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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4-반이민 정책 트라우마
유학생, ‘OPT’ 제도 폐지 법안에 불안…유학생 비자 거부율도 높아질 듯
반이민 실적 보이려 영주권자들조차 추방 잇달아 ‘여행경계령’ 내리기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25일 백악관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500만달러’짜리 골드카드 영주권 판매 계획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주간경향] 큰아이가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는 주부 A씨는 최근 불안감에 다른 유학생 부모들과 만나 고민을 상담하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유학생들이 대학 졸업 후 미국에서 일정 기간 체류할 수 있는 인턴십 프로그램인 ‘OPT’(Optional Practical Training) 제도가 축소되거나 사라질 수도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다.

‘OPT’ 프로그램은 유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한 뒤 12개월에서 최장 36개월까지 미국에서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졸업생들은 이 기간 동안 미국 기업에 취업해 경력을 쌓으면서 단기 전문직 취업비자(H-1B)를 신청, 장기 체류의 디딤돌로 삼아왔다. A씨는 “법안이 통과될 것 같지는 않다고 하는데 모르는 일 아니냐”며 “졸업 후 바로 돌아와야 하는 건 아닌지 다들 걱정이 태산”이라고 말했다.

앞서 폴 고사르 하원의원(공화당)은 최근 이 ‘OPT’ 프로그램을 전면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OPT 프로그램으로 기업들이 고급 외국인 인력을 미국인보다 더 싸게 고용할 수 있게 되면서 미국 청년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게 이유다. 폴 의원이 ‘OPT’ 프로그램 폐지 법안을 발의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로, 그는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1기 시절인 2019년에도 해당 법안을 발의한 적 있다. 당장 이 법이 의회를 통과할 것이라는 전망이 크지는 않지만, 1기 때와 달리 공화당이 미 상·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만큼 완전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재입성에 1기 반이민 정책 트라우마

집권 2기를 맞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자국민 우선주의 행보에 유학생들과 이민 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반이민 정서를 무기로 재집권에 성공한 트럼프 대통령이 강력한 국경 통제와 엄격한 이민법 시행 등 외국인에 대한 취업 및 비자규제 강화에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면서다.

당장 유학생 비자(F-1)의 경우 트럼프 재집권 이전에도 거부율이 높아지는 추세였는데 앞으로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24 회계연도(2023년 10월~2024년 9월)에 접수된 미국 유학생 비자(F-1) 신청자 중 41%가 비자 발급을 거절당했는데, 이는 10년 전인 2014년의 23%와 비교하면 2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한 이민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아이비리그 대학 합격증을 들고 대사관 인터뷰를 하러가면 ‘공부 잘했구나’ 정도의 인사 몇 마디가 전부였는데 요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느낀다”면서 “‘학비는 누가 어떻게 지불하냐’ 같은 구체적인 질문이 확 늘었다”고 말했다.

미국 내 기업·노동자 보호를 기치로 관세장벽을 높여가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가 ‘OPT’ 폐지 시도처럼 취업시장에서도 자국민 보호를 위한 강화조치를 쏟아낼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 유학생의 취업 로또로 불리는 ‘H-1B’ 비자의 경우 가뜩이나 경쟁률이 매년 높아지고 있는데, 트럼프 행정부에서 거부율이 다시 치솟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H-1B’ 비자는 학사 소지자에 6만5000개, 석사 소지자에 2만개 등 1년에 총 8만5000개만 발급되는데 2024년 기준 ‘H-1B’ 신청자는 75만9000여명으로, 발급 정원보다 8배 이상 몰렸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자료를 보면 트럼프 1기 행정부의 ‘H-1B’ 평균 거절률은 18%로 오바마 정부(3.2%)를 크게 웃돌았는데, 신규 신청자의 경우 거절률이 한때 33%까지 치솟기도 했다. 특히 기업과 유학·이민업계에서는 스티븐 밀러 백악관 정책담당 부비서실장의 재등장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스티븐 밀러 부비서실장은 1기 트럼프 행정부에서 무슬림국가 입국금지령, 가족분리정책, 그린카드(영주권) 축소, ‘H-1B’ 비자 강화 및 발급 심사 일시 중단 등 트럼프 1기의 주요 이민정책을 설계하고 추진한 대표적인 반이민 강경파다. 이런 그가 트럼프와 함께 백악관에 재입성하면서 1기보다 더 강화된 취업·이민정책이 등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

학내 반전시위 참석 혐의로 추방 위기에 놓인 한인 학생 정모씨 측 변호사가 지난 3월 25일(현지시간) 뉴욕 연방법원 앞에서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대학가는 ‘여행 자제’, 이민업계선 ‘SNS 자제’

여기에 미국 내 최근 체류자격을 갖춘 영주권자들조차 추방되는 일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대학과 이민업계를 중심으로 ‘여행경계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컬럼비아대 3학년에 재학 중인 한인 정모씨의 경우 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추방 위기에 몰렸다. 7세 때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온 영주권자 정씨는 지난 3월 5일(현지시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반대 시위 참가자에 대한 대학 측의 징계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석했다가 추방 위기에 몰렸다. 다만 정씨의 경우 법원 판단에 따라 추방 시도가 일시 정지된 상태다.

