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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산불로 폐허가 된 안동 길안·임하·남선면 가보니…만휴정 보존은 ‘기적’
30일 정오쯤 경북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 만휴정에서 소방대원이 동력펌프로 물을 뿌릴 준비를 하고 있다. 김재산 기자


만휴정 입구 입장권 판매소가 이번 산불로 완전 소실됐다. 김재산 기자


“아직도 손이 벌벌 떨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니더”

30일 낮, 역대급 화마가 삼키고 지난지 사흘째를 맞은 경북 안동시 길안면 일대는 아직도 폭격을 맞은 전쟁터였다. 겨울이 다시 찾아온 듯한 강한 바람을 타고 연신 재가 날아들어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었다.

이번 산불의 진원지인 의성에서 지방도 28호선을 따라 길안면으로 넘어 가는 도로 양쪽 야산은 성한 곳이 없었다. 이 때쯤이면 푸른 빛깔을 보여야 할 야산의 소나무는 온통 갈색으로 변했고 마을 곳곳에 빼대만 남은 집들만 듬성듬성 보였다.

길안면 현하리에서 만난 주민 우선훈(59) 씨는 “지난해 가을 매입한 10만평 규모의 송이산이 전소되는 바람에 송이 수확으로 노후를 준비하려던 계획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렸다”고 허탈해 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이번 산불로 우리 세대에서는 ‘길안송이’ 구경하기는 어렵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사과주산지인 이곳 주민들은 강풍이 부는 날씨에도 중무장을 하고 과수원에서 생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안동시 임하면 소재지의 농협건물이 반쯤 탔다. 김재산 기자


기자의 고향이기도 한 이곳은 ‘미스터 션사인’으로 유명해진 ‘만휴정’이 멀지 않다.

중학교 다닐 당시, 봄소풍 때면 늘 찾던 묵계리 ‘만휴정’이 불타지 않고 온전히 보전된 것은 한마디로 ‘기적’이라는 표현 말고는 마땅한 어휘가 없을 것 같았다.

만휴정 입구를 지키던 입장권 발매소와 중간중간에 설치된 표지판도 새카맣게 탔고 정자를 둘러싼 수목들은 전소됐지만, 계곡을 건너는 다리와 목조건물은 위풍당당히 정갈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만휴정엔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가운데 이날 소방대원 2명이 배치돼 두 시간마다 동력펌프로 지하수를 이용해 불을 뿌리는 작업이 이어졌다.

안동시민 김태근(66) 씨는 “만휴정이 화마속에서도 온전한 모습을 지키고 있다는 소식에 반가운 마음에서 아내와 함께 찾아왔다”며 “주변 수목이 소실된 것은 참담하지만, 자랑스런 문화유산이 보존된 것은 너무 감사하고 기쁘다”고 말했다.

묵계리에서 평소 만휴정을 관리해 오던 김유한(74) 씨는 “서울에 사는 딸 집에 갔다가 사흘 만에 집에 돌아오니 집과 창고가 모조리 타고 없다”며 “당장 먹을 것과 입을 건 없지만 만휴정이 무사하니 천만다행”이라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안동시 임하면 오대리 도로 옆에 불탄 미니버스와 덤프트럭이 을씨년스럽게 방치돼 있다. 김재산 기자


길안면 인근 임하면은 인명피해까지 발생해 안타까움이 더했다.

집이 전소된 주민 50여명은 면 복지회관에서 잠을 자고 매 끼니를 급식으로 제공받으면서 생업을 이어가고 있다. 농촌은 바쁜 시기라서 일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집과 300평 저온창고에 보관중이던 배추와 양파가 전소되는 피해를 입은 추목리 주민 김시억(65) 씨는 “바람이 얼마나 거세게 불었는지 집에서 8㎞ 떨어진 의성군 점곡면에서 마을로 불길이 날아온 데 걸린 시간은 30분이 안됐다”며 “순식간에 덮친 불길에서 목숨을 구한 것만도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같은 마을 주민 조기덕(66) 씨는 “과수원 사과나무와 농기계 등이 불탄 사람들은 피해가 그나마 경미한 상황”이라며 “길안, 임하, 남선, 일직면 주민들은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불벼락을 맞은 셈”이라고 했다.

안동시 남선면 신흥리 마을 입구에서 마주친 강아지. 산불로 연기와 먼지를 뒤집어 썼지만 꼬리를 흔들었다. 김재산 기자


우체국 건물이 불탄 남선면은 처참했다. 신흥리는 마을 전체 27가구 중 피해를 입지 않은 곳이 없었다. 마을 주민 50여명은 안동체육관으로 대피해 적막하기만 했다.

곳곳에는 아직도 타는 냄새가 진동했고 연기에 새카맣게 그을린 강아지 몇마리가 골목어귀에서 웅크리고 있을 뿐 인기척이 없었다. 대부분의 가옥이 전소됐고 마을 입구의 복지회관만이 비교적 온전한 형태를 지키고 있었다.

이 마을 주민 권영수(73) 씨는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오늘은 바람도 유난히 강하게 불고 날씨까지 추워져서 몸과 마음이 더욱 비참해지는 심정”이라며 “정부에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게 적극 지원해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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