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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건 재판관 아닌 국민들
반동과 퇴행의 시대, ‘민주주의 회복력’ 보여줘
계엄 막고 헌재 움직인 시민들 소망 담아낼 때
탄핵 찬성 정치·시민세력 ‘다수파 연합’ 구축을


박찬수 | 대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됐다. 2022년 5월10일 취임했으니, 2년11개월 만이다. 지난해 12월3일 내란 실패 이후 사실상 국정이 마비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5년 임기의 절반만 마치고 쫓겨난 셈이다. 8년 전 탄핵된 박근혜 대통령(임기 11개월 남기고 퇴임)과 비교해도 너무 빠른 퇴장이다. 모두의 상상을 뛰어넘은 비상계엄이 직접 계기가 됐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바로 국정 운영의 참담한 실패다.

윤 전 대통령이 집권한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대한민국은 멈춰 섰다. 제자리에 멈춘 게 아니라 오히려 추락했다. 경제는 침체하고, 국민 생활은 곤궁해졌으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벼랑 끝 상황으로 몰렸다. 진보·보수를 떠나 역대 모든 정부는 사회복지를 확대하고 성장을 위한 연구개발 투자에 힘을 쏟았다. 윤 전 대통령은 이런 기본 임무에 손쉽게 눈을 감았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0%대로 떨어질지 모른다고 어느 글로벌 투자은행은 전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한 외적 변수가 작용했지만, 상황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정부 책임이 더 크다.

대통령은 국민에겐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좌파 척결’만 외쳤다.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말했다. 국정 운영의 최고 책임자가 이념 전쟁에 몰두하니 정부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새만금 세계잼버리대회 참사와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는 단적인 사례다. ‘눈 떠보니 후진국’이란 한겨레 칼럼의 제목은 과장이 아니다.

대통령제 아래서 대통령 한 사람을 잘못 뽑은 결과가 얼마나 무거운가를 우리는 윤 전 대통령을 통해서 실감했다. 법 집행에 저항하며 ‘끝까지 싸우자’고 지지자들을 선동하는 모습은 국민이 가슴에 담아온 ‘대통령의 바람직한 상’과는 너무 멀었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은, 그래서 다행이다. 계엄과 탄핵이라는 끔찍한 과정을 겪었지만, 무능할뿐더러 사악하기까지 한 통치자에게 2년을 더 맡기지 않고 새 정부 출범 기회를 갖게 된 건 역설적으로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제 탄핵을 넘어 새로운 도약을 시작해야 할 때다. 헌재의 윤 대통령 탄핵이 의미 있는 것은, 한국의 놀라운 민주주의 회복력을 전세계에 보여줬다는 점뿐 아니라 유혈 사태 없이 평화적으로 민주주의를 되살려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3일 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서구에선 ‘가장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나라 중 하나’인 한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깜짝 놀랐다. 그러나 우리 국민이 보여준 민주주의 열정과 복원의 과정은 전세계에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다.

‘윤석열 체포’를 촉구하며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폭설을 맞고 밤을 지낸 시위대의 사진은 상징적이다. 헌재 결정이 늦어지면서 걱정과 분노가 치솟았지만, 끝까지 기존 제도를 믿고 평화적으로 기다린 점도 평가할 만하다. 헌재는 누구도 반박할 수 없게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해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득력 있게 제시함으로써 국민의 오랜 기다림에 답했다.

세계적으로 반동의 시대다. 1990년대 동유럽 민주화 이후 오렌지 혁명, 재스민 혁명, 아랍의 봄으로 이어지며 민주주의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은 언제나 선봉이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군사독재 정권을 끝냈고, 10년 뒤 헌정사상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룩했다. 2017년엔 수백만명이 광장에서 촛불을 밝혀, 권위주의 통치를 되살린 대통령을 물러나게 했다. 그러나 최근 아시아·남미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에서도 선거로 집권한 뒤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권위주의 지도자들은 갈수록 늘고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나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그렇다.

윤석열도 마찬가지다. 선거에서 간신히 승리했음에도 민주주의 절차를 무시하고, 국회와 타협을 거부했으며, 검찰권을 남용했다. 끝내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믿은 비상계엄을 꺼내 들고 군을 동원해 국회를 제압하려 했다. 아시아나 남미에서 민주주의가 무너졌을 때 어떤 유혈 사태도 없이 평화적으로 다시 완벽하게 복원한 사례를 찾기란 쉽지 않다. 오랜 군부독재 시절을 거치며 누구보다 권력의 퇴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국 국민의 감수성과 열정이 지금 시기 ‘살아 있는 민주주의 표본’으로서 세계의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이유다.

