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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칠 교수의 일기는 1993년 〈역사 앞에서〉란 제목으로 창비에서 출간됐다. 이 일기는 1945년 11월 29일자 뒤쪽부터 남아 있었는데, 그 앞의 일기가 사라진 것으로 보였다. 유물을 보관하고 있던 필자의 아들 김기목(통계학·전 고려대) 교수가 사라진 줄 알았던 일기를 최근 찾아냈다. 1945년 8월 16일에서 11월 29일(앞쪽)까지 들어 있다. 중앙일보는 이 일기를 매주 토요일 원본 이미지를 곁들여 연재한다. 필자의 다른 아들 김기협(역사학) 박사가 필요한 곳에 간략한 설명을 붙인다.



10월 18일 종일 비오다.

어제 떠나려던 것이 시간이 늦어서 떠나지 못하고 오늘은 꼭 떠나렸는데 아침부터 가을비 스산하게 나리어 미상불 걱정이다. 우구(雨具)도 없는데.

우중에 이선호 군이 찾아왔기에 내 가장 어려운 일을 그에게 일임하기로 하고 그의 쾌락을 얻었다. 그의 지극한 우의와 꿋꿋한 의지에 새삼스러이 경복했다. 결초보은하리라는 한 마디 말만 건네었다.

오후에 떠나려니 아버지는 이 우중에 무에 그리 급해서 떠나느냐고 걱정하시나. 봉양을 떠날 때 기봉이 코가 찍찍하던 걸 생각하니 마음이 몹시 조급해진다. 좀 구차스럽긴 하나 우산을 이리저리 얻어서 준규(俊圭) 군에게 짐을 지이고 강행군으로 떠났다. 중로에서 김계진(金啓鎭) 군의 술대접을 받고 신녕 오니 시간이 알맞았다.

[해설 : 박준규는 필자의 생질. 봉양조합 직원으로 있던 박대규의 동생.]


안동역에 내리어 어디 좋은 여관을 찾고 싶으나 짐은 무겁고 또 어디가 어딘지도 알 수 없어서 내려갈 때 희준 군과 함께 들었던 역전의 태평여관이 다소 불편 불결은 했으나 하룻밤 참기로 하고 그냥 들렀더니 조금 있다 안동 보안서에 있다는 사람들이 와서 서에까지 동행하자고 하기에 퍽이나 의외였다. 혹시 당신네들이 사람을 잘못 보고 그러는 게 아니냐 하니 그렇지도 않다 하고 그럼 나는 이러이러한 신분이니 할 말이 있거든 여기서 하라고 했으나 상관의 명이라 그러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거야 아닌 밤에 홍두깨 격이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까닭을 모를 노릇이다. 그 전 일본시대라면 사상적 혐의로 이 서(署)에 급한 조회가 와서 그러는 게 아닐까 할 수 있지만 미군정 이후론 나는 어디까지 한낱 선량한 시민이었지 그들의 법망에 걸릴 만큼 치안을 교란하거나 불온한 사상을 품어본 일은 꿈에도 없다.

혹시 치안서에 있다는 사람들이 이 혼돈기를 타서 부정한 짓을 하는 음모단이나 아닌가고도 의심해 보았으나 팔에 두른 완장이 역연하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한 방에 든 동숙객들에게 내가 만일 오래 오지 않거든 이러이러한 조치를 해달라고 부탁하고 그 사람들을 따라나섰어도 그 전 경찰서로 가나 안 가나에 퍽이나 마음을 썼다.

마침내 서로 가고 또 거기엔 불이 환하게 켜 있고 또 경관이 많이 모여 있는 걸 보고 저윽이 안심했다. [그날 밤 마침 안동은 정전이라서 거리가 유난히 어두웠다.] 들어가서 자리를 잡은 뒤에 사법주임이란 사람으로부터 신분과 여행의 목적, 경과 등에 대해서 몇 마디 신문이 있었으나 나는 통혀 영문을 모르는 노릇이었다. 나중에 그의 말이 실상은 오늘밤에 태평여관으로부터 수일 전 이불을 한 채 잃은 일이 있는데 그날 밤 그 방에서 잔 손님이 다시 왔으니 취조해 봐 달라는 신고가 있었다. 서에서들도 사실 이불을 훔쳐간 사람이면 며칠 되지 않아서 그 여관에 다시 들지 않으리라 생각되었으나 신고가 있는 걸 묵살할 수도 없어서 오시라고 한 것인데 매우 미안하게 되었노라고, 또 저간의 사정을 잘 양해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절도 혐의를 받아보기는 실로 낙지(落地) 이후 처음이다.

세상일이란 모두 인(因)이 있음으로 해서 과(果)가 생기는지라, 내가 설사 그 여관의 이불을 훔치지 않았어도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잘못된 생각의 뿌리가 숨어있어서 그것이 인이 되어 오늘날 이런 봉액을 입게 되는 게 아닐까 하고 마음속으로 반성해 보았으나 도(盜)에 관한 한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마음에 접히는 것이 없다. 여러 해 전에 종이가 만만치 않아서 공용지 나부랭이를 사용(私用) 편지에 쓴 일 있음이 새삼스레 내 마음을 채찍질한다. 혹시 도(盜) 아닌 다른 일로써라도 내 마음의 기틀이 잘못 잡혀서 하늘님이 그걸 깨우쳐주실 양으로 이러한 사단을 베풀어주시는 게 아닐까 하고 두루 궁리해 보았다.

