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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혼돈의 미국 그리고 한국④]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마지막 변론 기일인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 안국역 사거리에 경찰 차벽이 세워져 있다. 사진=뉴스1

“선배, 여기 시위하는데 차가 움직이지를 않아요.”

목적지까지 불과 1km를 남기고 지민(38) 씨가 다급한 메시지를 보냈다. 약속시간은 저녁 7시, 안국역 근처에서 차들은 꿈쩍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신호는 바뀌었지만 차량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약속시간을 20분 넘긴 시각, 전화벨이 울렸다. “차로 온다고? 미쳤다. 주말에 거기 통과하는 데만 3시간 걸렸어.”
모든 혼돈의 시작헌법재판소가 있는 서울 종로구 안국 일대는 탄핵 정국의 진원지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사건 이후 주말은 기본, 주중까지 매일 탄핵 관련 시위가 이어지면서 교통은 마비 상태다. 이 일대를 지나려면 안국역이 아닌 종로3가 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팁이 돌 정도다.

헌재의 선고가 있을 것으로 예정된 3월부터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집회로 인해 공공자전거 대여소는 임시 폐쇄됐다. 전동킥보드와 쓰레기통도 사라졌다. 안내문도 붙었다. 서울시는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결과가 선고되는 날 헌재 인근 지하철 3호선 안국역을 종일 폐쇄한다고 밝혔다. 언제가 될지 모를 이날에 서울 시내버스는 임시 우회 운행을 준비하고 지하철의 경우 혼잡도에 따라 출입구를 폐쇄하고 무정차 통과하기로 했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임박한 1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 지하철 안국역에 탄핵 심판 선고일 임시 휴업 공고문이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교통이 막힌 곳에 상권도 멈췄다. 안국역 인근에 오픈매장을 열 계획이었던 A 씨는 지난 2월 말부터 일정을 기약 없이 미뤘다. 매일같이 ‘선고일’을 검색하지만 전문가의 예상은 늘 빗나갔다.

헌재 사거리에 위치한 레스토랑 상점 앞에는 지난 3월 20일부터 가벽이 쳐졌다. 대로변, 골목길 입구 곳곳에도 가벽이 세워졌다. 윤 대통령 극렬 지지자들이 헌재 맞은편 도로를 점거하자 경찰이 아예 진입을 막았다. 식당을 찾은 손님들은 가벽에 막혀 온 길을 다시 돌아갔다.

상인들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 안국역 삼거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B 씨는 12월부터 매출이 급감했고 최근엔 평소의 30% 수준에 그친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엔 나라의 중대사이다보니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다”며 “선고가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언제까지 이 고통을 겪어야할지 너무 억울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상인들의 분노는 이 탄핵 정국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윤 대통령의 탄핵 변론은 2월 25일에 종료됐지만 한 달이 넘도록 선고 기일은 확정되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변론 종결 후 11일째에 고지가 됐고, 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9일째에 헌재가 선고 기일을 공지했다. 한 달이 넘도록 관련 발표를 내지 않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제 선고는 4월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헌재의 침묵이 사회 혼란과 정국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며 조속한 결정을 촉구하고 있다.
혼돈의 확산더 큰 문제는 이 혼란이 교통과 상권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금융시장, 기업 심리, 시민 여론까지 탄핵 정국은 한국 사회 전반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나 불안정한 정국은 외환시장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대통령 탄핵 심판이 기약 없이 지연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지난 3월 25일 원·달러 환율은 1469.2원으로 마감됐다. 이는 1월 13일(1470.8원) 이후 최고치다. 장중에는 1470원을 넘어서며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급등했던 ‘12월 쇼크’에 근접했다.

달러 강세 흐름이 지속되고 있지만 최근 외환시장에서는 정치 불확실성이 환율을 더 크게 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윤 대통령 탄핵 선고가 예상보다 늦어지는 가운데 3월 24일 헌재가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을 기각하자 원화는 다시 흔들렸고 이튿날엔 장중 1470원을 돌파했다.

시장에선 ‘환율 트라우마’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KB국민은행 이민혁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시장 분위기에서 원화는 경제 변수보다 정치 변수에 더 민감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기업들도 몸을 사리고 있다. 정국 불확실성이 길어지자 투자와 소비 계획을 미루고 관망세로 돌아섰다. 한국은행의 기업심리지수(CBSI)는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여파로 80대까지 떨어졌다. 그 이전까지 7개월 연속 90대를 유지했지만 3월까지도 90선 회복에 실패했다.


CBSI는 제조업·비제조업 주요 항목을 바탕으로 산출한 지표로 장기평균(100)을 기준으로 수치가 낮을수록 기업 심리가 위축됐음을 의미한다. 올해 3월에는 다섯 달 만에 소폭 반등이 있었지만 탄핵 정국의 장기화와 미국의 관세 압박 우려가 겹치며 4월 전망은 다시 악화됐다. 극단적 분열의 길로그사이 분열된 민심은 곳곳에서 충돌하고 있다. 안국역 일대에서는 극우 성향의 탄핵 반대 시위대가 지나가는 중국인 관광객을 향해 “너 중국인이지?”라며 삿대질하는 장면이 수차례 목격됐다. 여기엔 극우는 미국 편, 극좌는 중국 편이란 극단적 혐오와 배척이 깔려 있다.

최근 기업회생절차를 진행 중인 홈플러스도 때아닌 이념 갈등에 시달리고 있다. 민주노총 마트노조는 일부 조합원이 ‘윤석열 탄핵’ 배지를 달고 근무했다는 이유로 하루 수십 통의 항의 전화와 “북한 사람이냐”는 폭언, 조합원 얼굴 사진이 온라인에 유포되는 사건까지 겪었다.

어떤 매장에선 ‘부정선거’ 망토를 두른 남성이 돌아다니며 탄핵 배지를 단 직원을 색출하려다 경찰이 출동하는 일도 벌어졌다.

극단화된 갈등은 온라인 음모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발생한 대형 산불에 대해 탄핵 반대 측은 “간첩과 중국인의 방화”라고 주장하고, 찬성 측은 김건희 여사가 ‘무속적 의식’을 했다는 주장을 내놓는 등 양 진영 모두 근거 없는 주장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상황이다.

신도림역 탈선 사고부터 지방의 단전·단수까지 사회적 재난조차 정치적 진영 논리로 소비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분열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24 사회통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사회 갈등 체감 점수는 3.04점(4점 만점)으로 조사 이래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중에서도 ‘진보-보수 간 갈등’이 3.52점으로 가장 높았다. 이는 수도권-지방, 정규직-비정규직, 노사 갈등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전문가들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 미뤄질수록 이러한 이념·진영 갈등은 더욱 심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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