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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582
‘정치’ 아닌 ‘통치’…민주주의 짓밟으려다 파멸
내란세력 책임 묻되 탄핵반대 국민 끌어안아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4년 4월29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회담에서 선거로 드러난 민심 수용, 국정 방향 전환 등 원고를 보며 발언을 이어가자 윤석열 대통령이 굳은 표정으로 이 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2025년 4월4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22분 동안 낭독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 선고 요지는 한 편의 아름다운 문학 작품을 방불케 합니다.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논리가 명확합니다. 사람에 따라 평가하는 대목이 다를 것입니다. 저는 정치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라서 그런지 이 부분에서 큰 감동을 하였습니다.

“피청구인은 취임한 때로부터 약 2년 후에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피청구인이 국정을 주도하도록 국민을 설득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가 피청구인의 의도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야당을 지지한 국민의 의사를 배제하려는 시도를 하여서는 안 되었습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을 초월하여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위반하였습니다.”

문형배 권한대행이 낭독하지 않은 결정문 전문에는 이런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율적 이성을 신뢰하고 모든 정치적 견해들이 각각 상대적 진리성과 합리성을 지닌다고 전제하는 다원적 세계관에 입각한 것으로서, 대등한 동료 시민들 간의 존중과 박애에 기초한 자율적이고 협력적인 공적 의사결정을 본질로 한다.”

“민주주의는 자정 장치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그에 관한 제도적 신뢰가 존재하는 한, 갈등과 긴장을 극복하고 최선의 대응책을 발견하는 데 뛰어난 적응력을 갖춘 정치 체제이다.”

어떻습니까? 마치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정치학 교과서 같지 않습니까?

윤석열 대통령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최고위직 공직자로 선출된 정치인입니다. 그런데 정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통치를 했습니다. 마음대로 안 되자 느닷없이 군과 경찰을 동원해 민주주의를 짓밟았습니다. 그래서 쫓겨난 것입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3월9일 대통령 선거 다음 날 당선 기자회견에서 “통합하겠다”고 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철 지난 이념을 멀리하겠다”고 했습니다. “의회와 소통하겠다”고 했습니다. “야당과 협치하겠다”고 했습니다.

말뿐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통합하지 않았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철 지난 이념을 가까이했습니다. 의회와 불통했습니다. 야당을 사갈시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윤석열 대통령의 말과 행동이 크게 달랐던 것은 그가 정치를 전혀 몰랐기 때문입니다. 모르면서도 안다고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정치의 요체는 대화와 타협입니다. 대화와 타협이 몸에 배어 있어야 제대로 된 정치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평생 검사를 한 사람입니다. 검사는 범죄자와 대화하고 타협하지 않습니다. 응징할 뿐입니다. 자신은 선이고 범죄자는 악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였을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을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으로 보고 ‘척결’하려고 했습니다. 국민의 대표들로 구성된 국회를 폐쇄하고 대체 입법기구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인제 와서 생각해 보면 2022년 대선에서 우리는 정치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무자격자를 대통령으로 뽑았던 것입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저는 2024년 4·10 총선 직후 정치 막전막후와 칼럼을 통해 정국 수습 방안으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권력을 절반씩 나누는 대연정을 제안한 일이 있습니다. 대통령 임기를 1년 줄이고 4년 중임제로 개헌해 2026년 전국 동시 지방선거와 다음 대선을 같이 치르는 방안도 제안했습니다. 저 말고도 많은 사람이 야당과의 협치 및 임기 단축 개헌을 제안했습니다.

놀랍게도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문에도 그런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4월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결정 요지가 담긴 선고문을 읽고 있다. 문화방송 화면 갈무리

“피청구인은 선거를 통해 나타난 국민의 의사를 겸허히 수용하고 보다 적극적인 대화와 타협에 나섬으로써 헌법이 예정한 권력분립 원칙에 따를 수 있었다.”

“헌법 개정안을 발의하거나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치거나, 정부를 통해 법률안을 제출하는 등 권력구조나 제도 개선을 설득할 수 있었다.”