별로 아는 것도 없고 또 그리 두드러지게 공부하지도 않고 따라서 속이 텅 비인 내가 더욱이 일본시대엔 쥐구멍만 찾던 내가 무얼 안답시고 고향에서 강연이라고 명색한 것이 아예 잘못이고 내가 그동안 고난의 길을 허덕일 때 고향의 부로 친지가 많은 걱정을 해주었고 그러하므로 모든 질곡이 풀려버린 오늘날 내가 배운 것 또 내가 아는 한 그들에게 일러주어서 몽(蒙)을 여는 것이 지난날의 은고(恩顧)에 보답하는 길도 되고 현하 조선사람의 한낱 중대한 책무라고 생각한 것은 역시 나의 주제넘은 생각이 아니었을까. 오늘날 이 소조(所遭)는 그러한 때문의 천견(天譴)이 아닐까.

하여튼 이 조그만 피의 사건이 인연이 되어 그 사법주임의 소개로 동양여관이란 아주 깨끗한 곳에 들어서 하룻밤을 편히 쉴 수 있었다. 전화위복이랄까.



10월 19일 개다.

안동서는 차가 붐비어서 죽령 저쪽은 매우 고생되었다.

집에 와서 여장도 풀기 전에 이명구(李命求) 씨가 찾아와서 일인의 토지를 사고 싶으니 자금을 대어달라 하고 그러면 이익을 나눠 갖자는 제안이었다. 그가 면장 시대의 기업(機業)조합 문제, 면유림 매각 문제로 그처럼 면민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아직도 마음을 고치지 못하고 잇속을 찾아서 헤매는 양이 가긍도 하려니와 그보다도 내가 조합 돈을 함부로 융통하고 그 이득을 사사로이 하는 사람으로, 일인의 재산에 억탁해서 그러한 계제로 사리(私利)를 도모하는 사람으로 그들의 눈에 비치었을까. 적어도 이 씨의 눈에는 내가 그러한 제의에 응할 만한 위인으로 보였을까 하고 생각하니 비관하지 않을 수 없다.

기봉이가 그동안 감기로 며칠 고생했다 하나 인젠 그만하고 나를 보고 좋아서 방글방글 웃는다.

제천읍에 산다는 김상호(金相浩)란 분을 조합장이 안내하여 왔다. 제천에서 청년대가 해산되고 나서 다시 청년 각층을 망라해서 새로운 조직과 훈련을 갖자는 의견이 있는데 나를 그 지도자로 나와달라고 요청하기로 중의(衆意)가 합치되어서 자기가 그 대표로 왔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좋은 의도에 내 힘이 자란다면 도와드리는 걸 사양치 않겠으나 나는 본시 일개 서생에 지나지 않고 더욱이 연천(年淺)하고 사회적 열력(閱歷)도 없고 또 워낙 성질이 고루해서 남을 지도하거나 통솔할 재간은 없으므로 도저히 그 그릇이 아니라고 재삼 고사했으나 기어이 듣지 않고 하여간 한 번 읍으로 나와서 여러 청년을 만나봐 달라는 것이었다.



10월 20일 개다. (토)

아침엔 정평구(鄭平九)의 비거(飛車) 이야기.

[해설 : 임진왜란 초의 진주성 방어 전투(1592년 10월, 진주 대첩)를 이끈 진주목사 김시민은 여러 가지 새로운 무기의 사용을 시도했다. 그 휘하의 정평구는 쇠가죽과 대나무로 큰 연을 만들어 공중전에 활용했다고 전해진다.]


낮에는 이승팔(李承八) 씨가 와서 전번의 교원 지망을 또 그만두겠다는 어의(語意)로 말하므로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아무 말 하지 않았으나 그의 우유부단한 성질엔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내 지내온 길을 생각하면 역시 이와 비슷한 일이 있지 않았을까 반성해 볼 때 스스로 얼굴이 붉어짐을 어이할 길 없다. 지금은 또 어떠한가.

지방 청년들이 국문, 국사의 강습을 맡아달라고 하기에 딱이 거절할 수가 없어서 응낙하였다.



10월 21일 개다. (일)

오전 중에는 〈Grass Roof〉 중 기미년 독립선언서를 고쳐 번역하느라고 시간을 보내었다. 본시 심심풀이로 번역해 본 것이고 공표할 성질의 것도 못 되는 것을 서정렬 씨가 기어이 서울신보에 실어보겠다고 함으로써다.

낮에 이중연 씨가 평창서 오는 길이라고 들렀다. 고옥남 씨의 취임 승락을 얻었다고. 그러나 우리 내외가 모두 신명학교에 나간다는 거짓 전제로 하였다니 맹랑한 일이다. 더욱이 한심한 일은 그가 그러한 휼계를 부끄러워함은커녕 오히려 자기의 수완이 능란하다고 못내 자긍하는 듯한 눈치가 보이는 것이다. 진정한 사업가란 이러한 것을 의미함이 아닐 텐데. 그들에게 프랭클린의 소박한 이론이라도 읽히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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