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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정신과 의사의 코멘터리]
<3> 영화 '미키17'의 미키17·미키18

편집자주

정신건강의학과 김지용, 오동훈, 허규형 전문의가 영화나 드라마 속 캐릭터들의 심리를 분석하며 우리의 마음도 진단합니다.
영화 '미키 17'에서 주인공 미키는 또 다른 자신과 마주한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은 한 사람이 죽으면 기억을 그대로 가진 새로운 클론이 생성된다는 설정을 깔고 있다. 사채업자에게 진 빚 때문에 지구를 떠나야 할 처지에 놓인 미키는 얼음행성 개척단의 '익스펜더블(expendable·소모품)'에 지원한다. 익스펜더블은 혹성탐사를 위한 극한의 노동과 실험용으로 쓰이다 죽으면 다시 복제되는 임무를 맡는다. 16번의 죽음을 겪고 복제돼 ‘미키17’이 된 그는 죽음과 출력의 반복 사이클에 적응한다.

그런데 얼음행성의 생명체인 ‘크리퍼’와 만난 후 죽을 위기에서 간신히 돌아온 미키는 황당한 상황과 부딪힌다. 17번 미키가 죽었다고 오해한 본부에서 18번째 미키를 프린트한 상황. 탐사 후 지쳐 자기 방 침대에 누운 미키 17은 새로 복제된 또 하나의 자신인 '미키 18'이 옆에 누워 있는 모습에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익스펜더블은 행성당 단 한 명의 복제인간만 허용하는 게 원칙이다. 복제인간이 두 명인 '멀티플' 상황은 용납되지 않는다.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는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것이 영화의 스토리다. 복제인간을 소재로 한 에드워드 애슈턴의 SF 소설 ‘미키7’이 원작.

복제인간을 소재로 한 영화 '미키 17'은 인간의 정체성과 본질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번 코멘터리에서는 동일한 기억과 경험을 가진 존재가 어떻게 전혀 다른 성격을 형성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다뤄 보았다.

소심한 '미키 17' VS 난폭한 '미키 18'



미키 17은 자신이 원본과 동일한 존재인지에 대한 혼란을 겪으며 계속해서 죽음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심리적 변화를 겪는다. 소심하고 감성적이며 위축돼 있는 미키 17과 달리 새롭게 복제된 미키 18은 논리적이고 주도적이며 다혈질이다. 영화는 대범하다 못해 난폭한 미키 18의 성격이 복제 담당자의 실수로 복제 코드 하나가 빠져 이러한 변화가 나타났다고 설명하지만, 두 인물의 성격은 크게 다르다.

영화 '미키17'의 미키는 죽으면 계속 새로 복제된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성격은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방식,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경험하는 감정과 생각, 행동이 축적돼 형성된다. 그러나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이는 각 개인이 경험을 해석하는 방식과 방어기제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방어기제는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상황을 처리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심리적 전략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회피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자기합리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방어기제는 우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만, 지나치게 특정 방어기제에 의존하면 현실에 부적응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영화에서는 동일한 기억을 공유한 본래 같은 인물인 미키 17과 미키 18이 완전히 다른 성격으로 설정돼 있다. 둘의 성격 차이를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면, 방어기제의 차이가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방어기제는 개인의 성장 배경, 감정 조절 방식, 그리고 주변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이를 알면 미키 17과 미키 18의 성격 차이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자책하며 비난 피하는 '미키 17'

영화 '미키17'의 미키(로버트 패틴슨).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먼저 미키 17은 자책하는 성향이 강하다. 그는 과거 교통사고를 생각하며 자신이 어머니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항상 시달린다. 이는 단순한 후회나 반성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비난함으로써 무거운 감정을 해소하려는 방어기제의 일종이다.

이러한 성향은 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미키 17이 어머니의 죽음을 꿈에서 회상하며 힘들어하는 장면이나 미키 18과 대화하며 사고 당시 자동차의 빨간색 버튼을 누른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는 장면 등이 그렇다. 미키 17은 끝까지 자신을 비난하며 그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려 한다. 이는 그가 외부 환경보다 자신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감정을 조절하려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책은 심리학적으로 자신을 지키는 방어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공격하는 자책이 어떻게 방어기제가 될 수 있을까? “내가 스스로를 비난하면, 다른 사람이 나를 비난할 필요가 없다”는 심리가 일시적으로나마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음을 이해하면 답이 쉽게 찾아진다. 미키 17은 이러한 방식을 통해 자신의 책임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이들의 비난에서 벗어나려 한다.

