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선진국이란 건 거대한 착각
탄핵심판 결과 어떻든 승자는 없다
정부 정치 사법기관 모두 개혁해야
마침내 끝이다. 화석화한 개념인 계엄이 현실의 괴물로 실체화한 지 무려 넉 달 만이다. 코앞에 탄핵심판 선고를 두고 논쟁이나 예상은 더는 의미 없다. 차라리 복기(復棋)의 시간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국가시스템 전반에 이 정도로 구멍이 많을 줄 몰랐다. 우리가 디디고 선 바닥은 단단한 땅이 아니라 싱크홀을 가린 한 겹 종잇장에 불과한 것이었다. 선진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은 착각에 바탕한 허세였다.
우리의 민주공화국 정체는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 하나로 뒤집힐 수 있을 만큼 취약한 것이었다. 판단과 집행이 워낙 어수룩했기 망정이지 꼼짝없이 계엄하의 질식 상태에 놓일 뻔했다. 대통령의 자의적 권력행사를 제어할 인적 제도적 장치도 없었다. 군에는 부당명령에 대응하는 매뉴얼이 없었고, 정상 지휘체계를 벗어난 비선(秘線)문화도 방치돼 있었다. 국가안보에 이보다 치명적인 해악요소는 없다.
정치는 말할 것도 없다. 국가위기에서도 정치는 늘 그랬듯 문제의 해결자가 아니라 갈등의 증폭자 역할만 했다. 여야 할 것 없는 정상배들은 주군의 의중만 살피며 레밍 떼처럼 몰려다녔다. 한쪽은 위헌행위에 대한 무조건적 옹호, 다른 쪽은 대선 일정 단축과 사법 리스크 털기가 유일한 정치행위였다. 국가와 국민, 법과 정의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공천제를 포함한 선거제도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 한 바뀌지 않을 풍경이다.
이 틈을 유튜브가 비집고 들었다. 훈련받은 대규모 취재인력을 보유한 전통 미디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보의 신뢰성과 책임감이 떨어지는 유튜버들이 대중을 자극하고 정국을 파국으로 몰았다. 전통 언론은 이념진영으로 갈린들 정보의 취사선택, 가중치 판단이나 해석에서 차이를 보일 뿐이다. 없는 사실을 창조해내거나 A를 B로 바꾸는 짓은 못한다. 유튜브 세계엔 그런 제약이 없다. 적절한 규제방안 없이는 줄곧 국가갈등의 진원으로 작동할 것이다.
더 충격적인 건 국가가 최종판단의 신성한 책임을 맡긴 사법기관마저 일부 구성원들의 자질과 인식이 때론 시정의 필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깨달음이다. 논리적으로 불가해인 이재명 판결 뒤집기가 그랬고, 일관되게 오직 법리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 헌법재판소도 그랬다. 법원 헌재 모두 사법적 정치기관으로 인상 지워지면서 법 절차 때마다 정파성을 의심할 만한 독단적 해석이 사실과 상식을 덮었다.
헌재로 좁혀 부연하자면 재판관들이 정치와 여론에서 독립적이었으면 이 단순한 법리심리를 변론종결 후 한 달 넘게 끌 이유가 없었다. 마냥 지체되면서 위헌판단이 진영 간 힘겨루기 게임으로 변질됐다. 유튜버들의 발호, 광적인 진영 간 대립을 이 지경으로 증폭시킨 책임은 상당부분 그들에게 있다. 지체된 정의는 과연 불의만큼이나 위험한 것이었다. 권위를 잃은 재판관 구성과 선임방식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충 짚어도 문제가 이 정도다. 절망적인 건 이런 구멍들을 메울 중재·양보·타협 같은 충전재가 우리 사회에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탄핵사태로 인해 이런 환부들을 새삼 환기하게 된 걸 도리어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몇 시간 뒤 어디에선 “정의의 승리” 따위 환호가 터질 것이다. 하지만 이 난장판 탄핵게임에선 정의도 승자도 없다. 엉망인 국가시스템의 공동 운영자, 혹은 방관자로서 부끄러워해야 할 패자들만 남았다.
당장 대선 판이 열리는 마당에 별로 귀 기울일 것 같지도 않지만 그래도 흥분과 분노가 가라앉으면 이런 문제들을 중요한 대선공약으로 고심하기 바란다. 그래야 지난 넉 달의 고통이 그나마도 값할 것 아니겠나.
