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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23개월 실질임금 마이너스에 고통↑
이시바 "2030년 전 최저임금 1500엔"
매년 7% 올려야… 중기 "그럼 휴·폐업"
제도 개편 등 모두 만족할 해법에 골몰
4일 일본 도쿄 시내에 현재 도쿄도 최저임금(1,163엔)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도쿄=류호 특파원


"문재인 정부 때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은 어떤 게 있었나요?"

일본 노동 주무 부처인 후생노동성은 지난 1월 말 한국 노동 관련 전문가에게 "한국 사례를 공부하고 싶다"며 강의를 부탁했다. 일본 정부가 연구하고 싶은 분야는 '최저임금 1만 원 시대'를 약속한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사례였다.

일본 정부가 한국 사례를 배우려 한 건 당시 한국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노사 간 갈등, 보수·진보 간 격한 대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대선에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문 대통령이 취임한 지 두 달 뒤인 그해 7월 2018년 최저임금을 시간당 7,530원으로 결정했다. 2017년 최저임금보다 16.4% 올린 것으로, 2000년대 들어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인상률이었다. 가장 높았던 때는 2001년 16.6%였다. 당시 공약을 이행하려면 연평균 15.7%씩 올려야 해 재계와 소상공인들은 격렬히 반발했다.

사회적 갈등이 커지자 이듬해 인상률은 10.9%로 떨어졌다. 이후 코로나19 사태로 경기가 얼어붙으며 최저임금 인상률은 3%를 넘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논란만 남긴 채 임기 내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에 실패했다. 한국의 최저임금이 1만 원을 넘은 건 1만30원이 된 올해에 이르러서다.

'최저임금 1,500엔' 5년 앞당기려는 이시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2017년 5월 24일 청와대 여민관 대통령 집무실에 설치한 일자리 상황판을 보면서 일자리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은 한국 사례를 통해 사회 갈등은 물론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률과 소비 진작 등 실제 경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연구하려 했다. 후생노동성 연구회에 참석한 관계자는 "일본 정부는 한국 사례를 통해 부작용 해소 방안을 찾는 데 큰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한국 사례를 반면교사 삼으려 한 건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때문이다. 이시바 총리가 약속한 최저임금 목표치를 달성하려면 한국처럼 급격한 인상이 불가피하다. 이시바 총리는 지난해 10월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2030년 전까지 전국 평균 최저임금을 1,500엔(약 1만4,870원)으로 올리겠다"고 밝혔다. 이시바 총리는 전임인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가 약속한 '2035년 최저임금 1,500엔 시대'보다 5년이나 앞당기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일본은 47개 광역자치단체마다 최저임금이 달라 47개 지역의 평균치로 계산한다.

일본의 현 평균 최저임금은 1,055엔(약 1만460원)이었다. 이시바 총리의 공약을 이행하려면 5년 안에 455엔을 올려야 한다. 인상률로 따지면 연평균 7.3%에 달한다.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률(5.1%)도 '높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보다 매년 2%포인트씩 더 올려야 한다. 노동자들은 환영했지만, 기업과 소상공인들은 "갑자기 이렇게 올리면 어떡하냐"는 불만을 쏟아냈다.

계속된 고물가에 주머니 얇아지는 일본 국민

한 시민이 지난달 30일 서울 시내 한 마트에서 장바구니 여러 개를 든 채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이시바 총리 입장에선 일본 국민의 삶을 생각하면 서둘러 올려야 한다. 최근 10년간 최저임금 인상률이 2~3%대에 머물러 '너무 낮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무엇보다 계속된 물가 상승에 먹고살기 어렵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일본의 2월 명목임금 인상률은 전년 2월 대비 1.8% 증가했고, 26개월 연속 상승했다. 그러나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지난 2월 실질임금은 지난해 2월보다 1.3% 감소해, 1월 실질임금 감소율(1.1%)보다 더 큰 폭으로 줄었다. 물가가 임금보다 더 올랐기 때문이다. 23개월 연속 감소세였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실질임금 23개월 연속 마이너스는 2008년 리먼 쇼크 전후(2007년 9월~2009년 7월)를 뺀 1991년 이후 역대 최장기간"이라고 평가했다.

