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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결정문에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이유로 들었던 야당의 전횡을 헌법 테두리 안에서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다며 다섯 가지를 적시했다. 12·3 계엄은 “야당의 전횡과 국정 위기 상황을 국민에 알리기 위한 경고성 계엄이었다”는 윤 전 대통령의 주장을 “이해한다” “정치적으로 존중돼야 한다”면서도 “민주적 절차를 따랐어야 한다”며 헌법적 자구책들을 이례적으로 열거하면서다.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정진석(오른쪽) 국민의힘 의원의 신임 비서실장 임명 발표를 한 뒤 단상에서 먼저 내려가고 있다. 2024.04.22.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동아일보 최혁중




총선·개헌·국민투표·정부입법안·정당해산심판…尹의 기회들
헌재가 지적한 첫 번째 기회는 지난해 4월 22대 총선이었다. “피청구인이 취임한 이래 국회의 다수의석을 차지한 야당이 일방적으로 국회의 권한을 행사하는 일이 거듭됐고, 이는 정부와 국회 사이에 상당한 마찰을 가져왔다” 등 약 1200자 문장으로 국회를 비판한 뒤 “(그럼에도) 헌법이 예정한 자구책을 통해 견제와 균형이 실현될 수 있도록 했어야 한다”며 한 말이다.

헌재는 “현행 헌법은 대통령의 국회해산권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는 임기 중에 국회를 새롭게 구성하는, 즉, 국회해산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거둘 기회를 갖는 경우가 있다”며 “피청구인의 경우도 자신의 취임으로부터 약 2년 후에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선거에서 그와 같은 기회를 가졌다”고 했다.

2024년 4월 10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와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당 관계자들과 국회에서 총선 출구조사 결과 발표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야당의 전횡을 바로 잡고 피청구인이 국정을 주도하여 책임정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국민을 설득할 2년에 가까운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은 취임 초를 제외하곤 줄곧 국정 지지율이 20~30%대로 빨간불을 켰고, 언론도 야당을 배제 대상이 아닌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는 ‘협치’를 주문했지만 따르지 않았다. 결국 22대 총선은 더불어민주당 175석, 국민의힘 108석으로 야당의 압승이었다.

헌재는 “그(총선) 결과가 의도에 부합하지 않았다고 하여, 국민의 의사를 배제하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됐다”며 두 번째 카드로 개헌을 제시했다. “현행 권력구조가 견제와 균형, 협치를 실현하기에 충분하지 않고, 국회의 반대로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실현할 수 없으며, 선거제도나 관리에 허점이 있다고 판단했다면 헌법개정안을 발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1987년 체제에서 확립된 현행 헌법은 제왕적 대통령제, 죽기살기식 양당제라는 부작용이 심화하며 권력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있었다. 윤 전 대통령도 줄곧 “의회 독재”라는 말을 썼다. 이에 헌재가 ‘헌법개정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헌법 128조)는 규정을 활용할 수 있었다고 한 것이다.

헌재는 개헌이 아니더라도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었다”는 우회로도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은 “주요 정책들은 야당 반대로 시행될 수 없었다”고 주장했는데, 헌법은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72조)고 규정한다. 윤 전 대통령이 3대 국정과제로 꼽았던 연금·교육·노동개혁을 야당이 반대했다면 직접 국민 의사를 묻는 국민투표에 부의할 수도 있었단 뜻이다.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뉴스 속보를이 서울역에 시민들이 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아울러 헌재는 “정부를 통해 법률안을 제출하는 등 권력구조나 제도 개선을 설득할 수 있었다”다고도 했다. ‘국회의원과 정부는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다’(헌법 52조)는 규정을 제시하며 입법 활동은 국회뿐 아니라 정부도 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 것이다.

헌재는 마지막 카드로 정당해산심판 제도를 언급했다. “야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인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구체적 위험성을 초래하는 데 이르렀다고 판단했더라도, 야당의 존립과 활동을 보장하고자 하는 헌법제정자의 규범적 의지를 준수하는 범위에서 헌재에 정당 해산을 제소할 것인지를 검토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즉 윤 전 대통령이 보기에 민주당이 “공산주의·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세력”(2023년 8·15 경축사), “국정 마비와 국헌 문란을 벌이고 있는 세력”(지난해 12·12 담화)이라면, ‘정부는 헌재에 정당 해산을 제소할 수 있다’(헌법 8조 4항)는 규정을 검토해 실제 제소하든지 해야 했다는 것이다.



단 두 문장 朴의 40배, 尹 3852자 결론…“특별히 심혈 기울인 듯”
헌재는 이 같은 방안을 모두 언급한 뒤 “피청구인은 현재의 정치 상황이 심각한 국익 훼손을 발생시키고 있다고 판단했더라도, 헌법과 법률이 예정한 민주적 절차와 방법에 따라 그에 맞섰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피청구인은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하여 국민을 충격에 빠트리고,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했다”면서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결정문 중 결론 부분.
이러한 내용은 모두 결정문 ‘결론’ 부분에 담겼다. 법조계에선 “헌재가 국론분열을 고려해 특별히 심혈을 기울인 것 같다”는 해석도 나온다. 통상 결론엔 주문과 재판관 의견 분포 정도만 적는데 국회 비판과 윤 전 대통령의 기회 등을 담아 장장 3852자, 5쪽 분량으로 썼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론 952자의 4배, 단 두 문장 96자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론의 40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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