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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수도자 3462명, 탄핵 심판 촉구
“단호한 심판 기다린 시민들 폭발 직전”
독재정권에 저항하며 민주화운동에 앞장서 온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2024년 9월23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에서 창립 50주년 기념미사를 마친 뒤 성당 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너희는 말할 때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복음 5장37절)

30일 고위성직자인 교구장 5명을 포함한 천주교 사제·수도자 3462명이 함께 발표한 ‘시국선언문’은 성경을 인용해 헌법재판관들에게 조속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요구했다. 한국 민주주의에 어둠이 깃들 때마다 촛불을 밝혀온 천주교 사제와 수도자들이 인류 공동의 죄와 악을 생각하는 때인 사순절 주간을 맞아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국민에게 승복하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은 “한참 늦었으나 이제라도 당장 정의로운 판결을 내려라. 헌법재판소의 주인인 국민의 명령”이라고 촉구했다.

선언문은 “헌법재판소의 교만에 억장이 무너지고 천불이 난다”며 “신속하고 단호한 심판을 기다렸던 시민들의 분노는 폭발 직전”이라고 지적했다. “사회적 불안과 혼란이 임계점을 넘어섰다. 화재를 진압해야 할 소방관이 도리어 방화에 가담하는 꼴”이라고도 했다.

헌법재판소가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심판을 선고한 3월24일 오전 헌법재판관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앉아 있다. 김혜윤 기자 [email protected]

선언문은 “공직의 타락”과 “헌재의 교만”을 비판했다. “작년 그날 마음에서 지운 윤석열씨”라고 표현한 선언문은 “여전히 살아서 움직이는 대통령의 수족들이 우리 역사에 무서운 죄를 짓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이어 선언문은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고 있는 한덕수 대통령권한대행 국무총리와 헌재를 동시에 비판했다. “총리의 이중적 처신은 헌재가 초래한 것”이라며 “죄를 지었지만 죄인으로 볼 수 없다?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라고 물은 것이다. 한 권한대행이 헌법을 위반하였지만, 국민의 신임을 배반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 헌재 결정이 오늘의 사태를 불러온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지적으로 풀이된다.

선언문은 “군경을 동원해서 국회와 선관위를 봉쇄 장악하고 정치인과 법관들을 체포하려 했던 위헌·위법행위를 단죄하는 것이, 명백한 사실도 부인하고 모든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돌리는 자의 헌법 수호 의지를 가늠하는 것이, 그를 어떻게 해야 국익에 부합하는지 식별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라고 헌법재판관들에게 직접 묻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선언문은 산불 등 최근 발생한 대형 재난을 언급하며 “화마도 태울 수 없고, 내란 세력도 빼앗을 수 없는 귀한 마음으로 약한 존재들을 보살피자”며 “미력한 사제, 수도자들이지만 저희도 불의의 문을 부수고 거짓의 빗장을 깨뜨리는 일에 힘을 보태겠다”고 다짐했다.

신윤동욱 기자 [email protected]

아래는 시국선언문 전문.

천주교 사제·수도자 3,462인 시국선언문

헌법재판소는 국민에게 승복하라!

1. 어두울 때마다 빛이 되어 주시는 분들의 수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아울러 치유와 회복이 절실한 모든 분에게, 특히 산불로 쓰라린 아픔을 겪고 계신 많은 분에게 하느님의 위로가 있기를 빕니다. 불안과 불면의 혹한을 견디느라 고생이 많았는데 기다렸던 봄에 이런 재앙을 당하고 보니 슬프기 그지없습니다.

2. 울창했던 숲과 집이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어 사라진 것처럼 일제와 싸우고 독재에 맞서 쟁취했던 도의와 가치들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작년 그날 마음에서 지운 윤석열 씨를 새삼 거론할 필요가 있겠습니까마는 여전히 살아서 움직이는 대통령의 수족들이 우리 역사에 무서운 죄를 짓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3. 먼저 공직의 타락입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인 국무총리는 “국회가 선출한 3인을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지 않은 것은 헌법상의 의무 위반”이라는 헌재의 결정을 듣고도 애써 공석을 채우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헌재의 결정은 민주적 절차를 거쳐 내려진 법적 판단이니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며 국민을 훈계합니다. 총리의 이중적 처신은 헌법재판소가 초래한 것이기도 합니다. “피소추인이 헌법수호와 법령을 성실히 준수해야 할 의무(헌법 제66조, 제111조. 국가공무원법 제56조)를 위반했다”고 말한 뒤, 그렇다고 “파면할 만한 잘못”, 곧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면서 직무에 복귀시켰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었지만 죄인으로 볼 수 없다?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서울중앙지법이 내란수괴를 풀어주고, 검찰총장은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맞장구치는 자신감이 대체 어디서 생겨났겠습니까? 대한민국을 통째로 태우려던 불길은 군을 동원한 쿠데타를 넘어 사법 쿠데타로 번졌으며 걷잡을 수 없는 형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4. 그 다음은 헌법재판소의 교만입니다. 억장이 무너지고 천불이 납니다. 신속하고 단호한 심판을 기다렸던 시민들의 분노는 폭발 직전입니다. 사회적 불안과 혼란이 임계점을 넘어섰습니다. 화재를 진압해야할 소방관이 도리어 방화에 가담하는 꼴입니다. 여덟 명 재판관에게 묻겠습니다. 군경을 동원해서 국회와 선관위를 봉쇄 장악하고 정치인과 법관들을 체포하려 했던 위헌·위법행위를 단죄하는 것이, 명백한 사실도 부인하고 모든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돌리는 자의 헌법 수호 의지를 가늠하는 것이, 그를 어떻게 해야 국익에 부합하는지 식별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까? 가타부타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재판관들에게 성경의 단순한 원칙을 전합니다. “너희는 말할 때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 5,37) 한참 늦었으나 이제라도 당장 정의로운 판결을 내리십시오. 헌법재판소의 주인인 국민의 명령입니다.

5. 주권자인 국민은 법의 일점일획조차 무겁고 무섭게 여기는데 법을 관장하고 법리를 해석하는 기술 관료들이 마치 법의 지배자인 듯 짓뭉개고 있습니다. 서부지법에 난입했던 폭도들 이상으로 법의 뿌리를 흔들어대기도 합니다. 아무도 “이처럼 올바른 규정과 법규들을 가진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신명 4,4)고 자부할 수 없습니다. 잠자리에 들어도 대부분 잠들지 못하는 날, 듣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인 악마가 으르렁 대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악마를 대적하십시오.”(1베드 5,8-9) 정의 없는 국가란 ‘강도떼’나 다름없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만도 못한 ‘사자들’이 우리 미래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6. 머리 위에 포탄이 떨어졌고, 땅이 꺼졌고, 새싹이 움트던 나무들은 시커멓게 타버렸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시작이 멀지 않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많은 분들이 밤낮 낮은 데서 궂은일 도맡아 주고 계시므로 올해 민주 농사는 원만하고 풍요로울 것입니다. 화마도 태울 수 없고, 내란 세력도 빼앗을 수 없는 귀한 마음으로 약한 존재들을 보살핍시다. 미력한 사제, 수도자들이지만 저희도 불의의 문을 부수고 거짓의 빗장을 깨뜨리는 일에 힘을 보태겠습니다.

2025년 3월30일

아름다운 하느님 나라를 꿈꾸며

사순절 제4주일에

천주교 사제·수도자 3,462인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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