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출신 대만인' 유순달 창신대 명예교수
尹 일대기 집필·출간한 뒤 대통령실로 발송
"지금껏 송달 확인조차 없어... 책 집필 후회"
김대기 당시 비서실장 "전혀 기억에 없는 일"
유 교수 "尹 정부에 '국제 감각' 없다고 느껴"
전문가들 "尹 뿌리 깊은 반중 정서에서 비롯"
尹 일대기 집필·출간한 뒤 대통령실로 발송
"지금껏 송달 확인조차 없어... 책 집필 후회"
김대기 당시 비서실장 "전혀 기억에 없는 일"
유 교수 "尹 정부에 '국제 감각' 없다고 느껴"
전문가들 "尹 뿌리 깊은 반중 정서에서 비롯"
경북 고령군 출생으로 서울 주재 대만 외교관으로 일하다 은퇴 후 대만에서 살고 있는 유순달(오른쪽 사진) 창신대 명예교수. 왼쪽 사진은 유 교수가 윤석열 대통령 취임 기념으로 2022년 5월 출간한 윤 대통령 전기 '국민의 환호'. 유순달 교수 제공
"윤석열 대통령은 예의를 모른다."
현재 대만 수도 타이베이에 거주 중인, 하지만 한국 경북 고령군 출신이어서 '화교TK'로 불리는 유순달(75) 창신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국일보와의 온라인 인터뷰에서 이렇게 일갈했다. 섭섭함을 담은 토로이기도 했다. 유 교수는
3년 전 윤 대통령 일대기를 다룬 중국어 서적 '국민의 환호'를 직접 집필
했다. 그리고 윤 대통령 취임 20여 일 후쯤인 2022년 6월 초, 대만에서 국제우편을 통해 서울 용산 대통령실로 발송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단 한 번의 회신도 없었다고 했다.
수령 여부에 대한 확인조차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유 교수는 중화권에서 '한국 보수의 대변인'으로 통한다. 1985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통치 이념 연구로 경북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서울 주재 대만 외교관으로 근무했다. 현역 은퇴 후 22년째 한국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화교TK'란 별명은 대구·경북 보수 인사와의 오랜 인연에서 비롯됐다. 그런 유 교수가 윤 대통령에 대한 '중국어 홍보서'를 쓴 것은 "중화권에 한국의 리더를 알리겠다는 사명감"에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는 '냉담한 외면'이었다.
"전혀 들은 바 없는 얘기"라는 윤 대통령 측 해명
은 역설적으로 이를 방증한다.어쩌면 윤 대통령 취임 초기의 '해프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뿌리 깊은 '반(反)중국 정서'에서 비롯된 일일 수도 있다는 게 외교 전문가들 분석
이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중국 적대시' 발언으로 지지 기반을 다진 그는 대통령 취임 후에도 한중 관계를 냉각시키는 행보를 보였다. '친(親)미국·반중' 성향 인사들을 주변에 포진시켰던 탓에 이러한 정서도 갈수록 강해졌다는 진단이 나온다."보수와 30년 인연... 이젠 尹 지지 안 한다"
유 교수가 '화교TK'로 불리게 된 건 1990년대 대만 외교부 초청으로 타이베이를 찾은 고(故) 이만섭 전 국회의장과의 인연 덕분이다. 그는
"당시 이만섭 의장 일행을 밀착 통역했고, 같은 대구·경북 출생인 이 의장과 금세 친해져 별명까지 얻었다"
고 회고했다. 은퇴 후 한국 보수 진영의 '해외 스피커'로 살게 된 배경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만 외교관은 "유 교수는 지금도 대만 및 중화권 사회에서 한국 보수 진영 내 '지한파'로 통한다"고 귀띔했다.'국민의 환호' 집필 동기는 "더 많은 화교와 중국인이 윤 대통령을 잘 이해하길 바라는 마음"
이었다. 유 교수는 "(2022년 3월) 윤석열의 대선 승리 후 약 두 달간 작업해 2022년 5월에 출간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인들은 윤 대통령 집권으로 새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고, (검사 출신 대통령은) 부정부패 방지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썼던 문장이 지금도 기억 난다고 했다.2022년 5월 유순달 창신대 명예교수가 윤석열 대통령 홍보용 책을 출간했을 시점에 적은 자필 메모(왼쪽 사진). "대통령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22" "김대기" 등이 적혀 있다. 오른쪽 사진은 유 교수가 타이베이에서 국제우편으로 해당 책을 대통령실에 발송한 뒤 남겨둔 항공우편 영수증. 유순달 교수 제공
하지만
대통령실은 이 같은 '호의'에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유 교수에 따르면 타이베이에서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주소를 한글로도 적어 '국민의 환호'를 보냈으나, 3년간 감감무소식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유 교수는 "대통령실이 (송달 여부를) 확인조차 안 했을 것"이라며 진한 실망감을 표했다. 실제로 윤 대통령 주변 인사들은 3년 전 유 교수가 책을 부친 사실 자체도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2022년 5월~2023년 12월 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김대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유 교수의 책 선물'과 관련, 한국일보에
