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2년 5월 10일, 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하는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헌법 정신을 존중하고 의회를 존중하고 야당과 협치하면서 국민을 잘 모시도록 하겠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2년 3월 10일 당선 인사에서 강조한 말이다. 전날 치른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불과 0.73%포인트(24만7,077표) 차로 신승을 거둔 터라 '협치'와 '통합'이 최우선 과제였다. 1987년 직선제 도입 이후 치러진 8차례 대선 가운데 최소 표차로 기록될 만큼 대한민국이 둘로 갈라진 상태였다.

그는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겠다", "국민을 편 가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심지어 "민주국가에서 여소야대는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초심을 담았을 온갖 약속을 이후 하나둘 내팽개쳤다. 수세에 몰리자 판을 단번에 뒤집으려고 비상계엄에 나섰다가 임기 2년 7개월 만에 직무가 정지됐다. 그리고는 석 달 뒤 '파면'돼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통령 5년 임기를 반토막에 끝낸 셈이다.

朴 구속하고 국민 검사로… 文, 검찰총장 발탁



윤 전 대통령은 생의 절반가량을 검사로 살았다. 고시 문턱을 넘은 건 1991년. 아홉 차례 도전 끝에 서른을 넘은 늦깎이(31세)로 검사가 됐다. 8번의 낙방을 곱씹으며 체득한 버티는 힘은 이후 '검사 윤석열'의 시간을 지배했다. 어떤 외압에도, 그래서 나락으로 떨어져도 소신과 뚝심을 앞세워 수사를 밀고 나가는 원동력이 됐지만 반대편에서는 이를 ‘집착’이라고 불렀다.

27년 검사 경력은 그늘보다 빛이 훨씬 많다. 출발은 늦었지만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대검 중수2과장, 대검 중수1과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권력형 비리를 뿌리까지 파헤치는 ‘대표 특수통’ 검사란 별칭이 붙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 명예회장,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 등 여러 거물 인사들이 그의 손을 거쳐 법의 심판을 받았다.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팀장을 맡아 박근혜 정부의 심장부를 향해 칼을 겨눴다. 돌아온 건 좌천이었다. ‘항명 파동’의 중심에 섰고 이후 대구, 대전 등 수사권 없는 지방 고등검찰청을 전전하며 유랑 생활을 감내해야 했다. 그해 10월 국정감사장에서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답변으로 훗날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서사의 첫 페이지를 열었다.

수명을 다해 가던 검사 윤석열을 살려낸 건 문재인 전 대통령이었다. 2016년 12월 국정농단 특검팀 합류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에 관여했고 ‘국민 검사’라는 대중적 인기를 얻었던 그를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전격 발탁했다. 이어 2019년 7월 검찰총장 자리까지 맡겼다.

윤석열 전 대통령 연표


文과의 갈등… 민주당의 영웅에서 적으로



'검찰총장 윤석열'은 달랐다. 으레 ‘법질서 확립’을 되뇌던 검찰총장들의 취임사 틀을 벗어나 “시장의 룰이 깨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룰을 위반하는 반칙 행위는 묵과할 수 없다”며 이례적으로 ‘공정 경쟁’을 강조했다. ‘시장주의자’의 면모를 부각시켰다. 당시 “시카고학파인 밀턴 프리드먼과 오스트리아학파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사상에 깊이 공감하고, 자유시장경제와 형사 법 집행의 문제에 관해 고민해왔다”며 자신의 철학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신념이 지나치게 확고했다. 때문에 ‘갈등’의 뇌관이 곳곳에 도사렸다. “살아있는 권력에도 똑같은 자세가 돼야 한다”는 문 전 대통령의 격려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 비리,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 의혹 등에 대해 묵과하지 않고 구속수사 방침을 고집했다.

