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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581
보수 정당 장악한 법조인들 정치의 사법화 가속 페달
‘판사 출신 이회창’ ‘검사 출신 윤석열’ 민주주의 부정
김기현·나경원·주진우, 파기자판 요구로 ‘이재명 죽이기’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3월 28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10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인간은 탐욕의 동물입니다.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해방 직후 우리나라는 정치인 암살과 테러, 폭력이 난무했습니다. 야만의 시대였습니다.

독재자와 쿠데타 세력은 정적을 살해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대선 경쟁자였던 조봉암 진보당수를 사형시켰습니다. 사법 살인이었습니다.

1961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소장은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을 군사재판에 회부해 사형시켰습니다. 사법 살인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1년 대선 경쟁자였던 김대중 전 의원을 납치해 죽이려 했습니다.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발표하고 대법원 판결 18시간 만에 8명을 사형시켰습니다. 사법 살인이었습니다.

1980년 5·18로 집권한 전두환도 김대중 전 의원을 내란죄로 체포해 사형시키려고 했습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비로소 야만의 시대와 사법 살인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아니 그런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군인들이 물러난 공간을 법조인들이 채우며 문제가 생겼습니다. 법조인은 과거를 재단하는 사람입니다. 옳고 그름을 가려 결정하는 일을 잘합니다. 흑백논리나 선악 이분법에 빠지기 쉽습니다.

판사는 심판관입니다. 판사를 오래 하면 자신을 무오류의 심판자로 착각하고 남을 함부로 심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검사는 칼잡이입니다. 승리욕이 강합니다. 검사를 오래 하면 다른 사람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1996년 4월 11일 16대 총선을 앞두고 김영삼 대통령은 이회창 전 국무총리를 신한국당 선대위 의장으로 발탁했습니다. 1997년에는 대표로 발탁했습니다.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회창 대표는 법조인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대선 후보가 됐지만, 아들 병역 문제로 지지도가 추락했습니다. 다급한 그는 ‘김대중 비자금 사건’을 터뜨렸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정치자금은 서로 건드리지 않는 불문율이 있었습니다. 기성 정치인이 아니었던 이회창 후보는 정치자금을 범죄로 인식했습니다. 그가 뒷날 정리한 회고록에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밤새워 고민하던 나는 결국 여러 가지 이해타산을 접고 내가 지녀온 한 가지 원칙, 즉 무엇이 정의인가를 가지고 결단하기로 했다. 자료대로라면 김대중 총재의 이러한 비자금 조성과 관리는 옳은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정치판이라 해도 이러한 거짓과 위선이 통하지 않게 하는 것이 정의라고 판단했다.”


이회창 후보 나름의 ‘정의로운 결단’은 김영삼 대통령이 김태정 검찰총장에게 수사 유보를 지시하면서 제압됐습니다. 그랬던 이회창 총재 자신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대기업으로부터 거액의 현금을 차에 실어 통째로 넘겨받는 이른바 ‘차떼기 사건’을 저질렀습니다. ‘정의로운 결단’은 위선이었던 것입니다.

어쨌든 이회창 후보의 디제이 비자금 사건 폭로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1996년 16대 총선부터 주로 보수 정당을 통해 국회에 쏟아져 들어온 법조인들은 정치에 자꾸 사법적 잣대를 들이댔습니다. 툭하면 검찰에 고소·고발하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정치의 사법화가 급속히 진행됐습니다. 그만큼 정치의 영역이 좁아지는 악순환의 늪에 빠졌습니다.

이런 흐름에 올라타서 최정점에 다다른 사람이 바로 윤석열 대통령입니다. 그는 반정치주의자입니다. 총선에서 참패하자 비상계엄을 선택했습니다.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했으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옳습니다. 하지만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버티고 있습니다. 얄팍한 법률 지식을 활용해 감옥에서 풀려났고 이제 헌법재판소의 기각·각하 결정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양심이 전혀 없는 파렴치한 같습니다.

이런 와중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선거법 위반 재판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판결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애초 검찰의 기소가 무리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항소심 재판부에 인신공격과 색깔론을 퍼부었습니다. 국민의힘은 보수 정당입니다. 보수가 법원을 직접 공격하는 것은 자기 부정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김기현 의원과 나경원 의원은 3월 28일 잇달아 기자회견을 열어 이재명 대표 선거법 위반 사건을 대법원이 ‘파기자판’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장인 주진우 의원도 3월 27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같은 주장을 했습니다.

