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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혼돈의 미국 그리고 한국②]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왕'으로 칭한 날, 백악관이 배포한 이미지. 미국 행정부가 사법부 명령을 무시하는 사례가 부쩍 늘면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사진=백악관 X

“미국 전체의 대통령이 되겠다”던 약속은 깨졌다.

지난해 7월 유세장에서 총격을 받고도 기적처럼 살아난 도널드 트럼프는 피습 사건 다음 날 공화당 전당대회 연설문을 통째로 갈아엎었다. 그는 “이것은 나라 전체, 나아가 세계 전체를 함께 뭉치게 할 기회”라며 상대편을 향한 공격에서 ‘통합’을 내건 메시지로 고쳐 썼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사회가 분열될 것이란 우려가 클 때였다. 그는 대선후보 수락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미국의 절반이 아닌, 미국 전체의 대통령이 되기 위해 출마했다.”

취임 두 달, 약속은 깨졌다. 미국 전역에서는 트럼프 행정부 전반을 겨냥한 시위가 곳곳에서 확산 중이다.
거리로 나온 미국
2025년 3월 9일 조지아주 테슬라 대리점 앞에서 머스크에 대한 항의 시위가 열렸다. 사진=연합뉴스
3월 한 달 동안에만 최소 9개 주의 테슬라 매장에서 총격과 기물 파손이 잇따랐다. 트럼프는 이를 “국내 테러 행위”로 규정했다. 하지만 시위대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3월 29일을 ‘테슬라 글로벌 행동의 날’로 선포하며 전 세계 테슬라 매장을 향한 동시 시위를 예고했다.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는 단지 전기차 회사일 뿐”이라고 항변하지만 시위대의 시선은 분명하다. “머스크는 테슬라에서 축적한 재산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 우리는 그를 멈추기 위해 테슬라와 싸운다.”

저항은 테슬라에서 끝나지 않았다. 워싱턴DC를 포함한 전국 주요 도시에서 반(反)트럼프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4월 5일 진보 진영은 전국 동시 시위를 예고했다. 주최 측은 “트럼프와 머스크는 이 나라가 자기들 소유라고 믿고 있다”며 “세상이 그것을 막아낼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올랐다”고 주장했다.

이들을 거리로 부른 건 하나의 이슈가 아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트럼프 행정부의 행정명령과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그는 취임 첫날에만 2만여 군중이 환호하는 가운데 41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중 상당수는 기존 제도를 뒤집거나 방향을 급선회하는 조치였다.

그는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하는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했고 이민정책을 강화했다. 트럼프는 남부 국경장벽 건설을 재개했고 불법 이민자 추방을 위한 ‘남부 국경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연방정부의 다양성과 포용 정책은 폐지됐고 미국은 ‘남성과 여성만을 인정한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2021년 의회 난입 사태 관련자 1600여 명 또한 첫날 사면했다. CNN은 1월 22일 “트럼프가 백악관에서 보낸 이틀이 이미 임기 1년을 채운 것 같다”며 그의 속도가 ‘의도적’이라고 썼다.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한 가지 사건의 심각성을 숙고할 시간이 거의 없다는 얘기였다.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계속됐다. 고강도의 관세정책이 지속 발표됐으며 영어를 미국 공식 언어로 선포하고 교육부 해체를 선언했다. 연방 공무원의 대규모 감원을 위한 첫 단계 희망퇴직 프로그램도, 연방자금 지원을 받는 언론기관 VOA 해체 명령에도 서명했다. 미국 선거 개혁을 요구하는 명령에도 서명했다.

트럼프가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동안 정부효율부(DOGE)를 이끄는 머스크는 구조조정에 나섰다. DOGE는 정부의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는 등 칼을 빼야 하는 자리다.

미국 정부기관에서 일하는 수습사원의 전원 해고를 지시한데 이어 3월 초에는 국토안보부, 에너지부, 재무부 등 연방정부의 공무원들에게 ‘지난주에 달성한 다섯 가지 성과’를 요약해 보내라는 이메일을 보냈다. 관료 조직 내부의 반발이 거세지자 트럼프는 “답장하지 않으면 여기 있을 필요가 없다”며 머스크를 옹호했고 해고 방침을 사실상 확정했다.

이들의 거침없는 명령과 행동에 법정 다툼도 꼬리를 물고 있다. ABC방송에 따르면 트럼프 취임 이후 지금까지 100건 이상의 연방 소송이 제기됐다. 근무일 기준 하루 평균 3건꼴이다.
이 중 30건 이상이 이민정책 관련, 20건 이상은 DOGE의 조치, 10건은 반트랜스젠더 정책과 관련된 소송이다.