민주주의를 되살리는 과정에서 어떤 제도나 절차의 훼손이 없었던 점도 의미가 있다. 2017년 박근혜 탄핵을 이끌어낸 촛불집회는 홍콩 민주화 운동을 거쳐 미얀마의 군사쿠데타 반대 시위로 이어졌다. 2025년 한국의 무도한 권력자 축출이 미국과 유럽에서 가시화하는 민주주의 후퇴 흐름에 하나의 경종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지켜낸 것으로는 부족하다.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시도와 그 이후 나타난 보수 진영의 ‘윤석열 지키기’ 움직임은 더 이상 극우 정치세력을 그대로 방치해선 안 되고 극우 세력을 고립시키는 게 우리 정치의 당면 과제로 떠올랐음을 보여준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군 지휘관과 장병의 호응을 거의 받지 못할 정도로 명분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의 거짓 주장을 지지하는 극우 집단은 오히려 세력을 확장했다.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아스팔트 극우’가 주축이 된 자유통일당은 지난해 4월 총선에선 2.26%의 지지율을 얻는 데 그쳤지만, 며칠 전 열린 서울 구로구청장 보궐선거에선 32%의 지지를 획득했다. 물론 국민의힘 후보가 출마하지 않아 ‘보수 유일 후보’란 반사이익을 얻은 게 컸다. 하지만 윤상현 의원이 공개적인 지원 유세에 나서는 등 국민의힘 내부 지지가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 또한 사실이다.

건강한 정당이라면 극단주의를 제어할 수 있는 균형 감각과 역량을 가져야 한다. 지금 국민의힘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공화국을 파괴하려 한 윤석열을 옹호하면서 아스팔트 극우 세력에게 끌려가고 있다. 국민의힘 당원들 분위기론 ‘윤석열 지지, 탄핵 반대’를 강하게 외치는 이가 차기 대선 후보로 뽑힐 가능성이 매우 높은 걸로 보인다. 걱정스러운 건, 국민의힘의 극우화 경향이 단시일 안에 사라질 거 같지 않다는 점이다. 시위대 구호가 단순한 ‘탄핵 반대’가 아닌, 중국 등 외국인 혐오와 가짜뉴스인 부정선거 반대로 변질되는 건 유럽 극우 정당의 성장 배경과 일정 정도 맥을 같이한다.

2017년 박근혜 탄핵에서 우리가 새겨야 할 교훈은 이것이다. 훨씬 광범위했던 광장의 촛불들, 그리고 진보와 합리적 보수까지 망라한 ‘탄핵 연대’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사회적 대타협의 중요한 기반으로 작용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탄핵 연대는 너무 쉽게 무너졌고, 새 정부와 시민사회의 협력도 지속되지를 못했다.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평화 증진과 코로나19 대응 등에서 큰 성과를 거둔 점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촛불 연대를 개혁 추진의 에너지로 삼지 못한 건 임기 내내 발목을 잡았고,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이라는 아무런 준비가 안 된 검사 출신 포퓰리스트에게 국정을 넘기는 최악의 결과로 나타났다. 앞으로 두달 뒤 헌정사상 두번째 탄핵으로 탄생할 새 정부는 이 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세심하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

탄핵 재판은 끝났지만, 계엄에 반대하고 탄핵에 찬성했던 정치권과 시민사회 단체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일은 숙제로 남아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새 정부는 계엄 사태로 심해진 갈등과 대립의 세찬 강물을 건너야 한다. 일시적인 연대를 좀 더 견고하고 지속력 있는 ‘다수파 정치 연합’으로 묶어내는 게 필요하리라 본다. 그래야 저출생 고령화나 지방 소멸 등 복합 위기에 대처하고 경제 재도약을 이룰 국민적 에너지를 성공적으로 끌어모을 수 있다.

아이엠에프(IMF) 못지않은 총체적 위기다. 2025년 4월4일 헌법재판소는 전원 일치로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선고했지만, 위기의 순간에 나라를 구한 건 재판관들이 아니다. 바로 국민이다. 12월3일 밤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듣고 여의도로 달려가 계엄군을 막아선 평범한 시민들이다. 내란 시도 이후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광화문에서 여의도에서 한남동에서 남태령에서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지켰다. 이들과 함께 가지 않고서는 앞으로 닥칠 무수한 어려움을 넘어설 수 없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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