2020년 1월 정권이 저격수로 낙점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던 윤 전 대통령의 충돌은 대통령과 민주당이 끝없이 대립하는 전초전이었다. 추 전 장관은 인사조치로 검찰총장의 수족을 잘라내더니 검언 유착 의혹 사건, 한명숙 전 총리 위증 교사 의혹 사건, 라임자산운용 로비 의혹 사건 등에서 수사지휘권을 잇따라 발동하며 압박했다. 급기야 헌정사상 최초로 검찰총장을 검사 징계위원회에 회부하는 초강수를 뒀다.

그러자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은 그해 8월 신임검사 신고식에서 “민주주의 허울을 쓴 독재·전체주의를 배격해야 한다”고 했고, 10월 국정감사에선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어느덧 그는 반민주당의 투사로 변신해 있었다. 대항마를 찾던 보수진영은 그런 검찰총장에게 열광했다.

'반문' 상징적 인물... 단숨에 대선서 승리



2021년 6월 29일 전격 정치 출마와 대권 도전을 선언한 윤 전 대통령은 출마 선언문에서 “반드시 정권교체”라는 단어를 8차례나 입에 올렸다. 그러나 ‘초보 정치인’은 대선 기간 동안 롤러코스터를 탔다. △전두환 정권 옹호 발언과 같은 숱한 실언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논란 △이준석 당대표와의 갈등 △김건희 여사의 허위 학위 논란 △무속 비선 의혹 등 악재가 겹겹이 쌓였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를 심판하고자 하는 국민적 열망이 더 강했다. 결국 민심은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정치교체’ 공약보다 윤석열 후보의 ‘정권교체’ 구호에 강렬하게 반응했다.

2월1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8차 변론'에 출석하기 위해 대심판정으로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협치 실종… 야당을 반국가세력 규정하고 국회 발 끊어



검찰총장 사퇴 1년 2개월 만인 2022년 5월 10일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후 요동치는 내리막길이 시작됐다. 자신의 상징과 같았던 공정과 상식의 가치를 스스로 훼손하는 일이 잦았다. 인사는 시작부터 문제였다. 대통령실은 물론, 금융감독원과 국가정보원까지 검찰 출신으로 요직을 채웠다. 야당의 반발에도 국회 인사청문보고서 없이 임명을 강행한 장관만 15명을 넘겼다.

국회와 늘 대립했다.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국회 탄핵소추 이전까지 총 25번의 거부권을 행사했다. 취임 직후부터 줄곧 ‘탄핵’을 외치고, 여당과 협의 없이 입법 독주를 강행한 민주당이었지만, 윤 전 대통령이 보여준 불통도 여기에 못지 않았다.

오히려 대통령의 언어로 보기 어려운 거친 언사가 쏟아졌다. 2022년 10월 국민의힘 원외 당협위원장 간담회에서 ‘종북 주사파’란 말을 처음 언급했고, 2023년 6월 한국자유총연맹 69주년 창립 기념식, 8월 광복절 경축사, 9월 인천상륙작전 전승기념식 등에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인사 등을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했다.

야당과 국회는 대화의 상대가 아니었다. 제1야당 대표와는 지난해 총선 참패 이후 고작 한 차례 만났다. 급기야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이 국회 개원식에 불참했다. 2025년도 예산안 국회 시정 연설도 거부했다. 국회를 ‘패싱’한 이유에 대해 "탄핵소추를 남발하는 민주당 때문"이라고 마지막 기자회견(2024년 11월 7일)에서 강조했다.

반면 김건희 여사 의혹 앞에선 입을 다물어 의혹을 키웠다. 대신 야당의 정권 전복 시도라는 구호만 외쳐댔다. 2023년 11월 보도된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대통령실은 단 한 차례 공식 입장을 낸 게 전부였다. 사과는 반 년이 지나서야 겨우 나왔다. 정치브로커 명태균씨의 폭로에 대한 해명은 아예 거짓 해명으로 점철된 상태다.

