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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2016년 여름 시베리아 야말반도에서 순록 2300여 마리가 떼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탄저균이었습니다. 이상고온으로 영구동토층이 해빙되자 그 속에 묻혀 있던 탄저균이 되살아나 지상으로 올라와 순록들이 감염된 것이지요. 인근에 사는 소년 한 명도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구온난화가 가져올 미래의 단면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영구동토층에 잠자고 있는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도 불러왔습니다. 수만 년 전 동토에 묻힌 바이러스가 지구온난화로 다시 살아나면 인류에 어떤 해를 입힐지 모른다는 불안감입니다.

실제 2014년 수만 년 전 시베리아에 묻힌 피토 바이러스가 얼음이 녹으며 살아난 기록이 있어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묻혀 있던 바이러스가 자연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인간 사회에도 묻혀 있던 바이러스 같은 단어들이 있습니다. 구어가 된 줄 알았던 제국주의란 단어가 다시 등장하고, 전쟁과 독재, 혐오의 바이러스는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가 영구동토층에 잠들어 있던 바이러스를 깨웠다면 인간 사회에서 이 바이러스들은 어떤 이유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을까.

우선 제국주의. 1980년대 대학가에서 많이 들었던 단어를 2020년대 다시 듣게 됐습니다. 강대국의 약소국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지배를 뜻하는 단어를 현실에서 실현한 것은 트럼프와 푸틴입니다. 트럼프는 두 번째 집권 후 캐나다와 그린란드, 파나마운하를 미국 것으로 만들겠다는 야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는 전쟁을 지원할 테니 희토류를 내놓으라며 약탈적 압박까지 합니다. 언론들은 트럼프식 제국주의라고 부릅니다.

푸틴은 그보다 빨랐습니다. 2008년 그루지야 침공에 이어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통해 제국주의자의 면모를 과시했습니다. 푸틴은 전쟁이라는 바이러스까지 되살려 냈습니다. 그는 “무력으로 국경을 변경하지 않는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의 합의를 단번에 짓밟았습니다. 트럼프와 푸틴의 조합은 모든 유럽 국가들로 하여금 전쟁 준비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전쟁이라는 바이러스는 유럽, 중동, 아시아 등으로 확산 중입니다.

제국주의의 이론적 토대가 된 것은 사회진화론입니다. 핵심은 혐오와 갈라치기입니다. 우생학과 결합한 이 이론은 우수한 민족이 열등한 민족을 일깨우고 개발해줘야 한다는 것으로 발전합니다.

미국,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등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런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일본이 제국주의 대열에 동참하며 미개한 한민족을 일깨우고 근대화를 도왔다는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나치는 유대인들을 학살했습니다. 열등한 인종(또는 민족)에 대한 혐오와 인간에 대한 ‘급 나누기’가 내놓고 자행되던 미개한 시대였습니다.

우리는 곳곳에서 혐오 바이러스의 부활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 바이러스는 되살아나 독일에서는 나치를 합리화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극우 정당이 약진하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인도적 고려는 생략하고 이민자를 추방하는가 하면, 자신에 반대하는 모든 반대자들에 대한 혐오를 정치적 자산으로 먹고살고 있습니다.

이런 바이러스를 확산시키고 있는 트럼프는 피해자 코스프레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는 우리나라가 ‘강간’과 ‘약탈’을 당하도록 허용했다. 많은 부분이 우방국들의 소행”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했습니다. 선동을 위한 미국의 약자 코스프레입니다.

국내에서도 법의 칼을 마음껏 휘두르던 대통령이 법의 희생자인 양 약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을 보며 묘한 아이러니를 느낍니다.

한국과 미국의 또 다른 공통점은 탈법에 대한 무감각의 확산입니다. 미국은 자신이 주도해 만든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이나 자유무역의 가치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트럼프의 수많은 행정명령에 법원이 제동을 걸고 있지만 멈출 생각이 없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원은 폭도들에 의해 침탈당했고, 최고 권위의 헌법재판소가 어떤 판결을 내려도 고위 공무원은 이를 무시합니다. 미래의 판결에 대해서는 이미 불복할 준비를 마친 듯합니다.

제국주의, 전쟁, 혐오, 탈법 등 인간 바이러스 확산은 미국과 한국 등 많은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그 피해자는 법과 상식의 힘을 믿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국민들이겠지요.

그 사이 한국엔 국가적 재난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큰 불은 잡혔지만, 피해를 입은 분들의 상처가 아물기까진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깊은 위로와 함께 빠른 회복을 바랍니다.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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