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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의 스포츠 인사이드] 키움 히어로즈 ‘역설의 야구경제학’
프로야구 KBO리그가 지난 22일 개막했다. 작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KIA 타이거스가 ‘극강’으로 평가받는 가운데 지난해 최하위를 한 키움 히어로즈가 올해도 맨 아래를 깔아줄 것이라 예상하는 전문가가 많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진출 선수를 가장 많이 배출한 팀이 키움 히어로즈다. 이 ‘역설의 야구경제학’을 들여다보자.

지난 1월 4일, 키움에서 8시즌을 뛴 국가대표 내야수 김혜성(26)이 작년 MLB 우승팀인 LA 다저스와 입단 계약을 맺었다. 보장 계약은 3년 총액 1250만 달러(약 184억원)이며, 2년 계약을 연장할 수 있는 옵션이 포함돼 있다. 김혜성은 2017년 히어로즈에 입단해 8시즌 통산 953경기에 출전해 주전 2루수로 뛰며 평균타율 0.304에 안타 1043개, 37홈런, 211도루를 기록했다. 2024시즌에는 타율 0.326, 11홈런, 75타점, 30도루로 활약하며 공격·수비·주루플레이에 두루 능한 선수로 평가받았다.

황재균·서건창·조상우 등 줄줄이 이적
김혜성은 포스팅 시스템(경쟁입찰)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9번째 국내 선수가 됐다. 포스팅 시스템은 특정 구단이 선수를 지명해 데려가는 게 아닌, 30개 메이저리그 구단 모두가 참여할 수 있고,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팀을 선수가 선택하는 방식이다. 물론 지명하는 구단이 없거나 조건이 맞지 않으면 계약은 성사되지 않는다. 구단에서 보내주지 않아 메이저리그행이 좌절된 경우도 있다. 김혜성의 에이전트 회사인 CAA는 “LA 에인절스, 시애틀 매리너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등에서도 제안이 왔고, 조건이 가장 좋은 다저스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김혜성은 아쉽게도 1군 콜업을 받지 못해 마이너리그(트리플A)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거가 된 선수 9명 중 5명이 히어로즈 출신이다. 2015년 강정호가 피츠버그 파이리츠에 입단한 것이 시작이었다. 강정호는 음주운전 스캔들로 인해 불명예스럽게 옷을 벗었지만 아시아 내야수 출신 최초로 한 시즌 20홈런을 달성하며 메이저리그에 굵은 족적을 남겼다. 2016년에는 거포 박병호(현 삼성)가 미네소타 트윈스 유니폼을 입었고, 2021년에는 김하성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입단한 뒤 올해 탬파베이 레이스로 이적했다. 2024년에는 ‘바람의 손자’ 이정후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유니폼을 입은 바 있다. 그리고 올해 김혜성까지 ‘키움에서 포스팅한 선수는 100%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는 빛나는 전통을 이어가게 됐다. 이들은 모두 타자(내야수 4명, 외야수 1명)라는 공통점도 있다.

2008년 현대 유니콘스 선수단을 인수해 재창단한 히어로즈는 KBO리그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모기업이 없는 팀이다. 아직 한국시리즈 우승이 없는 유일한 팀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시리즈에 세 차례(2014·2019·2022) 진출했고 2014년부터 9년 동안 8차례 가을야구(포스트시즌)를 했을 정도로 탄탄한 전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구단 자체가 단일 사업체인 히어로즈는 ‘네이밍 스폰서’를 유치해 운영비를 충당한다. ‘히어로즈’라는 구단명만 유지한 채 그 앞에 후원사의 이름을 달아주는 독특한 사업 모델이다. 2008년 창단 당시에는 우리담배의 후원을 받아 ‘우리 히어로즈’로 출발했다. 2010년부터 9년 동안은 넥센타이어의 후원을 받으며 ‘넥센 히어로즈’로 뛰었고, 2019년부터는 키움증권이 스폰서를 맡아 ‘키움 히어로즈’로 KBO리그에 참여하고 있다.

히어로즈가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고 프로야구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구단의 스폰서 수입도 커졌다. 2019년 히어로즈는 키움증권과 5년간 총액 500억원에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를 받는 계약을 맺었다. 2023년 3월, 5년 재계약을 하면서 계약금 550억원에 인센티브를 포함해 총액 695억원을 받기로 했다.

