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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히 챙긴 음식 이웃과 나눠 먹으며
'타닥타닥' 불타는 소리 공포 이겨내
맨발 대피 치매 이웃 양말 빨아주기도
이재민들 "막막하지만 함께 있어 따뜻"
27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영덕국민체육센터에 차려진 산불 이재민 대피소에서 이재민들이 모여 서로 위로해주고 있다. 영덕=김나연 기자


경북 지역을 휩쓴 초대형 산불로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이 다친 마음을 서로 보듬어 주는 온기를 나눴다. 새카맣게 그을린 마을로 돌아간 이재민들은 함께 모여 밥 한술을 뜨면서 두려움과 상실감을 달랬다.

27일 영덕군 대피소인 국민체육센터. 한 이재민이 흐느껴 울자 주변 이웃들이 곧장 다가가 껴안아주며 등을 두드려 줬다. 센터 화장실에서 만난 배두리(89)씨는 구정물이 줄줄 나오는 덧신을 빨고 있었다. 배씨는 "치매를 앓고 있는 동네 이웃 양말인데, 신발도 안 신고 대피해서 너무 더러워져서···"라고 말했다.

황급히 대피하며 집에서 챙겨온 음식을 나눈 이웃도 있었다. 영덕군 지품면 도계리 주민 김재복(72) 이용자(68)씨 부부는 25일 제사를 지내다 불길에 쫓겨 집을 떠나게 됐다. 부부는 통 하나에 쓸어담은 밥과 탕국, 육전, 조기구이, 나물, 과일을 대피소에 차려놓고 허기진 동네 사람들과 나눠 먹었다. 이씨는 "식사를 못 하신 어르신들이 많았는데 따뜻한 밥을 드릴 수 있어 다행이었다"며 "대피소가 정전되고 불타는 소리까지 들려 무서웠는데, 밥을 갈라(나눠) 먹으며 두려움을 달랬다"고 말했다.

마을로 돌아간 이재민들은 함께 밥을 먹으며 서로를 위로하고 보듬었다. 27일 안동시 길안면 대곡리 산골의 작은 마을(하지골)에서는 몇몇 주민들이 모여 끼니를 해결했다. 김상규(63)씨 부부가 물과 전기가 끊긴 마을에서 귀한 생수로 배춧국을 끓이고, 냄비로 쌀밥을 지어 한상을 차렸다. 김씨는 "(찬이) 변변찮아도 이럴 때일수록 밥을 먹어야 정신 똑디(똑바로) 차리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28일 경북 의성군 의성읍 의성체육관에 마련된 산불대피소에서 한 이재민이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에게 밥을 먹이고 있다. 의성=연합뉴스


구슬땀을 흘리며 이웃 집터의 불씨 제거에 여념이 없는 모습도 보였다. 26일 안동시 임하면 신덕리에서 만난 금우섭(70)씨는 자신의 트럭에 물탱크를 실어 나르며 이웃집들의 잔불 진화에 나섰다. 그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집집마다 양동이에 가득 담은 물을 연신 끼얹었다.

지친 이재민들에게 이웃의 온기는 위안이 된다. 26일 영덕국민체육센터에서 만난 장소희(50)씨는 "집과 과수원, 농기계까지 다 타버렸고 돈도 없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지만 여기 (이웃들과) 함께 모여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며 눈물을 훔쳤다.

재난 피해자들의 연대는 마음 건강 회복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는 "대피소는 자신의 터전을 뒤로하고 임시로 옮긴 곳이라 뿌리에서 뽑혀져 나온 불안정한 심정일 수밖에 없다"면서 "마음을 잘 추스르려면 내가 어딘가에 연결돼 있다는 느낌과 연대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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