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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우 사회부장
"각자의 판단" 무책임한 의협
강경파는 여전히 의대생 겁박
尹정부 의대 증원 문제 컸으나···
당사자 아닌 학생들이 사투
"어른의 도리' 다해야 할 때
서울대 의과대학생의 등록 마감일인 27일 서울대 의대 모습. 연합뉴스

[서울경제]

“대한의사협회장이 할 수 있는 것이 딱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삭발과 단식입니다.”

꽉 막힌 의대 문제가 답답해 의대생을 자녀로 둔 지인에게 전화를 걸자 그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수도권 사립대 의대 23학번인 그의 자녀는 1년째 학교를 다니지 않고 있다. 그는 의대생들의 복귀 문제와 관련해 “지난 1년여간 선배들의 투쟁을 따라 젊은 학생들이 희생했는데 의협은 이제 ‘각자의 판단을 존중하겠다’는 해괴한 소리를 한다”면서 “그러다 보니 의대생들 사이에서도 ‘의협 회장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자조 섞인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의료계 내부의 복잡한 사정을 다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의협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지난 1년여간의 의정 갈등 상황만 봐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 같다. 개원의·교수·전공의 등 다양한 직역이 모여 있어 각자의 이해관계가 다르고 의대 증원과 같은 첨예한 문제에서는 더욱 한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이런 조직에서는 강경파가 의사결정을 주도하고 다양한 소수의 목소리는 묻히기 마련이다. 제적 위기에 몰린 의대생 문제와 관련해 의협이 보이는 무책임한 태도는 이런 구조적 문제와 맞닿아 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 겸 의협 부회장은 “팔 한 짝 내놓을 각오도 없이 뭘 하겠다고”라며 여전히 의대생들을 볼모로 잡고 있다.

물론 사태가 여기까지 온 데는 윤석열 정부의 책임이 컸다. 지난해 2월 정부가 2000명의 의대 증원을 충분한 논의 없이 강행한 것이 발단이었다. 붕괴된 지역 의료를 살리고 고령화 시대를 대비한다는 명분은 좋았으나 일방적인 방식은 강한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의료계를 청산해야 할 반(反)개혁 세력으로 악마화했다”는 의료계의 비판도 정부가 새겨들을 대목이다. 전공의들의 고혈을 짜내던 대학병원들 역시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박봉을 받으며 고강도 노동에 시달려온 전공의들 입장에서 의대 증원은 더 예민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또 다른 의대생 학부모는 “대학병원이 장례식장과 전공의들의 희생으로 돈을 번다는 것은 의료계가 다 아는 얘기”라며 “그렇기 때문에 정규군(전공의)과 학도병(의대생)들이 한 세트로 묶여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아직 면허도 없는, 한창 공부에 매진해야 할 학생들이 의정 갈등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40개 의대가 제적이라는 초강수를 꺼내들면서 상당수가 복귀했지만 강경파 선배들의 눈치를 보는 일부 의대생들은 이번 주에 학교를 떠날 위기를 맞는다. 돌아온 의대생들이 닥친 현실도 만만치 않다. 정부가 24·25학번이 같이 수업을 듣는 ‘더블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리 수업 모델 등을 제시했으나 수업의 질이 악화될 것은 자명하다. 만약 의대생들이 복귀 후에 강경파 선배들의 지침을 따라 수업 거부 등의 방식으로 또다시 투쟁을 이어갈 경우 내년에 3개 학번이 같이 수업을 받는 ‘트리플링’ 현상이 벌어진다. “의대생 과외 구하기가 쉬워졌다”는 주변 학부모들의 말은 현재 상황을 보여주는 씁쓸한 단면이다.

정부가 내년 의대 정원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어려운 결단을 했다. 아직 의정 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이 남았으나 적어도 의대 증원과 관련해서는 백기 투항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의대 증원을 믿고 강의동 증축 등 막대한 투자를 단행한 대학 총장들도 희생을 감수하고 정원 원점 복귀를 받아들였다.

이 정도면 의료계도 일단 학생들은 안심하고 강의실로 복귀할 수 있도록 명확한 메시지를 내야 한다. 정부와의 협상, 남은 투쟁은 이제 직접적 당사자인 그들의 몫이다. 애꿎은 학생들만 희생양으로 만들 경우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앞길이 창창한 의대생들은 (투쟁을) 그만하고 돌아가라고 하는 것이 어른의 도리(이동욱 경기도의사회 회장)”라는 의료계 내부의 용기 있는 발언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당신들이 적어도 선배라면 말이다.

윤홍우 사회부장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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