‘불편한 진실’은 윤석열 대통령이 애초부터 이러한 제안들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인제 와서 후회해봐야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떠났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윤석열 대통령이 무너뜨린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합니다. 정치를 복원해야 합니다.

첫째, 내란 우두머리와 중요 임무 종사자들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관용을 베풀면 안 됩니다. 사면 복권도 안 됩니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최상목 부총리는 내란에 가담한 의혹이 있습니다. 수사해야 합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중대한 위헌 위법 행위입니다. 탄핵해야 합니다. 조기 대선 관리는 다음 순위의 국무위원들이 할 수 있습니다.

둘째, 통합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통합할 수 있을까요? 윤석열 대통령과 반대로 하면 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배제했습니다. 분열을 조장했습니다. 우리는 그러면 안 됩니다.

헌법재판소 결정문의 표현을 빌리면 “여당을 지지한 국민의 의사를 배제하려는 시도를 하여서는” 안 됩니다. “대등한 동료 시민들 간의 존중과 박애에 기초한 자율적이고 협력적인 공적 의사결정을” 해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던 사람들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여론조사 수치에 따르면 35% 안팎입니다. 그들을 위로해야 합니다. 끌어안아야 합니다.

통합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사람은 다음 대통령입니다. 6월3일 조기 대선을 치르면 누가 당선될까요?

4월4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정례조사에서 정당 지지도는 더불어민주당 41%, 국민의힘 35%, 조국혁신당 4%, 개혁신당 2%, 무당층 17%였습니다. 장래 정치 지도자 선호도는 이재명 34%, 김문수 9%, 한동훈 5%, 홍준표 4%, 오세훈 2%, 이준석·조국·이낙연 1% 순이었습니다. 대선 결과 기대는 여당 후보 당선 37%, 야당 후보 당선 52%였습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선거까지 60일도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정도 압도적인 격차라면 이재명 대표가 당선된다고 보는 게 상식적입니다.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잘할 수 있을까요? 윤석열 대통령처럼 실패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재명 대표는 장점이 많지만, 약점도 많은 정치인입니다. 비호감도가 너무 높습니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이재명 대표를 싫어하기도 하고 무서워하기도 합니다. 대통령이 되면 가혹하게 정치보복을 할 것이라고 걱정합니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3월5일 유튜브 ‘매불쇼’에 출연해 2023년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는 “당내 일부와 검찰이 짜고 한 짓”이라고 말해 논란을 빚었습니다. 3월13일 3선 의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예전 이야기를 매듭짓고 가려는 것이었다. 통합을 위해서 털고 가야 하는 문제”라고 해명을 시도했습니다. 해명되지 않았습니다.

3월19일에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이 순간부터 국민 누구나 직무유기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으니 몸조심하기 바란다”고 했습니다. 이틀 뒤 기자가 ‘사과할 의향이 있냐’고 묻자 “체포당할 수 있으니까 조심하시라 이 말이었는데 그렇게 왜곡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위협적인 발언을 해놓고 왜곡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입니다. 정치인의 언어는 그의 정체성을 반영합니다. 그래도 이재명 대표는 대통령이 되면 통합해야 합니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윤석열 대통령이 하지 못한 것을 하면 됩니다. 야당과 협치해야 합니다. 트럼프의 관세 전쟁에 대응하기 위한 대연정까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임기 단축 분권형 개헌도 추진해야 합니다. 5년 임기에 연연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7공화국을 활짝 열어젖혀야 합니다.

당내에서는 비주류를 확 끌어안아야 합니다. 첫번째 내각은 전원 비명계 인사들로 포진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를 해야 합니다. 정치를 해야 합니다. 가능할까요? 가능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운명은 기묘하게 얽혀 있습니다. 일종의 적대적 공존 관계였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를 끊임없이 탄압했습니다. 감옥에 보내려고 했습니다. 비상계엄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비상계엄 때문에 이재명 대표에게 대통령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이재명 대표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파멸했으니 이제 이재명 대표가 파멸할 차례라고 저주를 퍼붓기도 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할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반대로만 하면 성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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