레이존(Gray Zone, 불분명한 상태)에 있는 AI 관련 법적 문제들을 기존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 특히 이를 정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이용한 백악관과 대기업이 아닌 보통 사람의 따뜻한 사진 한 장에 엄격한 법적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형민 법률사무소 민하 대표변호사

국민일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3888 62년 만에 여성만 탄 우주선 비행했다 랭크뉴스 2025.04.15
43887 [사설] 中 희토류 수출 중단, 공급망 다변화로 자원전쟁 대비해야 랭크뉴스 2025.04.15
43886 EU, 美와 관세협상 당일 '보복관세 90일 보류' 확정 랭크뉴스 2025.04.15
43885 뉴욕증시, 스마트폰·컴퓨터 관세 유보 조치에 고무…급상승 출발 랭크뉴스 2025.04.15
43884 "많은 사람 구속해봤지만‥이게 왜 내란?" 큰소리 랭크뉴스 2025.04.15
43883 유엔 "미얀마 강진 잔해 트럭 12만5천대 분량" 랭크뉴스 2025.04.15
43882 [사설] ‘평화 계엄’ 주장한 尹… 여전한 궤변과 책임 떠넘기기 랭크뉴스 2025.04.15
43881 “10년 내 세상 바꿀 양자컴퓨팅 리더 찾아라” 미 DARPA, 옥석 가리기 프로젝트 랭크뉴스 2025.04.15
43880 쿠르스크 주민들 "우린 지옥에 살았다"...조국 러시아 원망 랭크뉴스 2025.04.15
43879 블루 오리진, 여성만 탑승한 우주선 발사…1963년 이후 처음 랭크뉴스 2025.04.15
43878 누적 부채 21조에 'KTX 교체' 임박…적자구조 개선 논의 필요 랭크뉴스 2025.04.15
43877 비상계엄 당시 ‘상관 지시 거부’한 군 지휘관 “항명죄로 징역형 구형 박정훈 대령 떠올랐다” 랭크뉴스 2025.04.14
43876 지하 공사장 인근 땅이 꺼진다…서울·부산 계속되는 '발밑 공포' 랭크뉴스 2025.04.14
43875 오늘·바로·지금…‘새벽’으론 부족한 배달 경쟁 랭크뉴스 2025.04.14
43874 [Who] 트럼프 관세 정책 핵심… 경제 책사 ‘스티븐 미란’ 랭크뉴스 2025.04.14
43873 폐기될 샌드위치 노숙자 나눠줬다가 해고된 프랑스인 랭크뉴스 2025.04.14
43872 "2년 전 지반 불량 지적했는데‥" 위험 신호 무시했다가 피해 커졌나? 랭크뉴스 2025.04.14
43871 가짜 신분증으로 전자담배 구매…규제 빈틈 노린 학교 앞 ‘무인 판매점’ 랭크뉴스 2025.04.14
43870 中의존의 덫…삼성은 제조기지 이전했는데 탈중국 못한 애플, 왜 랭크뉴스 2025.04.14
43869 尹, 93분간 셀프 변론… “공소장 난잡” 검찰 직격 랭크뉴스 2025.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