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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갈등 넘어 통합으로]
<상>심리적 내전 막전막후
불법계엄 후 4개월 탄핵 정국 갈등 증폭
헌재 만장일치 결정으로 반발 줄어들어
"'휴전' 아닌 '평화' 달성하도록 노력해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를 재판관 만장일치 의견으로 인용하자 4일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날이 날이니까 큰마음 먹고 물어봤어요. '언니는 탄핵 어떻게 생각해?'라고요."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파면을 선고한 4일. 극우 성향 언니를 뒀다는 민주당 지지자 서모(58)씨는 "예전에 정치 얘기를 하다가 분위기가 험악해진 적이 있어서 그간 참았는데 오늘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자매는 설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재명(더불어민주당 대표)은 너무 싫다"는 서씨 언니 목소리가 점차 높아졌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 파면이라는 중대사를 마주해서일까. 자매는 논쟁 속에서도 여느 때와 달리 공통점을 하나 찾아냈다.
"얘기를 하다보니 어쨌든 둘 다 '나라 걱정'을 하는 건 같다는 걸 알게 됐어요. 뭐랄까, 꽉 막혀 있던 말문이 트인 것 같다고 할까요."
서씨는 "저쪽 사람들(윤 전 대통령 지지자)은 죄다 계엄 옹호자에 비상식적 추종자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대화를 하니 좀 낫더라"며 "답답하고 말이 안 통할지언정 이렇게 서로 묻고 답하면 접점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고 안도했다.

'12·3 불법계엄' 이후 이어진 탄핵 정국은 한국 사회를 극한의
'심리적 내전'
상태로 내몰았다. 김상일 정치평론가는 "의견이 다른 사회 구성원을 인정하지 않고 확신범처럼 싸우는 상황이 곧 심리적 내전"이라고 정의했다. 지난 넉 달간 한국 사회가 이랬다. 이제 '심리적 내전'을 멈추고 국민 통합을 이뤄야 할 시점이다. 헌재가 재판관 8명의 전원 일치로 윤 전 대통령 파면을 결정하며 불복의 여지를 차단한 걸 통합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친밀한 관계부터 등 돌렸다

3월 2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가 열리고 있다. 왼쪽 사진은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17차 범시민대행진, 자유통일당 탄핵 반대 집회. 연합뉴스


6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계엄과 탄핵이 유발한 균열은 가족과 친구 등 친밀한 관계부터 파고들었다. 탄핵 찬반 집회가 한창이던 지난달 중순 헌재 앞을 찾은 윤 전 대통령 지지자 황귀환(65)씨는 "토요일마다 집회에 나가니 아내가 이혼하자고 하더라"며 "나라가 중국에 넘어가게 생겼는데, 까짓거 이혼하면 그만"이라고 단언했다. 직장인 김모(29)씨도 "아빠가 보수 집회에 나가는 걸 보고 크게 다툰 뒤 결국 가족 단톡방(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도 나와버렸다"며 "계엄이라는 반헌법적 행위를 두둔하는 걸 견딜 수 없어 몇 달째 가족 얼굴을 보지 않고 있다"고 털어놨다. 탄핵 반대를 주장했던 백석지(72)씨는 "친구 모임이 여럿 있었는데 정치적으로 의견이 달라 연을 싹 끊었다"며 "요즘은 이것(집회 참석)만 하고 지낸다"고 전했다.

학교, 직장 등 공동체의 신뢰도 무너졌다. 자신을 '골수 우파'라고 소개한 초등교사 이모(55)씨는 "학교에서 말이 통하는 사람은 사서 선생님 한 분뿐"이라며 "나머지 직원들은 정치적으로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말들을 너무 많이 해서 연구실에 들어가기도 싫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사서 선생님도 남편이 좌파라서 많이 외로워하더라"며 "둘이서 '우리 학교 사람들 다 잡아가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전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소식에 격분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폭동을 일으킨 1월 19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주변을 경찰 차벽이 둘러싸고 있다. 박시몬 기자


사회적 분열은 사법부를 향한 비방으로 이어졌다. 윤 전 대통령 구속 직후 서부지법 난동 사태가 터졌고, 일부 헌법재판관들을 향해선 온갖 인신 공격이 자행됐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 전 대통령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지귀연(51·사법연수원 31기) 부장판사에 대해선 화교 출신 스파이라는 황당한 루머가 퍼지기도 했다. 그가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소속이란 점을 들어 공정한 재판이 어려울 거란 추측도 쏟아졌다. 그러나 지 부장판사가 구속 기간 산입이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권 등 절차적 문제를 이유로 윤 전 대통령의 구속 취소를 결정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180도 태도를 바꿔 "애국 판사"라고 열렬히 칭송했다. 헌법수호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 보수 세력이 민주주의 시스템의 근간을 이루는 국가 기관을 불신하는 모습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명확한 결정문·감정 소진에 갈등 줄어

4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열린 보수집회 참가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이 선고되자 침통해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헌재 선고 당일 또다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날 거란 우려도 컸다. 그러나 실제론 달랐다. 파면 결정 이후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모인 집회 현장 곳곳에서 오열과 탄식이 터졌지만 심각한 폭력 행위는 벌어지지 않았다. 선고 관련 인명피해 역시 1건도 없었다. 경찰이 서울에만 1만4,000명의 경찰병력을 투입하고 헌재 주변 150m를 아예 '진공 상태'로 만드는 등 철저히 대비해서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도 선고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시민들의 모습이 여기저기서 목격됐다. 직장인 A(26)씨는 "계엄을 옹호하는 동생이랑 말다툼을 하다 동생이 한 달 동안 집을 나갈 정도로 심하게 싸운 적이 있었는데, 선고 당일 의외로 별말 안 하고 차분하더라"고 했다. 그는 "헌재 선고를 생중계로 보며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동생과 차분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헌법재판관들이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린 데다 △헌재 결정문이 탄핵 사유를 명확히 짚고 있어 반발의 여지가 줄었으며 △장기화된 탄핵 찬반 집회로 국민들이 감정적 소진 상태에 이르렀다
는 분석을 내놨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헌재가 친절한 결정문을 통해 탄핵 반대 진영이 주장하는 논리를 조목조목 잘 반박해 시민들이 잘 설득됐다"며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된 탄핵 정국에 많은 사람들이 지쳐 있었기에, 자신이 원치 않는 결과가 나왔다 할지라도 일단 결론을 봤으니 마음이 편해지는 심리 상태에 이른 점도 있다"고 짚었다.

지금 상태가 일시적 '휴전'에 그치지 않도록 하려는 노력이 시급하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은 이미 분단이라는 정치적 불확실성을 내재하고 있는데, 남한 내에서도 사회가 두 동강 났다"며 "이 같은 갈등이 지속된다면 한국의 대내외적 위기가 지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주형 K-민주주의연구소 부소장 역시 "갈등 상황이 해결되지 않으면 사법부 불신과 폭력 행위가 만연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치권부터 앞장서 통합의 메시지를 내놔야 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치권이 객관적 정보를 수혈해야 한다"며 "가짜뉴스에 빠진 이들이 무엇을 오독하고 있는지 이해할 때 건전한 여론을 형성하고 사회통합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물론 국민 개개인의 노력도 필요하다. 임명호 교수는 "대화와 설득은 민주주의의 근간으로, 무엇보다 개인 간의 대화가 가장 중요하다"며 "침묵하고 반목하기보단 소통하며 상대를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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