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환경 전문가들에게 복원 방식 물으니>
"인공 조림보다는 '자연 복원' 비중 높여야
산에 포클레인 들이면 땅 회복력 사라져“
주민 선호한다고 소나무 일색으로 조림?
"산불의 '연료림'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어"
멸종 위기 야생동물 피해 실태 조사 시급
경남 산청군 산불 발생 여드레째인 지난달 28일 밤, 구곡산에서 황점마을 뒷산까지 번진 산불이 더욱 선명히 포착되고 있다. 산청=뉴시스


숲이 우거지는 데 30년, 야생 동물이 돌아오는 데 35년, 생태계가 완전히 복원되는 데에는 100년.국립산림과학원(2019년)

지난달 21일 최초 발화한 영남 지역 산불은 총 31명의 목숨을 앗아갔다(5일 기준). 부상자는 51명으로 집계됐고, 불에 탄 산림은 서울 면적의 80%에 달한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파괴된 생태계의 ‘회복’은 언제쯤 가능할지 가늠하기도 쉽지 않다.
6년 전 국립산림과학원은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숲의 회복에 최소 30년, 토양의 복원에는 100년 이상이 각각 걸린다는 분석을 내놨다.
산불 지역이 ‘원래 상태’를 되찾는 데에는 한 세기 넘는 시간이 필요
하다는 얘기다.

산불은 수백 년간 이어진 숲속 생태계 균형을 단숨에 무너뜨리고 오랜 후유증을 남기는
장기적 재난
이다. 피해 지역에선 향후 100년 동안 △생물 다양성 감소 △토양 악화 △희귀 생물 멸종 △기후변화 가속화 등 복합적 피해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산불 피해 복구 방식도 신중해야 한다.
환경 전문가들은 ‘인간의 성급한 개입’이 오히려 생태계를 더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국내 산불 현장을 수십 년간 연구해 온 전문가들로부터 올바른 복구 방향을 들어봤다.

땅 뒤집고 나무 심을까, 새싹 트도록 내버려둘까



산불 피해 지역의 산림 복원 방식은
인공 조림
자연 복원
방식으로 나뉜다. 인공 조림은 불탄 나무를 베고 땅을 뒤집은 뒤 새 묘목을 심는 방식으로, 비교적 빠르게 숲을 다시 조성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토양의 힘이 약해지고, 장기적으로는 생태계 회복을 방해할 수 있다. 반면에
자연 복원은 불에 타지 않은 땅속의 뿌리에서 새싹이 움틀 수 있도록 자연 상태로 내버려두는 방식
이다. 인공 조림에 비해 회복 속도는 더디지만,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며 숲이 자연스럽게 균형을 되찾을 수 있다.

과거 대형 산불 피해 지역에선 이 두 가지 방식이 절반씩 혼합 적용됐다. 예컨대 2000년 동해안 산불 피해 지역(면적 2만3,000㏊·230㎢)은 인공 조림 51%, 자연 복원 49% 비중으로 복구됐다. 2023년 울진·삼척 산불 피해 지역(1만6,300㏊·163㎢)은 인공 조림 49%, 자연 복원 51% 정도로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번 산불 피해 지역만큼은 자연 복원 비중을 압도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지난달 29일 경북 의성군 일대 산이 산불에 심하게 훼손되어있다. 의성=뉴시스


불탄 가지·낙엽… 건강한 잡목림 위한 ‘비료’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는
“(급속히 확산된) 이번 산불은 자연재해라기보다는 산림청이 오랜 기간 활엽수를 베어 내고 소나무를 심어 온 결과”
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인위적인 조림 대신 자연 복원 방식을 선택하면, 불에 강한 활엽수가 자생적으로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 교수는 산림청의 ‘침엽수 위주’ 조림 사업을 꾸준히 비판해 온 인사다.

