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5년 영국 귀족들이 존 왕의 전횡에 반발하며 받아낸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 대헌장)는 국왕 권력의 한계를 명시한 문서다. 귀족 동의 없이 과세할 수 없고, 적법한 절차 없이는 자유인을 체포·감금할 수 없다는 등의 내용이다. 귀족 권리 보장 의도에서 출발했지만,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정신은 오늘날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었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윤석열 파면 결정문을 두고, 원로 보수 논객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서 계속 레퍼런스로 찾아보면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한국의 마그나 카르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결정문은 민주공화국의 시민 기본권과 통치구조 작동 규범을 엄중하게 되새긴, 민주주의 교과서라 부를 만하다. 헌재는 ‘대통령도 헌법 위에 있을 순 없으며, 주권자는 오직 국민’이라는 명제를 명징하게 환기했다. 114쪽에 이르는 결정문에 ‘헌법’이 389번, ‘국민’ 124번, ‘민주주의’가 32번 등장한다.
윤석열은 비상계엄 선포와 포고령 발령, 국회·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군경 투입, 법조인 위치 확인 시도 등 일련의 행위로 국민주권주의, 대의민주주의, 권력분립원칙, 영장주의,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 등을 위반했다. 또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단체행동권, 직업의 자유, 신체의 자유,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 및 불체포 특권, 정당 활동의 자유, 선관위·사법권 독립성 등을 침해했다고 헌재는 지적했다. 헌재는 윤석열이 “민주주의에 헤아릴 수 없는 해악”을 가했다고 단언했다.
결정문은 결론부 첫 문장을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시작하는 등, 민주주의 원리를 세심하게 설명한다. “민주주의는 대등한 동료 시민 간의 (…) 자율적이고 협력적인 공적 의사결정을 본질로 한다.” 또 헌재는 국회의 신속한 비상계엄해제요구안 가결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라고 주권자의 공로를 기록했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와닿는 구절을 필사하며 돌아가며 낭독하자고만 해도 시민 헌법교육으로 최적일 것 같다”고 했다. 사실, 헌재 결정문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크게 감탄하는 것은, 거대한 반동과 선고 지연으로 너무도 오래 가슴 졸인 때문도 있을 것이다. “이러려고 늦었구나.” 명쾌하고 단단한 결정문에 안도하며, 사람들은 헌재를 다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