1년에 100억원이 넘는 메인 스폰서를 확보했지만 히어로즈의 살림은 여전히 빠듯했다. 그래서 다양한 방법으로 서브 스폰서를 찾아내는 한편으로 ‘선수 장사’에 적극 나섰다. 시즌이 끝나면 주전 선수들이 좋은 값을 받고 타 팀에 팔려나갔다. 팬들의 원성이 드높았지만 구단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박동원(LG), 황재균(kt), 서건창(KIA) 등 알짜배기 선수들이 빠져나갔다. 올해도 특급 마무리투수 조상우가 KIA로 옮겼다.

팀의 주전 선수와 신인 지명권을 맞바꾸기도 한다. 지난해 키움은 유격수 김휘집을 NC 다이노스에 보내면서 NC의 1·3순위 신인 지명권을 받았다. 즉시전력을 타 팀에 보내면서 ‘실탄’을 마련하고, 아울러 장래성 있는 신인을 확보해 키워내는 전략이다. 히어로즈가 메이저리그 진출에 적극적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히어로즈는 이정후(277억원), 박병호(189억원) 등 5명을 메이저리그에 보내면서 600억원이 넘는 이적료 수입을 올렸다. 주전들이 빠져나가면서 빈자리를 노리는 신예들이 목표의식을 갖고 더 열심히 운동하는 건 당연했다. 히어로즈 선수들은 ‘나만 열심히 하면 언제든 주전으로 발탁될 수 있고, 메이저리그나 다른 팀으로 옮기는 것에도 구단이 매우 적극적이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래픽=이윤채 기자 [email protected]
히어로즈 구단의 고위관계자는 “유망주 발탁과 육성에 대한 우리 구단만의 노하우가 있지만 영업비밀이라 밝힐 수 없다”면서 “선수를 뽑을 때부터 국제경쟁력을 갖췄거나 잠재력이 있는지를 유심히 살핀다. 입단한 선수들은 메이저리거가 된 선배들 모습을 보면서 꿈을 키우고, 자발적으로 훈련에 매진한다”고 말했다.

히어로즈 구단은 메이저리그의 최신 흐름에도 민감하다. 류현진(한화)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한국 투수가 사라진 건 이유가 있다. 피지컬과 구속이 압도적인 중남미 투수를 먼저 뽑고, 동양(한국·일본·대만) 쪽에서는 정교한 제구력을 갖춘 선수에 주목하는데, 국내 투수 중에는 그런 경쟁력을 갖춘 선수를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히어로즈는 투수보다는 공·수·주 3박자를 갖춘 타자 쪽으로 포인트를 맞추는 것이다. 김하성-이정후-김혜성이 모두 그런 스타일이다.

올핸 또 어떤 멋진 선수 키워낼지 주목
야구 외적인 요소도 중요하다. 미국 사정에 밝은 한 야구인은 “메이저리그에 가장 많은 선수를 공급하는 나라가 도미니카와 베네수엘라인데, 메이저리그 구단은 베네수엘라 선수를 선호한다. 교육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육 수준이 높으면 팀 적응이 빠르고, 스캔들 없이 롱런하는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메이저리그를 목표로 하는 선수들은 오타니(LA 다저스)처럼 좋은 태도와 품성을 키우는 게 필요하다는 뜻이다.

KBO리그가 최고의 호황기를 맞았지만 야구 대표팀의 국제경쟁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대형 선수를 발굴해 큰 무대로 보내고, 선수들끼리 자발적인 경쟁을 하도록 유도하는 게 시급하다. 선수는 ‘진출’이고 구단은 ‘수출’이다. 수출액이 커질수록 구단의 가치와 수입도 함께 올라간다. 한국 야구의 경쟁력도 상승할 것이다. 키움 히어로즈가 올해는 어느 정도 성적을 낼지, 또 어떤 멋진 선수를 키워낼지 지켜보는 것도 프로야구를 보는 재미다.

정영재 칼럼니스트
정영재 중앙일보·중앙SUNDAY 스포츠 기자 출신 칼럼니스트. 2013년 스포츠 기자의 최고 영예인 ‘이길용체육기자상’을 받았다. 현재 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스포츠 다큐: 죽은 철인의 사회』 등 저서가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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