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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3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하고 있다. 당시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통해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유 대한민국을 재건하고 지켜낼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대통령실

“망했다.”

12·3 비상계엄의 밤. 차마 믿기 어려운 계엄령 발동 소식을 접하고 친윤계 핵심 의원에게 전화를 건 또 다른 친윤계 의원은 수화기 너머 이 같은 외마디 소리를 들었다.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으로 치부되던 헌법 77조의 계엄령 선포권을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느닷없이 꺼내 들었을 때부터 이처럼 결말은 예정돼 있었다.

한국을 발칵 뒤집은 계엄령이, 2시간 30분 만에 끝났을 때부터 많은 사람이 12·3 비상계엄에 관해 같은 질문을 던졌다. ‘윤석열은 왜 계엄을 한 건가.’ 계엄 직후 관저에서 윤 전 대통령을 만난 인사들의 물음도 같았다. 윤 전 대통령의 답변 역시 매번 비슷했다. “조금만 기다려 보라.” 뭔가 더 있을 것이란 암시였다. 대통령실의 일부 참모 역시 계엄 직후 같은 말을 되뇌었다.

그 실체를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탄핵소추안이 국회 문턱을 넘기 이틀 전인 지난해 12월 12일 오전 진행한 긴급 담화에서 윤 전 대통령은 “제가 비상계엄이라는 엄중한 결단을 내리기까지 그동안 직접 차마 밝히지 못했던 더 심각한 일들이 많이 있었다”며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부정선거 의혹은 2020년 총선 이후 아스팔트 우파에서 떠돌던, 그저 확인하지 못했던 잡음에 불과하지 않던가. 윤 전 대통령이 부정선거와 관련해 새롭게 공개한 사실도 없었다. 그렇다면 무모한 선택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도 무엇이 그를 군까지 동원하게 만들었을까.

비상계엄 선포 직후인 지난해 12월 4일 자정 즈음 계엄군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계엄 이후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과 주변의 전언을 종합해 보면 윤 전 대통령은 꽤 일찍부터 계엄을 하나의 선택지로 고려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평소에도 종종 “확 계엄 해버릴까”라는 말을 했었고, 지난해 4·10 총선에서 민주당이 대승을 거둔 뒤로는 “다 쓸어버리겠다”는 말을 술자리 등에서 서슴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그러한 사고의 흐름은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기소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공소장에도 드러나 있다. 공소장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총선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 안가에서 당시 김용현 경호처장, 여인형 방첩사령관 등과 식사를 하며 “비상대권을 통해 헤쳐 나가는 것밖엔 방법이 없다”고 말했고, 총선 4개월 뒤인 지난해 8월엔 “현재 사법 체계 하에선 (야당 정치인 등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므로 비상조치권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윤 전 대통령의 독불장군 스타일도 결국 그를 옭아맸다. 정치 입문 9개월 만에 대권을 쟁취한 그에게 여의도 정치는 소모적으로 여겨졌고, 당정 관계 역시 수직적으로만 운영됐다. 대통령실 참모가 그에게 입바른 소리를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전직 용산 참모는 “윤 전 대통령은 대통령실 참모는 물론, 여당 중진 의원도 자신을 따르는 부하 정도로 여겼다”고 말했다.

합리적 참모 대신 그의 곁은 굳건히 지킨 사람은 충암고 1년 선배이자 임기 초반 경호처장으로 지근거리에 있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었다. 친윤계 중진 의원은 “윤석열 정부 초반 2년은 여당이 한동훈을 넘지 못했고, 이후 1년은 김용현을 넘지 못했다”며 “대통령이 한동훈과 멀어지면서 김용현에 의지하게 됐다”고 했다.

계엄 직후 관저에서 윤 전 대통령을 만난 여권 인사들의 공통된 전언은 “상황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것 같더라”였다. “군대를 안 다녀와서 그런지 계엄을 선포하면 군대가 명령에 따라 착착 움직일 줄 알았던 것 같다”는 전언과 함께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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