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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초대된 민간 메신저 ‘시그널’에서 미국 고위 외교·안보 수뇌부가 군사 기밀 작전을 논의했다는 이른바 ‘시그널 게이트’가 미국 워싱턴 정가를 뒤흔들고 있다. 백악관은 이를 물고 “군사 기밀도, 전쟁 계획도 없었다”며 사안을 축소했고 야당과 언론은 무능·무지·무책임 3무(無) 안보를 내세우며 트럼프 행정부 비판에 열을 올렸다.

백악관 고위 관료들이 채팅방에서 주고받은 ‘따봉’은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다. 지난달 15일 미군의 후티 반군 공습이 시작된 후 마이크 왈츠 국가안보보좌관은 “첫 공격 표적인 미사일 최고 책임자 신원이 확인됐다. 그가 여자친구의 건물에 들어갔는데 그 건물은 붕괴됐다”고 썼는데 누군가 이 글에 따봉을 붙였다. “탁월하다” “좋은 시작”이라는 찬사가 이어진 후 왈츠 보좌관은 주먹과 성조기와 불꽃을,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 특사는 기도하는 손과 힘을 준 팔, 성조기를 올렸다.

미국 언론은 그 이모티콘들을 군사 작전을 대하는 이들의 경솔함으로 해석했다. 언론은 ‘이모티콘으로 치르는 전쟁’을 비꼬았고, 의회는 ‘주먹 대신 구부린 팔이어야 한다’며 농담했다. 비판과 조롱은 거기까지였다.

마이크 왈츠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달 15일 미군의 후티 반군 공습 후 민간 메신저 시그널에서 나눈 대화를 한글로 옮긴 이미지


이들의 이모티콘은 더 어둡고 비참한 현실을 담고 있다. 그 공격으로 예멘에서는 53명이 숨졌는데, 예멘 보건부는 이 중 민간인이 최소 31명, 사상자 대부분이 “어린이와 여성”이라고 했다. 보도에서 죽은 것으로 확인된 어린이는 최소 5명이었다.

인권을 지웠던 고통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국제사회는 전쟁 중이라도 넘어서는 안 될 선을 그어왔다. 인간의 생명과 존엄을 잊지 말자는 그 합의가 인권선언과 교전수칙에, 또 거의 지켜지지 않는 전쟁범죄 국제조약에 담겼다. 전쟁 중인 국가에 ‘인류애’를 요구할 순 없지만, 적국에 속했더라도 민간인 인권은 지켜야 한다는 게 어렵사리 만들어온 규범이었다.

백악관 수뇌부의 따봉에서는 최소한의 예의나 존중을 찾아볼 수 없다. 그 결정의 무게에 상응하는 진지함도, 책임감도, 일말의 미안함도 발견되지 않는다. 수십, 수백의 인명을 빼앗는 결정을 내리면서, 마치 그 결정이 초래할 결과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는 태도다.

이를 비판하는 언론과 야당도 다르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하는 이들은 토씨 하나를 따지며 맥락과 배경을 해석하고 쟁점을 쏟아냈다. 대통령이 누굴 자를 것인지, 외교 관계는 어떻게 될지, 대화를 주도한 사람은 누구며, 대화에 초대받지 못한 이는 누구인지, 진실공방은 어떻게 끝날지에 미국이 들썩였다.

가족을 잃었거나, 떨어지는 미사일을 피해 짐을 싸던 예멘과 가자·서안지구, 레바논의 민간인들도 이역만리 권력자들의 따봉을 지켜봤다. 온데간데없어진 인권과, 따봉과 성조기를 주고받는 세계 최강대국 최고위 권력자들의 도덕 수준이 현 인류의 주소다. 진짜 문제는 그들의 무능력이 아니라, 비정함이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간) 밤사이 미국의 공습 피해를 입은 예멘 사나에서 현지 시민들이 폐허가 된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AP연합뉴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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