당선자 시절 윤석열 전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 인수위사진기자단


불법계엄 후 “국가 정상화하고자”… 국론 분열에 파면까지



군 병력을 동원해 국회와 선관위를 봉쇄하려다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됐다. 직무정지된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파면되기까지 그 어떤 사과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오히려 대통령 신분으로 나라를 두 쪽 내는 데 앞장섰다. 지난해 12월 12일 돌연 공개한 대국민 담화에서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권 행사는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 행위”라며 “대통령의 헌법적 결단”이라고 강변했다. 심지어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 붕괴를 막고 국가 기능을 정상화하고자 했다”면서 편협한 사고의 끝판왕을 보여줬다.

이처럼 자극적인 발언에 고무돼 극단에 치우쳐 있던 지지층이 결집했다. 민주당을 악마화한 각종 발언을 통해 ‘반이재명’ 정서에도 불을 붙였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의 절차적 허점으로 인해 구속 52일 만에 구치소에서 풀려나자 그는 지지층을 향해 다시 주먹을 불끈 쥐며 분열을 선동했다. 그렇게 자신을 지지하고, 불법계엄을 옹호하는 지지자들만의 대통령으로 남은 채 대한민국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서 파면됐다.

한국일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3803 尹 파면에 갈라진 보수단체…“조기대선 준비” vs “불복종 투쟁” 랭크뉴스 2025.04.04
43802 [속보]선관위 “21대 대통령선거 예비후보 등록 시작” 랭크뉴스 2025.04.04
43801 윤석열 파면 뒤 불법 된 ‘이재명 비방’ 현수막…국힘, 부랴부랴 ‘철거’ 랭크뉴스 2025.04.04
43800 김형두 재판관 등 두드려준 문형배 대행…111일 마침표 찍은 순간 [지금뉴스] 랭크뉴스 2025.04.04
43799 문형배, 퇴장하며 김형두 등 두드렸다…심판정선 탄성·박수 랭크뉴스 2025.04.04
43798 봉황기 내리고 참모진 사의… ‘용산시대’ 사실상 마침표 랭크뉴스 2025.04.04
43797 이젠 예우·특권 사라진 '맨몸'‥尹 향한 수사 '대기번호' 랭크뉴스 2025.04.04
43796 헌재 “파면” 순간, 방청석에서 “와~” 함성·박수·눈물 뒤섞여 랭크뉴스 2025.04.04
43795 [속보] 尹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너무나 안타깝고 죄송" 랭크뉴스 2025.04.04
43794 윤 대통령 측 "헌재 결정 법리적으로 납득할 수 없어" 랭크뉴스 2025.04.04
43793 윤석열 "국민 여러분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너무나 죄송하다" 랭크뉴스 2025.04.04
43792 정진석 비서실장 등 대통령실 고위 참모진 일괄 사의 랭크뉴스 2025.04.04
43791 [단독] 한덕수·노태악 통화, 6월3일 대통령 선거일 지정 가닥 랭크뉴스 2025.04.04
43790 [단독] '탄핵 반대' 외치던 김기현 "우린 폐족"... 초선들은 부글부글 랭크뉴스 2025.04.04
43789 경제계 "헌재 결정 존중, 사회안정·경제활력 제고에 힘 모아야" 랭크뉴스 2025.04.04
43788 윤석열 "대한민국 위해 일할 수 있어 영광‥기대 부응 못해 죄송" 랭크뉴스 2025.04.04
43787 [결정문 분석] ‘5 대 3의 희망’ 정형식·김복형·조한창도, 파면에 이견 없었다 랭크뉴스 2025.04.04
43786 尹, 파면 후 첫 메시지 "기대 부응 못해 너무나 안타깝고 죄송" 랭크뉴스 2025.04.04
43785 ‘6월 3일’ 유력… 이번에도 장미 대선 랭크뉴스 2025.04.04
43784 [尹탄핵] '중대한 위헌' 판단 근거는…"협치로 해결않고 국가긴급권 남용" 랭크뉴스 2025.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