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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내용에 드라마에 대한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지난달 넷플릭스에 공개된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원제 : Adolescence)은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공개 사흘 만에 넷플릭스를 시청할 수 있는 80개국에서 가장 많이 시청된 시리즈로 올라섰고, 벌써 1조 건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파원으로 나와 있는 이곳 프랑스에서도, 취재 차 방문했던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이 시리즈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목에 '소년'이 들어갔지만 내용은 희망차지 않습니다. 동급생 소녀를 살해한 13살 소년의 이야기로, 현실의 여러 어두운 면을 반영한 사회·범죄 드라마입니다. 대형 플랫폼의 영상 콘텐츠이지만, 기사로 짚어보는 이유입니다.

■ 드라마에 담긴 '젠더 살인·디지털 성범죄·사이버 불링'

드라마 속 13살 소년 '제이미'는 동급생 소녀 '케이티'를 잔혹하게 살해합니다. 제이미는 자신의 범죄를 실수로 인정하지만, 케이티가 살해될 만한 잘못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케이티를 좋아해 온 자신의 고백을 무시했다는 게 주요 배경인데, 사실 이유는 더 복합적입니다.

제이미는 '인셀'(Incel. Involuntary celibate)이라는 용어를 언급합니다. 한국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의 젠더 갈등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신조어입니다. '연애를 못 하는 무능한 남성'이라는 인터넷 용어로, 여기에는 이른바 '20:80 법칙'(20% 남성이 80%의 여성을 차지한다) 등 청소년기 남성들의 자조적이고 왜곡된 인식까지 반영돼 있습니다.

여성이 남성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자신의 관심을 '감히 빚졌다'고 여기는 '인셀' 집단의 극단적인 문화까지, 전문가들은 드라마에서 조명합니다.

'남성주의'와 '반페미니즘', '디지털 범죄'와 자녀를 양육하는 '전통적 가족 이기주의' 등도 함께 얽혀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합니다. 청소년들이 또래 집단에서 배우는 왜곡된 성문화와 폭력성을 집중해 다루기 때문입니다.

케이티의 나체 사진이 전교생에게 유포되는 디지털 성범죄와, 동시에 케이티가 제이미에게 가하는 사이버 불링, 자신의 고백을 거절한 케이티를 살해하는 제이미, 또래 집단에서 학습되는 성문화 등이 그렇습니다.

■ "Z세대 남녀, 젠더 이념적 격차 30% 포인트 증가"…실제 폭력으로 이어져

프랑스 주요 일간지 르몽드는 최근 6년간, 젊은 여성들이 점점 진보적인 가치를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같은 연령대의 남성들은 보수적인 사상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유럽 20개국 이상의 데이터를 분석한 기사에서, 지난 10년간 'Z세대'의 여성과 남성 사이의 '젠더·이념적 격차'가 30% 포인트 증가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유럽도 예외가 아닌 겁니다.

그동안 사회는 이 같은 '소년의 시간'을 '정치적 문제'로만 여겨왔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선거 운동뿐 아니라, 탄핵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선거 운동에서도 젊은 남성들을 강력한 유권자 기반으로 포섭했습니다. '공정'과 '효율성'을 강조하며 소수자와 여성, 다양성을 정책에서 지워왔습니다. 주요 당원들을 위한 당리당략으로, 또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한 정치적 전략일 수 있었지만 결과는 사회 분열을 불러왔습니다.

문제는 사회 분열이 실제적인 폭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소년 제이미가 소녀 케이티를 살해한 것은 드라마의 내용이지만, 2014년 캘리포니아 총격 사건과(본인만 여성과 교제하지 못한다는 피해의식을 느낀 엘리엇 로저가 동급생 6명을 살해하고 자살한 사건), Gamergate(비디오 게임 업계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 사이버 불링) 등은 현실의 이야기입니다. 한국 여성들이 거리에서 촛불을 들게 한 '강남역 살인사건'도 같은 맥락입니다.

■ 영국 총리, '소년의 시간' 중등 학교에 무료 방영 추진

드라마는 문제를 던져 줄 뿐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했습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최근 '소년의 시간'을 본 뒤 주재한 다우닝가 회의(국무회의)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는 여러 사회 문제들의 조합을 강렬히 비췄다"고 평가했지만, "디지털 성범죄와 극단적인 커뮤니티 등을 해결하기 위한 특효약은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다만, 키어 스타머 총리는 영국의 모든 중등학교에서 이 드라마를 무료 방영하는 것을 강력히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선 현실을 우선 직시해야 한다는 겁니다. 왜 '소년의 시간'이 소녀를 살해했는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나서서 풀어야 할 숙제가 된 건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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