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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바BAR_고한솔의 여의도 고프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도 이제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헌정 질서를 지키고 헌재 판단을 온전히 수용한다는 입장을 국민에 밝혀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코앞으로 다가온 2일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국회에서 열린 당 의원총회에서 ‘승복’ 두 글자를 또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그는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 탄핵심판) 결과가 어떻든 헌법기관의 판단을 존중하고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며 “헌재 판단을 부정하고 불복을 선동하는 순간 더 이상 헌법과 민주주의, 공적질서를 말할 자격이 없다”고 민주당을 꾸짖듯 말했습니다.

국민의힘은 지난 2월부터 당 ‘투 톱’이 나서 “당의 공식 입장은 헌재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것”(권성동 원내대표)이라며 헌재 결정 승복을 민주당에 촉구해왔습니다. 물론, 헌법적 분쟁의 최종 심사기구인 헌재 결정은 ‘단심제’여서 불복할 방법이 없고, 주문을 읽는 순간 그 즉시 효력이 발생합니다. 헌재 결정문에 헌법재판관이 주문을 읊은 시각을 ‘몇시, 몇분’까지 정확하게 적는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왜 민주당에 거듭거듭 승복을 요구할까요?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 여러 라디오 인터뷰 프로그램 진행자들이 ‘국민의힘 요구대로 헌재 결정에 승복할 거냐?’고 묻는 걸 두고, 민주당 의원들은 질문부터 점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당내 중진 정성호 의원은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런 비유를 들었습니다. “불량 학생이 같은 반 친구한테 돈을 뺏고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그 학생은 물론이고 부모가 나서서 ‘어떤 처분이든 받아들이겠다’며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게 우선이다. 그런데 어렵게 열린 징계위원회에서 도리어 피해자에게 결정에 승복하라고 한다. 침묵하는 가해자를 두고 피해자에게 승복을 요구하는 게 말이 되는가.” 당직을 맡은 또 다른 의원은 “일종의 프레임 싸움 아니냐”며 “승복이니 어쩌니 하는 행태 자체가 이 상황의 무거움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말을 더 얹지 않겠다”고 불쾌감을 드러냈습니다.

이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승복’(납득하여 따른다)이 잘못을 저질러 심판을 기다리는 사람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12·3 내란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자 탄핵심판 피청구인인 윤 대통령조차 ‘승복’ 메시지를 내지 않는 상황에서 “살인죄를 저지른 사람이 반성하지 않고 있는데 (피해자에게) 용서하라고 강요하는 질문처럼 들린다”(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 2일 한국방송 라디오 ‘전격시사’)는 지적입니다. 지난 2월12일 채널에이(A) 유튜브에서 “민주공화국의 헌법 질서에 따른 결정을 승복하지 않으면 어쩔 것이냐”고 말했던 이 대표가 이날 “승복은 윤석열(대통령)이 하는 것”이라고 말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명백한 피해자-가해자 구도를 뒤흔드는 질문이어서, 그 의도에 휘말릴 필요가 없다는 판단입니다.

정치권 안팎에선 헌재 결정 이후 벌어질 소요 사태를 걱정하며 윤 대통령에 승복 선언을 하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지만, 윤 대통령은 여전히 침묵을 키지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그런 윤 대통령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윤 대통령에게 승복 메시지를 내라 건의할 건지’를 묻는 기자들에게 “헌재 결정이 나면 승복하는 게 대한민국 헌법질서다. 당연하기 때문에 당사자에게 (승복 메시지를) 내라, 내지 말라 얘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이 민주당에 요구하는 ‘승복’은 철저히 정략적인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헌재 탄핵심판의 또 다른 주체는 청구인인 ‘국회’이지 ‘민주당’이 아닙니다. 또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의 효력은 주문을 읊는 순간 모든 국가기관을 구속합니다. 그럼에도 민주당을 콕 찍어 승복하라는 건 “12·3 내란사태를 단순한 정쟁으로 몰고가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이 점을 지적하며 “탄핵심판의 구도를 헌법 부정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싸움 속에서 야당의 탄핵 공세에 저항하다가 희생당하는 코스프레 정도로 축소하려는 것 같다”고 비판했습니다.

탄핵심판 기각·각하를 해도 승복해야 하고, 인용을 해도 승복해야 하는 국민의힘 처지에선, 설사 인용 결정이 나온다 해도 미리 ‘밑밥’을 깔아놔야만 윤 대통령·극우 세력과 선을 긋고 조기 대선 채비에 나설 수 있습니다. 민주당의 또 다른 재선 의원은 “초조함의 표현이자, 내부 진영을 향한 자기 합리화 과정”이라며 “여러 개의 복선을 깔고 있는 다층적 포석”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중요한 것은 국민의 의사”라며 “국가와 다수의 민주의식을 가진 국민들이 피해자인데,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우리가 승복하니마니 대신해서 말할 수 있는가”라고 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4일 헌재 심판정에 출석하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붙잡고 승복 싸움을 벌일 게 아니라, 헌재 판단이 나오고 윤 대통령이 꺼낼 첫 마디가 무엇일지 그것부터 다듬고 고르도록 설득해야 하지 않을까요.


고한솔 기자 [email protected]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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