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 길안면 피해 마을 르포
뼈대만 남은 집들… 아직도 타는 냄새
급식 끼니 회관서 쪽잠자며 농사일
뼈대만 남은 집들… 아직도 타는 냄새
급식 끼니 회관서 쪽잠자며 농사일
경북 안동시 길안면 한 사슴농장에 지난 29일 산불에서 살아남은 사슴들이 까맣게 그을려 막사 안에 들어가 있다. 이번 산불로 야생동물과 반려동물도 상당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파악된다. 연합뉴스
“아직도 손이 벌벌 떨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더.”
30일 낮 역대급 화마가 지나간 지 사흘째를 맞은 경북 안동시 길안면 일대는 아직도 폭격을 맞은 전쟁터 같았다. 겨울이 다시 찾아온 듯한 강한 바람을 타고 연신 재가 날아들어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었다.
이번 산불의 진원지인 경북 의성에서 지방도 28호선을 따라 길안면으로 넘어가는 도로 양쪽 야산은 성한 곳이 없었다. 이때쯤이면 짙은 녹색을 보여야 할 야산의 소나무는 온통 갈색으로 변했고, 마을 곳곳에 빼대만 남은 집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길안면 현하리에서 만난 주민 우선훈(59)씨는 “지난해 가을 매입한 10만평 규모의 송이산이 전소되는 바람에 송이 수확으로 노후를 준비하려던 계획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렸다”고 허탈해 했다.
길안면 인근 임하면은 인명 피해까지 발생해 안타까움이 더했다. 집이 전소된 주민 50여명은 면 복지회관에서 잠을 자고 매 끼니를 급식으로 제공받으면서 생업을 이어가고 있다. 농촌은 바쁜 시기라서 일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집과 300평 저온창고에 보관 중이던 배추와 양파가 전소되는 피해를 본 추목리 주민 김시억(65)씨는 “바람이 얼마나 거세게 불었는지 집에서 8㎞ 떨어진 의성군 점곡면에서 마을로 불길이 날아온 데 걸린 시간은 30분이 안됐다”고 회고했다.
우체국 건물이 불탄 남선면은 처참했다. 신흥리는 마을 전체 27가구 중 피해를 보지 않은 곳이 없었다. 마을 주민 50여명은 안동체육관으로 대피해 적막하기만 했다. 곳곳에는 아직도 타는 냄새가 진동했고 연기에 새카맣게 그을린 강아지 몇 마리가 골목 어귀에서 웅크리고 있을 뿐 인기척이 없었다. 대부분의 가옥이 전소됐고 마을 입구 복지회관만이 비교적 온전한 형태를 지키고 있었다. 이 마을 주민 권영수(73)씨는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오늘은 바람도 유난히 강하게 불고 날씨까지 추워져서 몸과 마음이 더욱 비참해지는 심정”이라며 “정부에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