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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파면] 정치 전문가 2인 진단
전 대통령 윤석열은 국회에 의해 탄핵됐고,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됐다. 이 간단하고도 명확하며 당연한 결론을 향해 지난해 12월 3일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이래 4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대한민국의 시계는 멈춰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물론 기뻐하고 박수칠 일도, 그렇다고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일도 아니다. 그저 당연한 절차를 거쳐 대한민국의 헌법을 어기고 국민의 신임을 배신한 대통령이 파면된 사건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60일 동안 정신없이 각 당은 후보자를 뽑고 선거를 치르다 보면, 그래서 정신을 차릴 만한 6월이 되면, 새 대통령이 정해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상으로 이미 복귀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듯 모든 것을 물 흐르듯 신기루처럼 지나가게 둘 수는 없다. 이 사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국회를 공격하고 사회가 갈가리 찢기며 정치가 그야말로 전쟁이 됐던 지난 4개월, 대한민국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룩했던 모든 성취가 한순간에 신기루로 사라질 수도 있었던, 혹은 이미 사라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련의 사건들로부터 공동체로서의 우리가 아무것도 배우는 것이 없다면 그야말로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 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우리 공동체가 합의할 수 있는 ‘체제 내 다수’를 다시금 찾아내 복원하고 재구성하는 일이다. 다른 생각과 가치,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지닌 시민들이 모든 잠재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정치 공동체에서 공존하고 존속할 수 있는 유일한 토대는, 우리가 전쟁이 아닌 정치를 통해 오늘 패배하더라도 내일 승리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를 잃더라도 다른 곳에서 또 다른 하나를 얻을 수 있으며, 정치라는 과정을 통해 상대방과 총칼로 전쟁을 벌이는 대신 말과 절차의 싸움을 얼마든지 벌일 수 있는 절차가 보장돼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정이었던 이유는 여야를 막론하고 이런 믿음을 지닌 ‘체제 내 다수’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으로 이끈 가장 결정적인 죄과는 이런 정치의 장(場)에 무장한 군인을 헬기로 실어보냈고, 계엄포고문에 직접 쓰인 것처럼 정치활동 자체를 전면적으로 금지한 데 있었다. 다시 말해 가장 정치적 역할을 주도해야 할 대통령이 정치 자체를 삭제하려 한 것에 있었다. 그러나 그의 보다 큰 정치적 죄과는 자신의 지지자를 정치의 장 바깥으로 끊임없이 이끌고 나가 대한민국 민주공화정을 ‘체제 바깥’에서 공격하는 세력으로 양성했다는 사실이다. 법원을 물리적으로 공격하고 헌법재판소를 대상으로 공공연하게 “밟아, 밟아” 구호를 외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으며, 정당정치 자체를 체제 외부로 끌고 나갔다는 사실이다.

탄핵이 인용되면서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그래서 단순한 폐허의 풍경만이 아니라 무너진 민주공화정 정치를 복원시키는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선거가 시작되면 모든 것이 선거 과정이라는 회오리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겠지만, 그것만으로 정치가 복원된다고 믿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선거라는 과정을 통해 철저하게 과오를 반성하고, 공화국을 외부로부터 공격하려는 적들을 고립시키며, 경쟁의 대상인 상대방을 같은 게임을 치르는 상대로서 존중하는 절차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선거를 치르게 될 각 정당은 그것이 의례적인 협의체이건, 조직이건 상관없이 지지자들을 ‘체제 내’로 이끌고 들어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빨간 당이건, 파란 당이건 상관없이 우리가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국민인 것은 변함이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개헌, 혹은 대한민국이 운용되는 여러 제도적 변화에 대한 논의 또한 우리에게 남겨진 난제다. 계엄이라는 사건이 사실 대한민국 헌정질서에 직접적인 공격을 가함으로써 오랜 기간 진행돼 오던 개헌 논의에 상당한 타격을 입힌 것도 사실이다. 당장 60일 앞으로 다가온 선거 일정을 보았을 때, 그 일정에 개헌 논의를 접합시키는 것이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권한과 국회와의 관계, 아울러 우리 선거제도가 만들어내는 정치적 관계들이 매우 유독한 결과를 끊임없이 생산하고 있다면 이를 넘어설 전망과 의지, 그리고 구체적 공약을 내거는 후보자들이 다가올 대선에서 생산적인 논의를 이어갔으면 한다.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여소야대의 정치 환경에서 상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탄핵의 상황과 이런 정치적인 갈등을 전면적으로 헌법재판소가 판단해야 하는 부담을 지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권력 구조의 배열인지를 깊게 고민한 정당과 후보자들이 대안을 마련해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 남겨진 책무들을 스스로 돌아보고 싶다. 계엄이 처음 선포되고 느꼈던 분노와 그 밤의 그 긴박, 그리고 곧장 이어진 너무나 다른 생각을 지닌 몇몇 이웃들의 생각들. 그래서 어제의 대통령 파면이 단순한 일상의 복원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너무나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부터의 시간은 우리 미래 세대에게 지난겨울 있었던 헌정질서의 위기를 우리가 어떻게 넘어섰고, 더 나은 정치공동체를 어떻게 만들 수 있었는지 들려줄 이야기를 준비할 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봄을 맞이하였노라고.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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