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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한경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뇌과학전공 교수

최한경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뇌과학전공 교수


유아기에는 놀라운 학습 능력이 나타난다. 걷고, 먹고, 말하는 것과 같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핵심 기능을 익히고 뇌에 담아 평생 사용한다. 하지만 유아기 때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만나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정보는 성인이 되면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이런 모순적 현상을 ‘유아기 기억상실’이라 부르는데, 그 이유를 두고 많은 과학자들이 궁금증을 가져왔다.

니콜라스 터크 브라운 미국 예일대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최근 아기들의 기억력 테스트와 뇌 활성 영상 실험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 말로는 간단하지만, 이 연구는 아이들의 행동에 대한 깊은 이해에 기반한 과학적 작품이다.

돌잔치를 생각해 보자. 돌잔치는 보통 어른들 잔치다. 생일을 맞은 아기에게는 돌잡이를 하고 사진을 찍어야 하는 ‘임무’가 있다. 이제 겨우 열두 달을 살아온 아기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밥을 잘 먹이고 잠도 푹 재워서 아기 기분을 최대한 좋게 만들고, 여러 어른이 익살스러운 표정과 밝은 목소리로 비위를 맞춰 준다고 해도 어려운 일이다.

아기들의 웃는 사진 하나를 찍는 것도 쉽지 않은데, 뇌 활성 영상은 어떻게 찍어야 할까. 뇌 활성 영상은 우리가 건강 검진 등에서 흔히 사용하는 자기공명영상(MRI) 기술로 얻는다. 그런데 성인도 MRI 장치에 들어가 있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좁은 통속에서 한참을 갇혀 있어야 하고, 답답하더라도 미동 없이 검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연구진은 그간의 비법을 총동원해서 아기가 MRI 장치에서 꼼짝 하지 않은 채 기억력 테스트까지 받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먼저 숙련된 연구자가 잘 자고 잘 먹어 기분이 비교적 좋은 아기를 부모와 함께 연구실로 데려왔다. 쉬지 않고 어르고 달래주면서, 애착 인형과 함께 MRI 장치의 진공 베개에 살며시 뉘어 촬영을 시작했다. 연구진은 이전 사례에서 어떤 베개를 썼을 때 아기들의 움직임이 가장 적은지까지 과학적으로 분석했다. 가히 아기 행동의 전문가들이다.

자, 이제 아기들의 뇌 활성 영상은 찍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아직 말문도 트이지 않은 아기의 기억력은 어떻게 검사해야 할까. 연구진은 ‘익숙함 선호 경향’에서 힌트를 얻었다.

사람들은 낯선 것보다는 익숙한 것을 보는 것을 더 선호한다. 연구진은 얼굴 또는 물건, 풍경을 담은 사진 여러 장을 아기들에게 쭉 보여줘 기억하게 하고서, 이어지는 검사 상황에서는 방금 봤던 사진들 중 하나와 보여준 적 없는 사진을 동시에 아기에게 제시했다. 아기들은 익숙함 선호로 인해 봤던 사진을 더 오래 쳐다봤다. 이 상황에서 얻은 뇌 활성 영상을 분석했더니 익숙함 선호가 명확히 나타날 때 아기들 뇌 속의 특정 부위인 ‘해마’가 더 강한 활성을 보였다.

발달상의 차이도 발견됐다. 생후 9개월 미만의 아기보다는 12개월 이상의 아기가 더 명확한 활성을 보였다. 해마는 성인에서도 기억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부위다.

유아기 기억상실 현상은 종종 아기들을 데리고 좋은 곳에 가는 게 무슨 소용이냐는 푸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생쥐도 사람처럼 유아기 기억상실을 보이는데, 생쥐의 유아기 기억상실은 뇌과학적으로 더 잘 연구되었다. 이미 수년 전 캐나다 토론토대 연구진은 어린 생쥐의 뇌를 조작해 유아기에 형성된 기억을 성체에게서 되살려내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뇌 과학의 급격한 발달 속도를 보면 향후 인간의 기억 시스템에도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이것이 푸념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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