"전혀 기억에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본보는 26일부터 현직 대통령실 관계자에게도 수차례 문의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유순달 창신대 명예교수가 대만 월간 '관찰' 2023년 12월호에 기고한 '윤석열은 한중 관계 개선의 의지가 없다'는 제목(빨간선 네모)의 칼럼. '관찰'지 웹사이트 캡처
유 교수는 그동안 대만 일간 '연합보', 월간 '관찰' 등 현지 주요 언론에 한국 정치 관련 칼럼 수백 편을 기고해 왔다. 하지만 이 일이 있은 뒤, 칼럼 논조도 '친윤'에서 '반윤'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단순히 감정적인 이유가 아니다. "윤석열 정부에 국제 감각이 없다는 걸 그때 몸소 느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유 교수는
"제 모친도 경북 출생의 한국인이신 만큼, '화교TK'라는 호칭은 여전히 자랑스럽다"
면서도 "윤 대통령 홍보 책을 쓴 것은 후회가 된다"
고 털어놨다."尹, 대선 캠프 때도 '반중 정서' 탑재"
외교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이 지난 대선 당시 반중 정서를 활용해 지지층을 모았고, 취임 후엔 이를 더욱 노골화했다고 평가한다. 따라서 대통령실이 유 교수와 같은 화교 인사에게 무관심했던 것도 놀랍지는 않다고 입을 모았다. 김흥규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의 반중 정책은 친미 성향인 한국 내 강경 보수층의 '중국은 위협적 존재'라는 인식을 키웠고,
그런 기류 속에 있던 윤 대통령의 반중 정서는 자연스레 강화됐다"
고 분석했다. 신종호 한양대 중국학과 교수도 "대선 준비 당시 윤 대통령은 반중 성향의 조언 그룹과 강하게 밀착했다"
고 말했다.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시절이었던 2022년 1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적은 중국인 관련 주장이 담긴 글. 윤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윤 대통령 과거 발언들을 복기해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2021년 12월 주한미국상공회의소 간담회에서 그는
"한국 청년들은 중국을 싫어하고, 중국 청년들도 한국을 싫어한다"
고 말했다. 2022년 1월 페이스북에는 "중국인이 (한국 내) 외국인 건강보험 급여 지급 상위 10명 중 8명을 차지한다"고 적으며 제도 개선을 언급했다.대통령 취임 후에는 '친미·반중' 기조가 더 짙어졌다. 특히 2023년 4월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는 중국과 대만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 평화와도 관련돼 있다", "대만해협 긴장은 힘으로 현상을 바꾸려는 시도 때문에 벌어졌고,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이라고 했던 윤 대통령 언급은 큰 논란을 불렀다. 이는 미국 입장과 동일한 발언이었고,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건드렸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김흥규 교수는 "윤 대통령은 기회가 될 때마다 중국을 부정적으로 언급했다"며 "군사적 충돌은 없었으나,
윤 대통령 재임기는 한중 간 상호 신뢰가 가장 낮고 (서로에 대한) 반감이 고조된 시기
"라고 지적했다.유순달 창신대 명예교수가 2003년 한국 근무 시절 출간한 책 '진짜 중국사람 맞나요?'의 표지. 유순달 교수 제공
"중국인·화교라고 근거 없는 반감... 안타깝다"
중국을 적대시하는 윤 대통령의 시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2·3 불법 계엄 사태를 일으킨 윤 대통령 측은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중국인 부정 선거 개입설' '중국인 간첩설' 등을 거론했다. 국적은 대만이어도 한국에 고향을 두고 이 나라에서 35년간 살았던 유 교수는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는 "윤석열이 이렇게 반중 정서가 깊은 인물인 줄 알았다면, 홍보용 책은 아예 쓰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중화권 국적이고 화교라는 이유만으로 (윤 대통령이) 근거 없는 반감을 드러냈다는 사실이 우려스럽고 또 안타깝다
"고 덧붙였다. 할 말이 남은 듯했지만, 유 교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전문가들은 이번 사례가 한국사회의 화교 관련 인식·정책에도 시사점을 주고 있다고 짚었다. 김윤태 동덕여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는
"한국의 화교는 한국·중국·대만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은 채, 경제·문화 분야의
3국 간 실질적 교류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
이라고 규정했다. 김 교수는 이어 "정부는 화교를 한중 간의, 한·대만 간의 관계 발전 및 상생에 공헌할 수 있는 귀중한 사회적 자산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