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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봉은 탄핵 찬성 진영의 상징도구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12월 광화문에서 열린 탄핵 찬성 집회. 연합뉴스
잡화품 판매업자 정모(58)씨는 지난달 판매 상품 30여 건에 대해 e커머스 판매 플랫폼에 해명하며 진땀을 뺐다. “반사회적 물건을 판다” “정치적 물건을 판다” 등의 신고로 해당 물건들을 판매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면서다. 문제가 된 상품은 탄핵 찬성 진영을 상징하는 야광 응원봉이었다. 정씨는 “응원봉은 4년 전부터 판매했다”며 “핸드폰 충전기, 노트북 액세서리 등 잡다한 것도 팔아왔다. 정치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당초 예상보다 지연되면서 e커머스 입점 소상공인에게 불똥이 튀고 있다. 탄핵 찬성·반대를 상징하는 도구 판매를 막기 위한 움직임이 나타나면서다. 탄핵심판 장기화로 상대 진영에 대한 공격이 상징 도구까지 이어진 것이다.

탄핵 찬·반 양측 진영은 e커머스 플랫폼에 반대 성향의 판매업자를 ″사회 갈등을 조장한다″는 식으로 신고한다. 판매업자는 경위서를 제출해 이를 해명해야 판매 금지 처분을 면한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e커머스 플랫폼들은 판매 규약상 사회적 혼란을 가져올 우려가 있을 경우 상품 노출을 중단하거나 판매를 금지한다. 특정인을 비하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상품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한 다수의 신고가 접수되면 판매업자는 e커머스 플랫폼에 경위서를 제출하고, 플랫폼은 이를 바탕으로 판매 금지 여부 등을 결정한다.

탄핵 찬·반 진영은 e커머스 플랫폼에 판매업자를 “헌법재판소 판결이 나오지 않았는데 사회 갈등을 조장한다” “정치 편향적인 물건이다” 등으로 신고한다. 반탄 진영은 찬탄의 상징인 응원봉 판매업자를, 찬탄 진영은 반탄의 상징인 태극기·성조기 판매업자를 공격하는 식이다. 단체 대화방,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신고 방법을 공유하는 이들도 등장했다.

판매 문구에 ‘탄핵’이나 ‘윤석열’이 들어간 업체가 주 공격 대상이다. 하지만 판매상품 중에 응원봉, 태극기·성조기만 있어도 공격받기도 한다. 판매 문구에 탄핵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탄핵’ 관련 상품으로 검색되면서다. 탄핵 찬·반 진영에 입소문이 난 업체를 알아내 공격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일부 e커머스 플랫폼에서 공개한 전화번호, 주소, e메일 등 판매업자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항의 전화하거나 문자 폭탄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온라인 e커머스 플랫폼에서 10년 넘게 태극기 판매한 최모(59)씨는 “‘내란공범’이란 문자를 수십 개 받아 심적으로 위축됐다”며 “탄핵 정국과 관련된 판매 문구를 올린 적도 없다”고 토로했다. e커머스 입점 소상공인 김모(45)씨는 “응원봉이 왜 사회 혼란을 가져오는 물건인지 모르겠다. 사회적 혼란을 일으키는 건 정치에 과몰입해 하루도 빠짐없이 싸우는 이들”이라며 “살다 살다 ‘빨갱이’ 소리를 들을 줄 몰랐다”고 말했다.
법원이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 취소 청구를 인용한 다음날인 8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반대 국민대회’에서 지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김현동 기자.
e커머스 플랫폼들도 난처한 입장이다. “고객 신고를 차단할 수 없는 노릇”이라는 것이다. 한 e커머스 플랫폼 관계자는 “판매 규약상 어긋나지 않는 신고가 대부분이라 실제 상품 판매를 금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른 플랫폼 관계자는 “문제를 사전 차단하기 위해 ‘탄핵’ 등 판매 문구를 빼달라고 입점 업체에 권고했다”고 전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길어진 탄핵심판으로 진영 갈등이 격화되면서 소상공인을 향한 공격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e커머스 플랫폼이 판매업자에 대한 보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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