물가 압박은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본 신용조사업체 데이코쿠데이터뱅크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지난해보다 값이 오른 식품 품목은 이미 1만 개를 넘어섰다. 지난해 전년 대비 값이 뛴 식품 품목은 약 1만2,000개였는데, 석 달도 안 돼 지난해 연간 수치와 가까워진 것이다. 데이코쿠데이터뱅크는 "올해 지난해보다 값이 뛸 식품 품목은 2만 개 전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기·상인들 "진짜 1,500엔 갈까" 불안

3일 일본 도쿄 시내 한 맥도널드 점포 외관에 아르바이트 모집 광고 포스터가 걸려 있다. 도쿄=류호 특파원


일본 대기업들의 올해 임금 인상률이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5%를 넘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식품이나 생필품 중심으로 물가가 오르니 국민들은 체감하기 어렵다. 기우치 다카히데 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아사히신문에 "물가 상황이 크게 바뀌지 않으면 올해 실질임금 증감률은 0에 근접한 상태로 갈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질임금 마이너스 상황을 벗어나려면 임금 인상률이 7~8%대가 돼야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올리면 기업과 소상공인들은 문을 닫아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지 모른다. 현 최저임금도 허덕이는데 지금보다 훨씬 오르면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푸념이 곳곳에서 나온다.

일본 최저임금 인상률 추이. 그래픽=송정근 기자


도쿄 다이토구에서 식품유통업체를 운영하는 50대 재일동포 이모씨는 지난 1월부터 매일 저녁 경리 직원 일을 대신하고 있다. 이씨는 그동안 경리 업무는 파트타임 직원에게 맡겼는데, 갑자기 경리 일을 해 온 30대 일본인 직원 A가 "시급이 너무 낮아 더는 못 하겠다. 다른 일을 구하겠다"며 사표를 냈다. A는 그동안 시급 1,200엔(약 1만1,700원)을 받았는데 100엔 더 많이 주는 식당으로 옮기겠다고 한 것이다.

현재 도쿄의 최저임금은 47개 광역단체 중 가장 많은 1,163엔으로, 이씨는 A에게 약 40엔 더 지급해 왔다. A를 붙잡으려면 1,300엔 이상을 줘야 하지만 회사 매출을 생각하면 막막했다. 대신 "점심 식대와 교통비를 더 올려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소용없었다. 이씨는 "석 달째 파트타임 직원을 못 구할지 몰랐다"며 "시급을 올려야 하나 고민되지만, 일본 정부가 제시한 시급 목표치를 따라가기엔 버겁다"고 토로했다.

차등제 줄이고 노사 윈윈 해법 찾기에 집중

1일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 앞에 2025년 최저임금 안내 입간판이 설치돼 있다. 뉴스1


많은 일본 중소기업은 '정부가 시급을 진짜 1,500엔까지 올릴까' 반신반의하며 한숨을 내쉰다. 일본상공회의소가 지난달 5일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중소기업에 미치는 영향'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조사에 응답한 중소기업 3,958개 중 19.7%가 "이시바 정부의 시급 1,500엔 인상 정책을 수용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응답한 중소기업 중 15.9%는 "정부 목표대로 시급을 올리면 휴·폐업을 생각하겠다"고 답했다. 도쿄를 뺀 지방 기업만 추리면 휴·폐업을 검토하겠다고 답한 지방 중소기업은 20.1%나 됐다. 상공회의소가 정부의 최저임금 방침에 대한 찬반 의견을 조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사히는 "상공회의소는 '기업 지불 능력을 뛰어넘는 최저임금 인상이 지역 생활을 지탱하는 산업·상업 인프라를 무너뜨릴 수 있다'며 이시바 정부 방침에 반대해 왔다. 이번 조사 결과가 이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일본은 노사 모두 만족할 만한 '적당한 최저임금 인상률'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장기 불황 탓에 현실에 맞지 않는 최저임금을 오랜 기간 방치해 생긴 문제들을 서둘러 해소해야 한다. 일본이 2년 전 최저임금 지역별 차등 등급을 4개에서 3개로 줄인 것도 이 작업의 일환이었다.

일본 정부는 2023년 4월 지역별 차등 등급을 4개에서 3개 구간으로 조정했다. 일본의 최저임금 제도의 고질적 문제인 지역별 격차를 뒤늦게 완화한 것으로, 1978년 이후 45년 만에 등급 체계를 개편했다. 지역별 격차가 너무 크면 지방에서 인력이 유출되는데, 이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며 최저임금 인상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김명중 닛세이기초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최저임금 차등 요소를 줄인 결과 최저임금이 낮은 지역들의 임금 수준이 전반적으로 상승했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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