또한 그는 항상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있다. 얼음행성 개척단 동료들이 미키 17에게 선 넘는 질문을 건네도 그는 크게 화내거나 대꾸하지 않는다.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스스로 억압한다. 그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데 어려움이 크고, 이러한 억제된 감정이 자책과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강한 존재 드러내는 '미키 18'

영화 '미키17'에서 미키 17과 미키 18이 대립하는 장면.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미키 18은 미키 17과 정반대의 성향을 보인다. 그는 어머니가 사망한 교통사고에 대해 자책하지 않으며, 오히려 감정적으로 거리를 둔다. 이는 흔히 '투사' 또는 '합리화' 같은 방어기제와 연관된다.

영화에서 미키 17이 어머니가 사망한 교통사고를 회상하며 자신이 어머니를 죽였다는 자책에 사로잡히는 장면이 있다. 이때 미키 18은 그 기억을 미키 17과 공유하면서도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그는 “그 사고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어”라며 그 사건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기보다 감정적 거리를 두고 중립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을 택한다.

미키 18은 다른 장면에서도 감정을 억제하거나 숨기지 않고 단호하며 직선적인 태도를 보인다. 때로는 냉소적이고 공격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드러낸다. 그는 자신이 클론임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기존의 미키 17을 배제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이는 자신이야말로 유일하고 정당한 존재임을 강조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이러한 행동은 타인을 밀어내고 자신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일종의 심리적 방어기제로 해석할 수 있다. 감정적인 유대보다 정체성 방어에 무게를 두는 그의 태도는 내면의 불안정함을 외부로 투사하거나 차단하는 기제로 이해할 수 있다.

둘이 첫 대면하는 장면에서 미키 18은 미키 17을 제거하려고 아령을 던진다. 이는 단순한 감정적 대립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다고 느낀 데 대한 강력한 반응이다. 미키 18은 자신이 미키 17과 공존하는 한, 자신이 진짜 자신이라고 믿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그에게 미키 17의 존재는 자신의 독립성과 유일성을 부정하는 상징이기에 그를 없애는 것이 자신을 ‘진짜’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미키 17과 미키 18의 성격 차이는 둘이 서로 마주하는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미키 18은 미키 17을 향해 “너는 이제 끝났어. 난 너보다 강해”라고 말하며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 반면 미키 17은 당황하며 감정을 표출하지 못한다. 미키 18의 이러한 공격성은 자신의 존재를 강조해 미키 17과의 차별성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다.

미키 18은 동료들에게도 지배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는 결정을 내릴 때 타인의 의견을 고려하기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밀어붙이며, 종종 폭력적인 방법도 서슴지 않는다. 이는 자신이 미키 17과 다른 개별적 존재임을 증명하려는 무의식적 행동일 가능성이 크다.

같은 사건도 다르게 봐야

영화 '미키17'.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방어기제는 우리의 심리를 보호하는 중요한 도구다. 그렇지만 그것이 우리를 가두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미키 17과 미키 18은 복제됐다는 동일한 경험을 했으나, 방어기제의 차이로 인해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게 됐다. 이는 우리가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성격과 행동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억을 바꿀 수는 없지만, 해석을 바꾸는 것은 가능하다. 이는 정신치료에서 자주 활용되는 인지적 재구성 기법과도 관련이 깊다. 인지적 재구성이란 고통스러운 기억이나 사건을 보다 현실적이고 수용 가능한 방식으로 다시 해석하는 치료 기법이다. 같은 사건이라도 그것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감정의 반응과 행동은 달라질 수 있으며, 이는 우울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의 치료에 사용된다.

미키 17이 억제, 억압, 자책이라는 방어기제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려 했던 반면 미키 18은 투사, 합리화, 행동화를 통해 자신을 보호하려 했다. 이처럼 같은 기억도 각자의 방식으로 다르게 해석되며, 그 해석 방식은 그들의 성격과 행동 양식을 결정 짓는 핵심 요소가 된다.

우리에겐 자신이 가진 방어기제를 인식하고 그것이 적절하게 작동하는지 점검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고정된 기억에 갇히기보다 그 기억을 다르게 바라보고 새롭게 해석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기억에 대한 해석이 바뀐다면 과거의 경험을 보다 건강한 방식으로 받아들여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보일 것이다.



허규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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