시위에 참여하거나 소송을 제기한 인물 중에는 강제 추방 대상자도 적지 않다. 특히 트럼프의 행정명령 이후 팔레스타인 시위에 연루됐거나 관련성이 있다고 의심받는 미국 내 유학생 및 연구자들에 대해 체포·추방 등의 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이들 중에는 7세에 미국에 입국해 영주권을 받은 한국 출신 학생도 포함돼 있다.

공무원, 성소수자, 환경론자, 이민자 등이 트럼프에 등 돌린 사이에 미국 정치의 분열은 한층 깊어졌다. 3월 4일 트럼프가 집권 2기 첫 상·하원 합동연설에 나선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날 트럼프는 의회 입장 중 민주당 쪽에 얼굴 한번 돌리지 않았으며 그의 발언 중 항의의 목소리를 낸 민주당 의원은 퇴장에 처해졌다. 과거에도 대통령의 의회 연설 중 불만을 쏟아내 ‘소란’을 일으키는 야당 의원들이 있었으나 이번처럼 의원을 장외로 쫓아내는 일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미국 언론은 짚었다. 트럼프 역시 민주당 의원들을 가리키며 이 나라 사법제도가 “급진적인 좌파 미치광이들”에 장악됐다고도 했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말?미국 시민사회가 내부 갈등으로 갈라진 사이 외부에선 ‘반USA’ 정서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이 반미 움직임이 유럽과 캐나다 등 전통적 우방국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까지만 해도 통상 압박의 주 타깃은 중국이었다. 그러나 2기에 접어들면서 그는 동맹국을 직접 겨냥하기 시작했다.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고강도의 관세 부과, 유럽연합(EU)을 향한 공공연한 조롱과 무역 경고는 동맹에 균열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3월 4일, 캐나다 밴쿠버의 한 슈퍼마켓에 '캐나다산 제품을 구매하세요(Shop Canadian)'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3. 3월 4일 캐나다 밴쿠버에 위치한 주캐나다 미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자가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 결과는 뚜렷하다. 캐나다에서는 ‘탈미국 소비’가 현실화되고 있다. 식료품점은 자국산임을 표시하기 위해 단풍잎 태그를 붙이고, 소비자들은 제품이 미국산일 경우 의도적으로 거꾸로 진열해 출처를 명확히 하기도 한다. 시민들은 프로필에 단풍잎과 캐나다 국기를 추가하고 ‘#ElbowsUp(팔꿈치를 올려라)’ 같은 해시태그를 달며 국가적 단결과 자부심을 드러낸다. 이는 원래 하키 수비 용어지만 지금은 미국 압박에 맞선 상징적 구호가 됐다.

유럽에서도 반미 감정이 소비로 직결되고 있다. 스웨덴과 덴마크에서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더 이상 미국산 연료를 사지 말 것을 촉구하는 SNS에 가입했다. 노르웨이 회사인 할트바크벙커는 미군 함정에 연료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 같은 조치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망신을 당하고 내쫓긴 사건 직후 벌어졌다.


미국 기업 중에서도 특히 표적이 된 건 테슬라다. 올해 1~2월 유럽 내 테슬라 판매량은 전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전기차 전체 등록 대수가 급증한 점을 감안하면 이는 단순한 수요 위축이 아닌 정치적 소비 이탈로 풀이된다. 머스크에 대한 반감, 나아가 미국에 대한 실망이 소비 행태를 바꿔놓고 있는 것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세계 질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형성된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 ‘팍스 아메리카나’가 흔들리고 있다.

전통적 동맹국들은 더 이상 미국을 안정의 보루로 여기지 않는다. 3월 4일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을 잠정 중단하면서 유럽의 불안은 임계점에 도달했다.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유럽발 자강론이 본격적으로 확산됐고 독일을 포함한 주요 국가들에서는 핵무장론까지 공론의 장에 올랐다. 특히 독일의 국방·인프라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 발표는 2차 대전 이후 독일 안보정책사에서 가장 극적인 패러다임 전환 중 하나로 평가된다. 그 선택은 미국의 안보보장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트럼프가 주장해온 ‘핵 없는 세계’는 아이러니하게도 핵무장 도미노를 부추기는 꼴이 됐다. 카네기재단의 안보 전문가 안킷 판다는 “핵 비확산에 대한 강대국의 공감대가 무너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은 원칙적으로 핵보유국 지위를 미국·러시아·중국·프랑스·영국, 즉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에 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 이스라엘, 파키스탄은 이 조약에 서명하지 않고도 핵무기를 보유했으며 NPT를 탈퇴한 북한 역시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간주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핵 전문가들은 “미국의 확장 억제 보장이 철회될 경우 NPT 체제 자체가 붕괴할 수 있으며 세계는 15~25개의 핵무기 보유국 시대로 진입할 가능성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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