이번 산불 피해 규모를 키운 주 원인 중 하나로 소나무가 지목되는 건 사실이다. 소나무는 기름 성분인 송진을 머금고 있어 불이 쉽게 붙고 오랫동안 탄다. 산불 피해가 집중된 경북 지역은 소나무 숲 면적이 45만8,000㏊(4,580㎢)에 달해 △강원 지역 35만8,000㏊(3,580㎢) △경남 지역 27만3,000㏊(2,730㎢)보다 훨씬 넓다.

홍 교수는
이번 산불로 불에 탄 잔가지와 낙엽이 오히려 이 지역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무기양분(탄소를 포함하지 않은 화합물)이 될 수 있다
고 설명했다
.
그는 “이 잔해들이 땅에 자연스럽게 흡수되면 숲의 발달 과정이 빨라져, 과거 척박하다고 여겨졌던 동해안 땅에도 활엽수림이 발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러나 인공 조림을 하겠다며 포클레인을 들여 토양을 뒤엎으면 땅의 회복력이 완전히 사라질 것”
이라며 “한마디로 ‘돈 들여 땅을 망치는 길’이 된다”고 우려했다.

지난달 28일 경북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 한 마늘밭에서 농민들이 일하고 있다. 바로 옆 인근 비탈은 산불로 검게 타 버린 모습이다. 의성=연합뉴스


주민 원한다고 소나무? ‘산불 연료림’ 만드는 셈



2000년 동해안 산불 당시 국가 복구 매뉴얼 수립에 참여했던 정연숙 강원대 생명과학과 명예교수 역시
“산사태 위험이 있는 일부 지역 외에는 ‘원칙적 자연 복원’ 방식을 택하는 게 옳다”
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대부분의 활엽수는 불이 지나간 후에도 뿌리가 살아 있어 새로운 싹을 틔울 수 있다”며 “하지만 인공 조림을 하면 이런 자연적 회복 과정을 인위적으로 차단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설명했다.

‘지역 주민들이 송이버섯 채취를 이유로 소나무 조림을 원한다’는 점에 대해선 회의적으로 봤다. 정 교수는 “인공 조림으로 조성한 소나무 숲에선 송이버섯이 자랄 수 없다”며 “단지 대중적 선호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불에 이토록 취약한 소나무를 대량 식재한다는 건 ‘산불 연료림’을 앞장서 만드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산림청이 침엽수 심기에 집착하는 배경에는 산림청과 대규모 수의계약을 맺고 있는 산림조합·산림청 산하 특수법인들 이권이 크게 개입돼 있기 때문”
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실제로 최근 10년간 산림청의 인공 조림 현황을 보면, 침엽수 조림 면적(13만5,000㏊·1,350㎢)이 활엽수(9만㏊·9,000㎢)를 웃돈다. 또 산림청은 2019~2022년 산불 피해 지역의 조림수종을 활엽수 51%, 침엽수 49%(소나무 36%)로 결정했다. 그러나 2023년 말 중간 발표는 달랐다. 실제 조림 면적은 전체 1,558㏊(15.58㎢) 가운데 침엽수 비율이 61%로 더 높았다.

1일 경북 안동시 일직면의 한 양계장이 산불로 모두 타 폐허로 변해 있다. 안동=하상윤 기자


"환경부, ‘야생동물 복원’도 같이 고려해야"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산불 발생 후 15년이 지나면 수목의 외형은 70~80%로 회복된다. 하지만
서식 생물의 생태계는 완전히 복원되지 않는다
.
어류는 3년, 수서동물은 9년, 곤충은 14년이 각각 걸린다.
포유류가 돌아오기까지는 무려 35년이 소요된다.
야생동물이 제대로 번식하기 위해선 나무 열매, 풀, 곤충 등 충분한 먹이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환경부가 하루라도 빨리 나서서 피해 지역의 야생동물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 위원에 따르면 이번 산불로 피해를 입은 주왕산 국립공원 인근은 멸종 위기종이 다수 서식하는 지역이다. 그는
“이번 화재로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이 많을 것 같다”
며 “산양, 하늘다람쥐, 삵, 담비 등이 특히 위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생태계의 일부를 이루고 있던 동물들이 죽거나 이주하면, 그 지역 생태계 균형이 영구적으로 깨진다. 해당 동물들의 이동 현황을 꾸준히 모니터링하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노물리 마을이 산불로 전소돼 폐허로 변해 있다. 영덕=뉴시스


