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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77주년을 엿새 앞둔 어제(28일) 70여년 통한의 세월을 딛고 4·3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증언본풀이 마당'이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열렸습니다. 증언자로 나선 임충구 할아버지는 여든을 넘긴 고령에도 4·3 당시 목숨을 잃은 부친의 명예회복을 끝내 이뤄낸 과정을 증언했습니다.
■부모 잃고 견뎌낸 어린시절…굶주림·가난보다 고통스러운 '연좌제'

임충구 할아버지

1944년 제주시 한림읍(당시 한림면)에서 태어난 임충구 할아버지는 4·3의 광풍에 휩쓸려 부모를 모두 여의었습니다.

임 할아버지의 부친은 일제강점기 당시 제주의 최고 교육기관인 제주농업학교를 나와 애월면사무소 농업 서기로 일했는데, 4·3 발발 초기 산에 올라 행방불명됐습니다.

이후 모친마저 6·25 발발 직후 예비검속으로 경찰에 끌려가 모슬포 섯알오름에서 희생됐습니다.

일곱살 나이에 고아가 된 임 할아버지는 배고픔도, 가난도 괴로웠지만 무엇보다 고통스럽게 한 것은 ' 연좌제'라고 말합니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를 마친 뒤 여수로 떠난 임 할아버지는 육군병원에서 침상 하나로 타향살이를 버텨낸 끝에 중학교도 졸업했습니다.

이후 고향에 돌아와 보통고시에 합격, 아버지처럼 공직자의 길을 걸으려 했지만 결국 발령이 나질 않았습니다. 임 할아버지는 "연좌제, 레드 콤플랙스가 제 일평생을 짓눌렀습니다"라고 토로했습니다.

연좌제의 굴레에 갇힌 건 임 할아버지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임 할아버지의 매부도 당시 검찰청 서기, 교도소 공안직 시험에 동시 합격했지만 발령받지 못했습니다. 임 할아버지는 "매부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우리 집안에 장가든 죄, 그로 인해서 발령 못받았습니다"라며 연좌제의 부당함에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70년 흘러 되살아난 '사상검증' 잣대…험난했던 명예회복


'폭도· 빨갱이' 소리를 들을까 전전긍긍하며 평생을 보낸 임 할아버지. 이후 4·3수형인명부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정부의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가 발간되자, 관련 신문기사와 자료를 샅샅히 살펴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제주비행장에서 억울하게 학살된 부친의 명예회복을 위해 재심을 청구했지만, 선고가 내려지기까지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2022년 10월 4일 제주4·3수형인 특별재심 선고 공판 모습.

검찰은 2022년 당시 4·3 수형인 특별재심 청구자 68명 중 4명에 대해 문제 삼았습니다. 4명 중 임 할아버지의 부친도 포함됐는데, 검찰은 이들에 대해 좌익 활동 정황 등을 결격 사유로 제기했습니다.

70여년의 세월을 거슬러 '사상검증' 잣대가 되살아나자 지역사회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다행히 유족의 간절한 바람 끝에 재판부가 재심 개시를 결정, 전원 무죄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특별재심 선고 후 인터뷰하는 임충구 할아버지.

선고 공판이 끝난 후 임 할아버지는 담당 검사에게 다가가 '무죄를 구형해 감사하다'고 말을 건냈습니다. 해당 검사는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답했다고 임 할아버지는 기억했습니다.

'재심 무죄 확정 판결문'은 임 할아버지 부친의 유해를 모신 4·3평화공원 봉안실에 올려졌습니다. 불법 군사재판에 의해 총살돼 제주공항 활주로에 암매장된 제주도민 임원전 씨의 명예가 회복되기까지 70여 년이 걸렸습니다.

■"가해자 처벌이 목적 아냐…4·3의 진실 '백비'에 새겨야"


이날 증언 말미에 임 할아버지는 '진실'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임 할아버지는 "가해자를 처벌하자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들 다 죽었는데 어떻게 처벌합니까"라며 "그러나 역사의 진실을 남겨야합니다. 누워있는 백비에 4·3은 공산폭동이 아니고 민중항쟁이라는 이름을 찾아주고, 비석을 바로 세우기 위해 유족과 제주도가 동참했으면 하는 게 제 간절한 바람"이라며 말을 마쳤습니다.

4·3 당시 판결문조차 없는 군사재판에서 사형당하거나 형무소로 보내진 희생자는 2,530명에 달합니다. 이가운데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의 직권재심과 유족의 개별 청구 재심 등으로 명예를 회복한 희생자는 2,100여 명입니다.


'4·3증언본풀이 마당'은 제주4·3연구소가 2002년부터 개최, 올해까지 스물네 번째 마당이 열리며 4·3 진상규명 작업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이날 본풀이 마당에는 강은영 할머니도 증언자로 나서, 반민특위 황해제주지부 조사관과 서귀면장 등을 지내다 4·3 당시 억울하게 희생된 부친 강성모 씨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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