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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군 지품면 황장3리 신한용씨
산불 확산 가장 먼저 알고 주민들 구해
"온 마을이 키워줘 외면할 수 없어"
"일상 복귀 때까지 관심 가져달라"
경북 영덕군의 청년 농부 신한용씨가 3일 이재민 대피소인 영덕국민체육센터에서 대형 산불이 영덕을 덮친 그날 밤의 다급했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영덕=김정혜 기자


경북 의성군 산림을 며칠간 태웠던 산불이 동해안까지 초고속으로 확산한 지난달 25일 밤 영덕군 지품면 황장3리 상공에는 어른 머리만 한 불덩이가 휙휙 날아다녔다. 삽시간에 마을 뒷산이 뻘겋게 타올랐고 불덩이가 떨어진 주택들에서는 화염이 솟구쳤다.

다급했던 순간 누군가가 목청이 찢어질 정도로 "불이야"를 외치며 마을 곳곳을 뛰어다녔다. 황장리 주민 50여 명 중 가장 젊은 신한용(36)씨였다. 그의 신속한 대피 유도 덕에 고령의 주민들은 모두 무사히 마을에서 빠져나갔다. 신씨는 남은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탈출했다.

3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영덕국민체육센터에서 만난 그는 당시 상황이 떠오른 듯 몸을 흠칫 떨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이재민이 돼 대피소에 머무는 처지이지만 모두를 구했다는 안도의 의미일 터. 신씨는 "마을이 활활 타는데도 정류장에서는 노부부가 태연히 버스를 기다렸고, 아래에서는 버스와 택배 트럭이 올라오고 있었다"며 "너무 다급해 '불이 번졌으니 빨리 나가라' 소리를 질렀는데도 다들 굼떠 온몸이 바싹바싹 마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날 밤 의성군의 산불은 약 80㎞ 떨어진 영덕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청년 농부 신씨는 문경시에서 사과 묘목 100주를 트럭에 싣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산불로 도로 곳곳이 막히고 "불이 계속 번진다"는 라디오 뉴스를 들었지만 멀리 있는 산불이 영덕까지 덮칠 줄 상상조차 못했다.

대형 산불이 덮친 지난달 25일 밤 마을 주민을 구한 영덕군 지품면 황장3리의 청년 농부 신한용씨가 3일 이재민 대피소인 영덕국민체육센터에서 어머니 권용희씨와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영덕=김정혜 기자


불길한 생각이 뇌리를 스친 것은 청송군 파천면의 지인 과수원에 들렀을 때다. 신씨는 "과수원에서 10㎞가량 떨어진 안동시 길안면까지 산불이 번졌다는 소식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며 "나무 타는 냄새가 나고 먼지도 평소보다 많았지만 그래도 이때까지는 '설마' 싶었다"고 말했다.

황장3리로 귀가한 신씨는 걱정을 뒤로하고 묘목부터 심었다. 30분쯤 지났을까. 지인의 전화를 받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산불이 한 시간 만에 청송까지 번졌다는 연락이었다. 뒤이어 지인이 보낸 동영상을 보니 대낮인데도 천지가 암흑으로 변해 시뻘건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일을 멈추고 곧장 면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지인의 과수원에서 청송과 맞붙은 황장리까지는 직선으로 약 10㎞. 지금까지 번진 속도라면 한 시간 안에 도달할 거리였다. 실제로 산림당국은 역대 산불 중 가장 빠른 시속 8.2㎞로 당시 확산 속도를 추산했다.

신씨는 "정확히 오후 5시 5분에 면사무소로 전화를 했는데 동네 이장들도 모여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더라"며 "미리 어머니부터 대피시키고 농약 살포차에 물을 가득 채웠다"고 말했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50분 뒤 산불은 청송군 진보면을 지나 황장리의 가장 높은 산 황장재에 다다랐다. 그는 "불이야"라고 외치며 노인 2명을 차에 태워 10㎞ 떨어진 지품중학교로 향했다. 그때 마을에서 귀가 제일 어두운 할머니가 우왕좌왕하는 걸 목격했다. 불덩이가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지만 주저없이 차에서 내린 뒤 불길을 뚫고 할머니를 부축해 뛰었다.

신씨는 "한 살 때 고향으로 귀농한 아버지와 들어와 평생 이곳에서 자랐고 온 마을이 키워줘 동네 어른은 모두 부모"라며 "이러다 나도 죽겠다 싶었지만 누구도 외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불이 번지는데도 버스를 기다리는 노부부와 마을로 들어오는 시내버스, 택배 트럭까지 돌려 보내느라 신씨는 가장 늦게 빠져나왔다. 산불이 번지는 속도를 몸소 느낀 그는 재난문자에 대피장소로 뜬 지품중학교를 통과하고 10㎞를 더 달려 영덕읍 영덕국민체육센터에 도착했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었다. 잘 걷지 못하는 할머니를 비롯해 마을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아 포항시의 친구 집으로 향했다. 신씨가 차의 시동을 건 순간 영덕읍도 불길에 휩싸였다. 한밤중 어머니와 동네 할머니 등 5명을 태우고 친구 집에 도착한 그는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신한용씨가 어머니와 지내던 경북 영덕군 영덕읍 황장리 주택이 지난 26일 산불에 모두 타 건물 뼈대만 남아 있다. 신한용씨 제공


다음 날 눈뜨자마자 한달음에 달려간 마을은 처참했다. 신씨가 살던 황장3리는 주택 15채 정도가 모조리 탔고, 아버지가 생전에 일군 5만여㎡의 과수원은 잿더미로 변했다. 그는 "주민 모두 목숨을 건졌지만 폐허가 된 마을을 보니 억장이 무너지더라"며 "대출을 받아 지은 창고와 작업장, 장비까지 몽땅 타 또 빚을 내야 한다 생각하니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전국 각지에서 온정의 손길이 닿고 있지만 곧 잊히지 않겠느냐"며 "이재민들이 평온했던 일상으로 돌아갈 때까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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