산불 피해 지역 자체를 6개월 단위로 관찰하는 모니터링 시스템이 필요하다
는 주장도 나왔다. 서 위원은 “자연 생태계가 물리적 피해를 입었을 때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요구하는 것은,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듯이 관찰하는 것”이라며 “숲을 6개월, 1년, 2년 단위로 관찰하며 회복 상황에 맞춰 복원 계획을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별히 올해 6월 장마철에 대비해 토사 유실 위험 지역에 대해선 주민들과 합의하에 철저한 사전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일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5149 건진법사 "정치자금 아냐" 부인… 검찰, 돈 오갈 때 동석한 이천수 진술조서 법정에 new 랭크뉴스 2025.04.07
45148 “절연보다 무서운 게 분열”···윤석열 안고 가겠다는 국민의힘 new 랭크뉴스 2025.04.07
45147 “조지호, 국회 통제 지시…포고령 안 지키면 우리가 체포당한다 해” new 랭크뉴스 2025.04.07
45146 ‘검은 월요일’ 코스피 5%대 폭락, 공포 지수 최고치 new 랭크뉴스 2025.04.07
45145 “조지호 경찰청장, 국회 계엄군 보고 ‘이제 왔네’ 했다” 경비국장 증언 new 랭크뉴스 2025.04.07
45144 경찰청 경비국장 “조지호, ‘포고령 안따르면 우리가 체포된다’ 해” new 랭크뉴스 2025.04.07
45143 "베트남서 만들면 관세 같이 내야지"…관세 불똥 튄 K패션 랭크뉴스 2025.04.07
45142 "개가 뛰어내려" 타인 반려견 트렁크 연 채 싣고가다 죽게 해 랭크뉴스 2025.04.07
45141 김경수·김부겸·김동연 "개헌이 내란종식"…이재명과 선그었다 랭크뉴스 2025.04.07
45140 '영리치' 몰리자 용산·성수 전세값 '평당 1억' 돌파 랭크뉴스 2025.04.07
45139 [단독] 파면 결정문, 윤석열 아닌 ‘회사동료 김OO’ 대신 수령 랭크뉴스 2025.04.07
45138 "건진법사 '공천뒷돈' 현장, 이천수가 목격"…검찰, 법원에 제시(종합2보) 랭크뉴스 2025.04.07
45137 '환율 쇼크' 원·달러 5년 만의 최대 상승폭, 엔화 환율 1000원 돌파 랭크뉴스 2025.04.07
45136 "美 100명 넘는데 韓은 9명뿐…항공사고 조사관 확보 시급"[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이후] 랭크뉴스 2025.04.07
45135 헌재 "韓대행은 마은혁 임명할 헌법상 의무 부담"…국회질의에 답변(종합) 랭크뉴스 2025.04.07
45134 하동 옥종면 산불 확산, 2단계 상향 발령…4시간째 진화 중(종합2보) 랭크뉴스 2025.04.07
45133 [단독] 이재명 싱크탱크 '성장과 통합' 9일 출범…유종일 등 100여명 랭크뉴스 2025.04.07
45132 미얀마 지진 현장서 실종자 수색하는 '사이보그 바퀴벌레' 랭크뉴스 2025.04.07
45131 [단독] 윤석열 파면 결정문, 한남동 관저 ‘김OO’이 대신 수령 랭크뉴스 2025.04.07
45130 김경수·김부겸·김동연 “개헌이 내란종식”…이재명과 선그었다 랭크뉴스 2025.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