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19일(현지시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한때 세계 선진국 가운데 독주하던 미국 경제가 최근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가 전망치는 올라간 데다 경제성장률은 둔화할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가장 큰 원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정책이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월가는 감세와 규제완화를 기대하며 환호했다. 달러는 강세를 보였고 주가는 뛰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예상과 달리 감세와 규제완화보다는 관세 부과에 더 집중하자 월가의 불안감이 커지는 중이다. 관세가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성장을 둔화시킬 것으로 예상돼서다. Fed, 성장률 내리고 물가 전망치 올리고
미국 중앙은행(Fed) 내부에서는 최근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경제성장률은 하향 조정하는 한편 인플레이션 전망은 기존보다 올리면서다.
Fed는 3월 19일(현지 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통해 내놓은 경제전망요약(SEP)에서 2025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기존 2.1%에서 1.7%로 하향 조정했다. 반면 핵심 인플레이션(식료품·에너지를 제외한 물가)은 연간 2.8% 상승할 것으로 전망, 기존 예상치(2.5%)보다 상향 조정했다.
이는 경기둔화와 물가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커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FOMC는 성명에서 “경제 전망의 불확실성이 증가했다”며 “최대 고용과 물가안정이라는 두 가지 목표의 위험 요소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 교역국에 대한 강력한 관세정책을 시행하면서 물가상승과 소비 위축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Fed는 올해 두 차례 금리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이 크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FOMC 위원들의 금리 전망을 나타내는 ‘점도표(dot plot)’에 따르면 19명의 위원(투표권 여부 무관) 중 다수가 올해 말 기준금리 중간값을 연 3.9%로 예상했다. 이는 목표금리 범위가 연 3.75~4% 수준임을 의미한다.
하지만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과거만큼 경제에 낙관적이지 않다. 이번 회의에서 4명의 위원은 올해 금리인하를 전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지난 1월 회의에서 단 1명의 위원만이 금리 동결을 전망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이는 Fed 내에서 인플레이션 상승 위험을 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금리정책을 보다 보수적으로 운용할 가능성이 커졌음을 의미한다. Fed는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향후 경기지표를 면밀히 검토하며 신중한 통화정책을 이어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수습 나선 파월
FOMC의 이 같은 전망에도 당일 뉴욕증시는 일제히 올랐다. 3월 19일 다우존스지수는 전장보다 383.32포인트(0.92%) 상승한 4만1964.63에 거래를 마쳤다. S&P500 지수는 전장보다 60.63포인트(1.08%) 오른 5675.29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전장보다 246.67포인트(1.41%) 오른 1만7750.79에 각각 마감했다. 특히 이번 증시 반등은 FOMC 회의일 기준으로 7월 이후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뉴욕증시의 이 같은 환호는 파월 의장의 발언 영향이 크다. 파월 의장은 이날 FOMC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정책 금리 경로가 변하지 않았는데 이는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냐”는 질문에 “현재 인플레이션 일부는 관세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하다”면서도 “인플레이션이 단기간 지속되다가 자연스럽게 하락할 경우 정책적 개입 없이도 이를 관망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일 가능성이 있으니 통화정책을 당장 변화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트레이딩 플랫폼 이토로의 브렛 켄웰은 CNBC에 “많은 시장 참가자들이 이번 Fed 성명에서 ‘일시적’이라는 표현에 주목하고 있지만 오늘의 핵심 단어는 ‘불확실성(Uncertainty)’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Fed가 올해 인플레이션 전망을 3개월 전보다 높게 보면서도 왜 2025년에 금리를 두 차례 인하할 계획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투자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Fed가 경기둔화에 더 대비하고 있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게다가 파월 의장 또한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는 점을 시사하면서도 관세 리스크에 대한 발언도 잊지 않았다. 다만 시장에선 파월 의장의 발언 가운데 낙관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다.
실제 파월 의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인플레이션이 상승하기 시작했다”며 “이는 부분적으로 관세의 영향이며 올해 내내 인플레이션 둔화가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 “전반적인 경제지표는 견조하지만 가계와 기업 설문조사에서는 불확실성이 급격히 커지고 있으며 경기둔화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덧붙였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또한 “(경제)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과 위험에 대한 평가를 볼 때 Fed의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경계감을 엿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자금 유럽·중국으로 이동
FOMC 당일 뉴욕증시가 오르긴 했지만 트럼프 행정부 2기가 들어선 뒤 뉴욕증시는 전체적으로 하락 추세다. 미국 증시 대표 지수인 S&P500은 올해 들어 3월 21일까지 3.6% 하락했다. 지난해 23% 넘게 올랐지만 올해는 맥을 못 추고 있다.
불안한 미국 경제 상황은 다른 경제지표에서도 확인된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3월 24일 한때 103.95까지 떨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 1월 20일 109.35와 비교하면 5% 가까이 하락했다. 트럼프 2기 출범 전의 강달러 기조가 깨진 것이다. 반면 한때 유로당 1달러가 깨질 것이란 우려까지 나오며 약세를 보이던 유로화는 강세다. 최근 유로당 1.08달러대로 올라섰다.
반면 유럽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 경제는 대규모 재정 확대에 힘입어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독일은 최근 12년간 5000억 유로(약 790조원)에 이르는 정부 재정을 인프라에 투자하고 국방비를 사실상 무제한 증액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유럽 방위에서 한발 빼는 모습을 보인데 따른 조치다.
중국 정부도 내수 부양책인 이구환신(낡은 것을 새것으로 교체) 정책의 일환으로 보조금과 세금 혜택 등 정부 지원금 규모를 지난해 1500억 위안에서 올해 3000억 위안으로 늘렸다.
이에 따라 유럽 지역 시가총액 상위 600개 기업으로 구성된 스톡스유럽600은 올해 들어 8.3% 상승했고 홍콩 항셍지수는 중국 정부의 경기부양책 등으로 18.1% 뛰었다.
미국과 유럽·중국의 경제지표들이 엇갈리면서 미국으로 유입되던 글로벌 자금도 유럽과 중국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예외주의가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모닝스타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유럽 주식에 주로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는 지난해 하반기에만 해도 매달 자금이 빠져나갔지만 올 들어선 1월 2억 달러, 2월 22억5000만 달러의 자금이 순유입됐다. 미국의 경기둔화 우려에 관세정책의 불확실성까지 겹친 결과인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예외주의를 강조하던 월가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3월 투자보고서에서 “최근 몇 주 동안 미국 예외주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1970년대 초 이후 가장 빠른 미국 증시 조정이 촉발됐다”고 평가했다.
뉴욕=박신영 한국경제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