조선일보는 3월 29일 치 신문에 “대법원이 이 사건 직접 재판해 유·무죄 확정을”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어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했습니다. 파기자판이 뭘까요? 형사소송법 396조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상고 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한 경우에 그 소송 기록과 원심법원과 제1심법원이 조사한 증거에 의하여 판결하기 충분하다고 인정한 때에는 피고 사건에 대하여 직접 판결을 할 수 있다.”

1심과 2심은 사실심이고 대법원 재판은 법률심입니다. 원심판결이 잘못됐다고 대법원이 판단하면 파기환송을 합니다. 파기자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무죄라고 대법원이 판단하면 상고를 기각하면 그만입니다. 유죄라고 판단하면 파기환송해서 재판을 다시 하도록 하면 됩니다. 국민의힘과 조선일보의 파기자판 요구는 이재명 대표 유죄와 피선거권 박탈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요? 이재명 대표의 조기대선 출마를 막으려는 것입니다.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인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목숨을 끊어달라고 대법원에 청부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살인 청부입니다. 법치를 명분으로 주권재민 민주주의 원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성공할까요? 대법원의 판단에 달렸습니다.

김기현 의원과 나경원 의원은 판사 출신입니다. 주진우 의원은 검사 시절 ‘윤석열 사단’이었고 윤석열 대통령의 법률비서관을 지냈습니다.

국민의힘에는 이들 이외에도 법조인 출신이 너무 많습니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 권성동 원내대표, 홍준표 대구시장, 한동훈 전 대표가 검사 출신입니다.

보수 정당을 장악한 법조인들의 가장 큰 폐해는 역시 정치의 사법화를 가속한다는 것입니다.

정치의 사법화는 왜 나쁜 것일까요? 민주주의를 무너뜨립니다.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는 민주주의의 핵심입니다. 그런데도 이회창 총재는 검찰의 수사로 대선판을 뒤집어엎으려 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총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국회를 해산하려고 했습니다.


미국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가 무너진 나라에 대한 사례 연구를 통해 민주주의 붕괴 조짐을 알리는 몇 가지 신호를 찾아냈습니다. ‘후보를 가려내는 역할을 내던진 정당’, ‘경쟁자를 적으로 간주하는 정치인’, ‘언론을 공격하는 선출된 지도자’ 등입니다.

결국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헌법이나 법률 같은 ‘제도’가 아니라, 상호 관용이나 제도적 자제와 같은 ‘규범’이라는 것이 책의 결론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그 이후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미리 내다보고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언론도 정치의 사법화에 대한 경고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표 항소심 무죄 선고 다음 날 아침 동아일보 사설은 “여야 ‘정치의 사법화’ 지양하고 국정 혼란 수습에 진력해야”라는 부제를 달았습니다. 중앙일보도 그 다음 날 사설을 쓰면서 “여야, 상대방에 승복 요구하다 수틀리면 불복 행태” “갈등 조정 능력 잃은 정치의 사법화가 낳은 희비극”이라는 부제를 달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 텔레비전 영상 갈무리

마무리하겠습니다. 정치의 사법화는 법조인 출신들이 법치를 명분으로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막아야 합니다. 어떻게 막아야 할까요?

첫째, 국민 저항권 발동입니다. 우리는 1960년 4·19 혁명, 1987년 6월 항쟁, 2016∼2017년 촛불 혁명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법조인들이 민주주의를 무너뜨린다면 국민이 들고일어나서 그들을 쫓아내야 합니다.

둘째, 탈리오의 법칙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입니다. 12·3 비상계엄은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최대로 활용한 쿠데타였습니다.

국회는 야당이 다수입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을 모두 탄핵소추 해서 행정부를 마비시키는 것이 가능합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없으면 국회가 법률을 마음대로 제정하고 국회의장이 법률을 공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바람직한 방안은 아닙니다. 지금은 헌법재판소가 신속히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하고 조기 대선을 치르는 것이 최선입니다. 아니면 윤석열 대통령이 지금 당장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방법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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