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 부커 민주당 상원의원(뉴저지)이 1일(현지시간) 상원 본회의장에서 밤샘 연설을 하고 있다. 상원TV제공/AP연합뉴스

“71일 만에 미국 대통령이 미국 국민의 안전과 금융 안정, 민주주의의 핵심적 기초에 너무나 큰 피해를 끼쳤다.”

미국 민주당 소속 코리 부커 연방 상원의원(56·뉴저지)이 1일(현지시간) 25시간 넘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의 정책을 비판하는 ‘마라톤 연설’을 하며 상원 역사상 최장 발언 기록을 세웠다.

지난달 31일 오후 7시 상원 본회의장 연단에 오른 부커 의원은 만 하루를 꼬박 넘긴 1일 저녁까지 계속 선 채로 25시간 5분 동안 연설했다. 종전 상원 최장 연설 기록은 1957년 민권법에 반대하는 연설을 한 스트롬 서먼드 당시 상원의원(공화)이 보유한 24시간 18분이었다.

부커 의원이 이날 1일 오후 7시19분을 넘기며 최장 연설 기록을 돌파하자 장내 민주당 의석에서는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는 21세기 들어 최장 시간 상원 연설 기록이던 테드 크루즈 의원(공화)의 21시간 19분(2013년 전 국민 의료개혁 법안 반대 연설)도 돌파했다.

부커 의원의 연설은 특정 법안을 좌절시키기 위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는 아니었다. 그는 토론 형식을 빌려 트럼프 행정부의 의료·교육·이민·국가안보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상원 공화당이 추진하는 정부지출 삭감도 비판했다. 공화당 트럼프 행정부의 독주 앞에 무기력한 민주당의 ‘저항 동력’을 되살리려 한 시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상원 규정상 의원이 토론 도중 말을 멈추거나 연단을 떠나면 발언권을 상실하기 때문에 부커 의원은 이날 정오 상원 소속 목회자의 기도 시간을 제외하고는 발언을 계속했다. 화장실도 단 한 차례도 가지 않았다.

그는 “이것은 좌나 우,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당파적 순간이 아니다. 도덕적 순간이다”라고 말했다. 민권운동 지도자였던 존 루이스 전 하원의원(민주), 초당적 협력의 모범을 보여준 고 존 매케인 상원의원(공화)을 소환하기도 했다. “나의 오늘 노력은 그들(트럼프 정부)이 하려는 것을 막기에 미흡하다. 하지만 우리 민중은 강력하다”고도 말했다.

부커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자신이 연설에 앞서 수일간 단식했다면서 “화장실에 어떻게 갈지를 생각하는 대신 불행히도 나 자신을 탈수시키는 길을 택했다”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부커 의원에게 질문을 던지는 동안 의원실 보좌진들이 그에게 휴지를 건네 땀을 닦게 하거나 자료가 담긴 새 바인더를 건넸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한국계 앤디 김 상원의원(민주·뉴저지)과 지역구가 같고 뉴저지 상원의원 중 첫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부커 의원은 2013년 보궐선거를 통해 연방 상원에 진출했고 2014년과 2020년 선거에서 재선됐다.

뉴저지 북부의 백인 커뮤니티에서 자라난 그는 스탠퍼드대에서 풋볼 선수로 뛰었으며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이후 비영리단체에서 빈곤층을 위한 법률 자문을 제공하다 뉴저지주 최대 도시인 뉴어크의 시의회 의원, 시장을 지냈다. 1998년 뉴어크 시의회 선거 당시 도시 개발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며 열흘간 단식투쟁을 벌여 눈길을 끌었다.

경향신문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