한인은 아니지만 실제 적법한 체류 허가를 갖고도 재입국이 거절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브라운대 의대 라샤 알라위(34) 교수는 지난 3월 13일 유효한 ‘H-1B’ 비자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미국에서 강제 추방됐다. 그는 레바논 친척을 방문했다가 미국으로 돌아오던 중 구금됐고, 법원의 추방 중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강제 출국당했다. 이 사건 이후 브라운대는 유학생 및 연구자들에게 해외여행을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앞서 하버드대와 코넬대 등은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 당선 후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전 캠퍼스로 돌아오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들 대학은 새 행정부 출범 후 미국 여행, 비자 문제에 영향을 미치는 행정명령을 하나 이상 내릴 수 있고, 어떤 명령이 내려질지 모르는 만큼 가장 안전한 방법은 그에 앞서 미국에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잇따른 추방 논란과 관련해 이민업계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강력한 반이민 공약 이행에서 실적을 보이려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투자이민업체 국민이주의 이유리 미국 변호사는 “이유 없이 추방되는 경우는 없다”면서도 “최근에는 정치적인 의견 등 이전 정부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들도 문제 삼아서 영주권을 뺏거나 추방하는 일이 생기면서 학계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한다고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객들에게 (예민한 주제로) 소셜미디어를 하지 말라고 얘기한다”고 전했다.

■500만달러 골드카드 판매 계획에 투자이민 상담 신청 2배로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500만달러(약 76억원)짜리 ‘골드카드’ 프로그램까지 들고나오면서 국내 투자이민 시장도 일순간 술렁였다. ‘골드카드’ 프로그램은 500만달러를 내면 미국 영주권을 부여하는 제도로,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의 그린카드보다 훨씬 특별한 것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미국에 들어와 돈을 쓰고 일자리를 창출해 미국 경제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운영 중인 미국 투자이민 프로그램인 ‘EB-5’는 폐지할 것임을 시사했다.

폐지를 시사한 ‘EB-5’ 투자이민 프로그램은 최소 80만달러를 투자하고 투자자 1명당 10명 이상 미국 내 고용을 창출하면 영주권을 주는 제도로 지난 30년간 운영돼왔다. ‘골드카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구조인 ‘EB-5’ 프로그램이 폐지될 수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이민업체들에는 기존 신청자와 신규 신청자의 문의가 빗발쳤다.

국민이주 측에 따르면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의 골드카드 프로그램 발언 이후 투자이민 상담 신청은 평소의 2배로 급증했다. 특히 자녀들의 미국 대학 졸업 후 안정적인 미국 취업을 희망하는 학부모들의 상담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다만 ‘골드카드’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형태가 여전히 공개되지 않은 데다, 법으로 보장된 ‘EB-5’ 프로그램이 곧바로 폐지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면서 투자이민시장은 일단 냉정을 되찾은 상태다.

이유리 미국 변호사는 “미국에서 영주권을 주는 이제 비자 프로그램은 무조건 법안으로 나와야 하고, 현재의 ‘EB-5’도 2026년 9월까지 법의 보호를 받는 프로그램으로 당장 폐지되기는 어렵다”면서 “고객들도 이런 부분들을 인지하고는 있지만,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차지하고 있고, 2026년 9월까지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2026년 9월 현재의 ‘EB-5’ 프로그램이 만료되면 현재보다 투자이민 금액이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에는 전문가들 대부분이 동의한다. 트럼프 1기 이전 투자이민 금액은 50만달러였다. 트럼프 정부는 이 금액을 200만달러까지 끌어올릴 계획이었지만, 90만달러로 상향하는 데 그쳤고, 이후 2022년 10만달러가 인하돼 현재의 80만달러로 자리 잡았다.

이병창 셀레나이민 부사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속지주의를 폐지하겠다거나 불법체류자를 추방한다거나 하는 발언으로 공통된 적을 만든 다음 보수층을 집결시켰다”면서도 “반면 투자이민제도를 손질하는 것은 지지층에 인기가 있거나 그렇게 관심이 있는 정책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는 본인도 예전에 텍사스 호텔을 지을 때 EB-5 투자이민자금을 가져다 쓰려고 했고, 지금 사위인 쿠슈너도 뉴저지에 아파트를 지으면서 이 자금을 갖다 쓰는 등 트럼프와 주변인들이 모두 ‘EB-5’에 굉장히 친화적”이라며 “그런 트럼프가 ‘EB-5’를 그냥 없애기보다는 다음번 투자이민 금액을 정할 때 지금보다 훨씬 높게 책정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고 전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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