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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대통령 윤석열의 파면을 선고한 2025년 4월4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열린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 탄핵 반대 집회에서 한 지지자가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준만 | 전북대 명예교수

“그들은 나를 가두는 원을 그렸다. 이교도, 반역자, 경멸할 자식이라 소리치며. 그러나 나는 사랑과 승리의 정신을 가졌다. 우리는 그들을 받아들이는 원을 그렸다.” 미국 시인 에드윈 마컴의 말이다. 대통령 윤석열 파면이 갖는 의미와 이후 벌어질 일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이 명언을 떠올렸다. 앞으로 전국에 걸쳐 ‘원 그리기’ 게임이 벌어질 거라는 예감과 함께 말이다.

훗날 이 시절을 겪지 않은 사람이 “재임 시절 윤석열은 어떤 대통령이었나?”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련다. “엉터리였어.” 누군가 ‘엉터리’라는 단어가 풍기는 희극성에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면, 나는 이런 반문을 하고 싶다. “대통령제라는 제도 자체가 코미디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세요?”

미국 작가 존 스타인벡은 “우리는 대통령에게 도저히 한 사람이 해낼 수 없는 일과, 도저히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책임과, 도저히 한 사람이 견뎌낼 수 없는 압박을 주고 있다”고 했다. 그래놓고선 대통령에 대한 복종을 신앙으로 삼은 사람들이 그의 주변을 둘러싸게 하고 있으니, 이게 도대체 무슨 미친 짓인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간 윤석열의 품성에 대해 많은 말이 나왔지만, 내가 가장 눈여겨본 명언은 한겨레 선임기자 성한용이 지난해 10월 ‘정치 막전막후’에 소개한 윤석열 동갑내기 친구의 말이다. “너는 남의 말을 안 듣잖냐. 그런 사람은 정치하면 안 된다.” 검사 시절 성품이 맑은 어느 술친구가 윤석열에게 “너는 정치하지 말라”고 충고했는데, 윤석열이 이유를 묻자 내놓은 대답이라고 한다.

윤석열이 남긴 교훈으로 그간 가장 많이 거론된 게 “정치 경험이 없는 사람이 곧장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였는데, 나는 이것보다는 “남의 말을 안 듣는 사람은 정치하면 안 된다”가 더 마음에 든다. 윤석열은 남의 말을 안 듣는 쇠고집 덕분에 ‘스타 검사’가 되었고 이게 대통령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지만, 바로 그 쇠고집 때문에 비상계엄 선포라고 하는 자폭을 하고 말았다.

윤석열이 말을 듣는 유일한 사람이 부인인 김건희였지만, 이는 더 큰 문제를 일으켰다. 김건희는 공사 구분 의식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김건희는 집권 초부터 윤석열의 브레인이자 매니저를 자임하면서 계속 문제를 일으켰다. 이를 우려한 지인들이 고언을 하면 윤석열은 관계 단절로 대응했다. 이게 집권세력 내부에 알려지면서 김건희 문제는 절대 성역이 되었고, 결국엔 ‘명태균 게이트’의 발판이 되고 말았다. 이 사건이 야당에서 제기한 비상계엄 선포의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모든 게 실소를 자아내게 만드는 엉터리의 연속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윤석열을 ‘극우 현상’과 같은 거시적 관점에서 보는 논의가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 논의를 지지한다. 다만 조심해야 할 점도 있다. 극우 연구자 카스 무데는 극우의 특징으로 반민주주의, 권위주의 국가관, 외국인 혐오, 인종주의, 배타적 민족주의를 추출해냈다. 한겨레 기자 이승준은 3월17일치에 무데의 정의를 수용해 “내란이 깨운 ‘극우 880만명’…그들은 민주주의 자체를 싫어한다”는 제목의 좋은 기사를 썼다.

이승준은 비상계엄이야말로 ‘반민주주의’(군을 동원한 헌정질서의 중단)와 ‘권위주의 국가관’(“계엄은 정당한 통치권 행사”)과 ‘외국인 혐오’(“중국 간첩의 국정 교란”) 같은 극우의 핵심 성분을 ‘명분과 행동’ 안에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한국 극우’는 ‘12·3 계엄에 대한 지지 여부’로 판별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그럴 경우 극우의 규모는 유권자의 20%(880만명) 안팎으로 추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윤석열 탄핵에 반대한 이들을 모두 극우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지만, 이건 너무 과하다. 극우에 대한 유비무환의 취지로 그러는 것임을 이해하지만, 극우를 가두는 원을, 그것도 크게 그리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민주주의 역사가 오래된 유럽과는 달리 역사가 짧은 한국형 극우의 순도 문제를 따져보아야 한다. 단지 “저쪽이 싫어서” 하게 된 반작용에 가까운 일련의 언행을 한국의 극심한 승자독식 체제에 대한 고찰 없이 피상적인 외양만 보고 판단해도 괜찮을까?

우리 모두 국회의장 우원식이 윤석열 파면 직후 대국민 담화를 통해 밝힌 다음 메시지에 주목하는 게 좋겠다. “대립과 갈등, 분열을 부추기는 일체의 행위를 중단하자. 극단적 대결의 언어를 추방하자. 지금 대한민국이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극단적인 갈등과 분열을 해소하는 것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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