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채팅방 사건 왈츠에 격노했지만 유임 결정
권력투쟁 양상…트럼프 비판한 왈츠 영상 떠돌아
권력투쟁 양상…트럼프 비판한 왈츠 영상 떠돌아
마이클 왈츠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28일 그린란드의 피투픽 미군 우주기지를 방문해 부인인 줄리아 네세이왓 전 국토안보비사관과 사진을 찍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의 외교안보팀이 출범 2달 반 만에 흔들리고 있다. 외교안보 고위 인사들이 민간 메신저 시그널의 채팅방에서 기밀 사안을 논의하는 등 보안 사고가 잇따르며, 내부 권력투쟁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시그널 채팅방 사건과 관련해 마이클 왈츠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한 해임을 고려했다가 보류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30일 보도했다. 하지만, 왈츠는 트럼프의 외교안보팀에서 입지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뉴욕타임스도 29일 트럼프가 왈츠를 해임해야만 하는지를 측근들에게 묻는 등 고민 중이라고 보도했다.
왈츠는 민간 메신저 시그널의 채팅방에서 외교안보 고위인사들과 지난 3월15일에 있었던 예멘의 후티반군(안사르알라)에 대한 군사작전을 논의하는데, 애틀랜틱의 편집장 제프리 골드버그를 실수로 초대했다. 골드버그는 지난 24일 트럼프의 외교안보 고위인사들이 민간메신저에서 국가 기밀 사안을 논의하고, 실수로 민간인인 자신까지 초대한 사실을 폭로했다.
이 사건 뒤 트럼프는 제이디 밴스 부통령,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 세르지오 고 인사수석 등과 왈츠의 해임 여부를 논의하고, 그를 질책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지난 27일 왈츠와 일대일 회동을 하고는 그를 유임하기로 결정했다. 트럼프는 측근들에게 “민주당과 언론이 나를 공격할 구실을 주고 싶지 않다”며 그의 즉각적 해임을 원치 않았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이 사건에서 분노한 것은 민간 메신저 채팅방에서 기밀 사안을 논의한 사실이 아니라, 왈츠가 애틀랜틱의 언론인을 초대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자신이 싫어하는 자유주의 성향의 애틀랜틱과 그 편집장의 전화번호를 왈츠가 저장해둔 사실 자체에 혐오를 느낀 것이다. 트럼프가 왈츠를 해임하지 않은 것도 애틀랜틱 등 자유주의 성향의 언론의 폭로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다. 만약 왈츠가 브레이트바트 등 트럼프 진영 언론의 언론인을 초대해 사건이 불거졌다면 해임했을 것이고 한 측근은 전했다.
트럼프로서는 1기 집권 때 첫 국가안보보좌관인 마이클 플린의 낙마 사태의 악몽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다. 임명 직후에 플린은 대선과 관련해 러시아 쪽과 접촉한 사실을 마이크 펜스 당시 부통령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언론과 트럼프 진영 내부에서 사임 압력을 받다가, 낙마했다. 이 사태를 계기로 트럼프 1기의 외교안보팀은 잦은 인사변동을 겪으며 불안했고, 트럼프는 플린의 사임 결정을 후회했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가 단순히 보안 사고에 그치지 않고, 막후 권력투쟁으로 비화되는 양상도 있다. 조지 부시 전 행정부의 관리 출신은 왈츠가 이번 사태 전부터도 거만한 태도에다가 트럼프의 노선과 어긋나는 견해를 보여서 갈등을 빚었다고 전했다. 지난 대선 때 트럼프의 부공보국장을 지낸 캐럴라인 선샤인은 “왈츠 유임은 나약한 처사이고, 트럼프 대통령을 당선시킨 기반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공격했다.
특히 왈츠는 트럼프 외교안보 라인에서 기존의 전통적 주류 견해를 가장 강하게 견지하고 있다. 왈츠가 과거 아프가니스탄과 시리아에서 미군 철수에 반대하고, 미국의 우크라이나 방위를 지지하는 등 트럼프의 현재 외교안보 정책과 어긋난 적이 있다는 사실을 경쟁자들이 들춰내고 있다. 특히 왈츠는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를 가장 반대한 정적인 리즈 체니 전 하원의원과 함께 안보 관련법 제정을 놓고 같이 일한 바 있다. 왈츠가 2016년 대선 때 “트럼프를 막아야 한다”고 발언한 영상 등 트럼프에 대한 비판적으로 언급한 자료들이 이 행정부 내 관리들에 의해 다시 유포되고 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이번 시그널 채팅방에서 직접적으로 군사작전을 노출한 데 이어 부인을 고위 군사회담에 참여시킨 사실이 드러나, 그의 장관 지명 때부터 일던 자질 논란이 더 커지고 있다. 그는 지난달 브뤼셀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본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방위연락그룹’(UDCG) 회의와 이달 6일 국방부 청사에서 존 힐리 영국 국방부 장관과 한 양자회담에 아내 제니퍼를 동석시켰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지난 28일 보도했다.
왈츠와 헤그세스는 향후 우크라이나 종전 등의 상황 전개에 따라 거취가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서고, 트럼프의 외교안보팀 역시 흔들릴 수 가능성은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