탄핵심판 결과 어떻든 승자는 없다
정부 정치 사법기관 모두 개혁해야
2월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침내 끝이다. 화석화한 개념인 계엄이 현실의 괴물로 실체화한 지 무려 넉 달 만이다. 코앞에 탄핵심판 선고를 두고 논쟁이나 예상은 더는 의미 없다. 차라리 복기(復棋)의 시간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국가시스템 전반에 이 정도로 구멍이 많을 줄 몰랐다. 우리가 디디고 선 바닥은 단단한 땅이 아니라 싱크홀을 가린 한 겹 종잇장에 불과한 것이었다. 선진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은 착각에 바탕한 허세였다.
우리의 민주공화국 정체는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 하나로 뒤집힐 수 있을 만큼 취약한 것이었다. 판단과 집행이 워낙 어수룩했기 망정이지 꼼짝없이 계엄하의 질식 상태에 놓일 뻔했다. 대통령의 자의적 권력행사를 제어할 인적 제도적 장치도 없었다. 군에는 부당명령에 대응하는 매뉴얼이 없었고, 정상 지휘체계를 벗어난 비선(秘線)문화도 방치돼 있었다. 국가안보에 이보다 치명적인 해악요소는 없다.
정치는 말할 것도 없다. 국가위기에서도 정치는 늘 그랬듯 문제의 해결자가 아니라 갈등의 증폭자 역할만 했다. 여야 할 것 없는 정상배들은 주군의 의중만 살피며 레밍 떼처럼 몰려다녔다. 한쪽은 위헌행위에 대한 무조건적 옹호, 다른 쪽은 대선 일정 단축과 사법 리스크 털기가 유일한 정치행위였다. 국가와 국민, 법과 정의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공천제를 포함한 선거제도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 한 바뀌지 않을 풍경이다.
이 틈을 유튜브가 비집고 들었다. 훈련받은 대규모 취재인력을 보유한 전통 미디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보의 신뢰성과 책임감이 떨어지는 유튜버들이 대중을 자극하고 정국을 파국으로 몰았다. 전통 언론은 이념진영으로 갈린들 정보의 취사선택, 가중치 판단이나 해석에서 차이를 보일 뿐이다. 없는 사실을 창조해내거나 A를 B로 바꾸는 짓은 못한다. 유튜브 세계엔 그런 제약이 없다. 적절한 규제방안 없이는 줄곧 국가갈등의 진원으로 작동할 것이다.
더 충격적인 건 국가가 최종판단의 신성한 책임을 맡긴 사법기관마저 일부 구성원들의 자질과 인식이 때론 시정의 필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깨달음이다. 논리적으로 불가해인 이재명 판결 뒤집기가 그랬고, 일관되게 오직 법리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 헌법재판소도 그랬다. 법원 헌재 모두 사법적 정치기관으로 인상 지워지면서 법 절차 때마다 정파성을 의심할 만한 독단적 해석이 사실과 상식을 덮었다.
헌재로 좁혀 부연하자면 재판관들이 정치와 여론에서 독립적이었으면 이 단순한 법리심리를 변론종결 후 한 달 넘게 끌 이유가 없었다. 마냥 지체되면서 위헌판단이 진영 간 힘겨루기 게임으로 변질됐다. 유튜버들의 발호, 광적인 진영 간 대립을 이 지경으로 증폭시킨 책임은 상당부분 그들에게 있다. 지체된 정의는 과연 불의만큼이나 위험한 것이었다. 권위를 잃은 재판관 구성과 선임방식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충 짚어도 문제가 이 정도다. 절망적인 건 이런 구멍들을 메울 중재·양보·타협 같은 충전재가 우리 사회에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탄핵사태로 인해 이런 환부들을 새삼 환기하게 된 걸 도리어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몇 시간 뒤 어디에선 “정의의 승리” 따위 환호가 터질 것이다. 하지만 이 난장판 탄핵게임에선 정의도 승자도 없다. 엉망인 국가시스템의 공동 운영자, 혹은 방관자로서 부끄러워해야 할 패자들만 남았다.
당장 대선 판이 열리는 마당에 별로 귀 기울일 것 같지도 않지만 그래도 흥분과 분노가 가라앉으면 이런 문제들을 중요한 대선공약으로 고심하기 바란다. 그래야 지난 넉 달의 고통이 그나마도 값할 것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