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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 | 글·사진 김기쁨 여행작가



봄을 좇아가는 여행은 꽃잎이 떨어지는 속도처럼 찰나다. 벚꽃이 흐드러진 가로수 길, 수선화가 숨은 절집, 오래된 초당과 고요한 숲길, 그리고 애써 외우지 않았어도 절로 입가에 머무는 시 한 구절 그리고 알싸한 마늘까지. 홍성에서 만난 봄은 짧지만 매우 깊고 강렬하다.

우연히 본 장면에 반했다. SNS에서 화제가 되었던 사진 속 계절은 봄. 연한 분홍색의 벚꽃이 흩날리고 그 아래에선 샛노란 수선화가 산들거린다.

분홍과 노랑이 어우러진 한적한 풍경이라니. 사진에는 담기지 않은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른 아침, 홍성으로 향했다. 프레임 바깥으로 펼쳐진 봄을 더 깊게 만나기 위하여.

이야기 위로 흩날리는 봄, 홍성 거북이마을

홍성 봄 여행, 그 첫 목적지는 거북이마을이다. 마을의 지형과 산세가 거북이와 닮았다고 하여 이름에 거북이가 들어간다. 마을은 거북이 머리 부분이고, 산은 거북이 등껍질에 해당한다. 하늘을 날 수 없는 인간의 눈에 거북이의 형상이 한눈에 들어올 리 있겠냐만, 보이지 않는다 한들 어떠한가. 그 이름 덕분에 여유가 생긴다.

마을로 가는 길, 가로수는 벚나무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은 눈과 발을 사로잡고, 마을로 향하는 걸음은 한없이 더디다. 마을은 생각보다 제법 커서 ‘벚꽃과 수선화의 조합’은 그 모습을 통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니 헤맨다는 핑계로 속도를 더 늦춘다. 느리게 다녀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지 않을 것만 같아서.

구산사에 이르자 수선화가 보인다. 이름만 보고 절인가 했는데 담양 전씨 집안의 삼은(三隱)을 기리는 사당이다. SNS ‘핫플’로 등극한 포토존은 구산사 주차장 옆에 있다. 핑크색 벤치 위로는 벚꽃이, 무릎 옆으로는 수선화가 살랑대며 동화 같은 모습을 연출한다. 바람이 불 때마다 벚꽃잎은 비처럼 내리고 수선화는 춤을 춘다. 봄이다. 작은 포토존에 응축된 봄이 꽃과 함께 터지며 마음이 들썩인다. 그 풍경에 거북이마을은 ‘2025~2026 충남 방문의 해’를 맞아 봄꽃 명소로 선정되기도 했다.

자, 이제 프레임 밖으로 눈을 돌려볼까. 논과 구릉이 펼쳐진 거북이마을은 아늑하고 포근하다. 벚꽃과 수선화가 만든 봄의 장관, 그 사이사이에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다. 포토존 하나만 본 후 바로 발길을 돌릴 수 없는 이유다.

마을 길은 보개산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살짝 오르막이다. 아직은 차가운 아침 공기 속을 걸으니 머릿속까지 상쾌해진다. 느릿느릿 몇 걸음 오르다 보면 작은 초가집이 한 채 눈에 들어온다. 조선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약천 남구만이 태어났고 또 벼슬에서 물러난 후 낙향했던 곳이다. 후대의 사람들은 그 터에 새로 초가집을 짓고 약천초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남구만 선생은 정치가이자 문인이었다. 한 번쯤은 들어본 시조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로도 유명하다. 초당 근처에는 시조가 새겨진 시비가 있다. 읽어보니 그 내용은 대략 이렇다. 봄이 왔고 아침이 밝았건만, 소 치는 아이는 아직도 안 일어났구나. 고개 너머 긴 밭은 대체 언제 다 갈려고 그럴까.

그는 소박했고 부지런했다. 그가 남긴 시조 역시 근면 성실의 미덕을 강조한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따끔하게 혼내듯 말해야 할까 싶다가도 이내 이해가 된다. 초당에서는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담아내기엔 봄도 하루도 너무 짧기에.

조금 더 올라가면 길은 본격적으로 숲이 된다. 화려한 봄 풍경과 초당의 소박함에 이어 만난 건 청정한 대나무 숲이다. 짙푸른 대나무 숲길은 거북이마을의 또 다른 비경이다. 꽃비를 내리던 바람은 이곳에서 대나무잎을 흔들며 연주를 한다. 사각거리는 것이 댓잎 소리인지 발걸음 소리인지 굳이 구분하지 않으니 곧 자연으로 녹아든다.

더없이 평온한 시간을 뒤로하고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구산사가 있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온 공간은 역시나 찾는 이가 없어 고즈넉하다. 봄꽃 포토존을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지만 마을을 거니는 이는 많지 않다. 잠시 여유를 갖고 느릿느릿 정처 없이 걸어보는 건 어떨까. 우연히 마주한 풍광은 스쳐 지나가는 봄을 더 길게 간직할 선물이 되어줄 테니.

홍주읍성


걸으며 만나는 옛 홍성, 홍주읍성

홍성은 과거 홍주라고 불렸다. 1914년에 홍성군이 되었으니 홍주로서 쌓아온 시간이 더 길다. 바다와 맞닿은 홍성은 행정과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홍성의 중심에 남은 홍주읍성에서 당시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

맨 처음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선 문종 1년(1451)에 성을 고쳐 쌓았고 1870년에 홍주목사 한응필이 대대적으로 개축했다. 1772m에 달했던 홍주읍성의 성벽 중 지금 남은 것은 810m뿐이지만, ‘뿐’이라는 말을 쓰기에는 그 크기가 결코 작지 않다. 과거 홍주읍성의 규모가 얼마나 됐을지 쉽게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다.

오늘날 홍주읍성은 산책하며 계절을 느끼기 좋은 나들이 장소다. 2012년, 읍성 안쪽에 조성된 홍주성역사공원 덕분이다. 울창한 나무가 휴식을, 성곽을 따라 난 산책로가 여유를 선사한다. 홍주읍성은 이 자리에서 임진왜란과 천주교 박해, 을사늑약에 반대하며 일어난 홍주 의병 전투까지 기나긴 역사를 경험했다. 수없이 많은 봄을 보낸 성에서 맞이하는 봄 풍경은 그래서 더 특별하다.

읍성 내에는 홍주성 역사관도 있다. 홍주읍성 그리고 홍성의 역사와 주요 인물에 대한 전시로 꽉 채워진 알찬 공간이다. 읍성 바로 앞 홍성군청에도 들러보자. 조선시대 관아의 출입문으로 사용되던 아문(衙門)이 지금은 군청의 정문 역할을 하는 중이다.

홍성 마늘을 맛있게 즐기는 법, 더호봉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홍성을 즐기다 보니 출출함이 찾아왔다. 홍성의 맛을 즐겨야 할 때다. 그 마음으로 향한 곳은 홍주성 옆 더호봉. 성곽이 한눈에 들어오는 베이커리 카페로 홍성의 특산물인 마늘을 활용해 빵을 만든다.

홍성 마늘빵


내부는 넓고 쾌적하다. 공간의 구분이 없는 데다 홍주성이 보이는 쪽은 통유리로 창을 내서 탁 트인 성벽 뷰를 자랑한다. 너른 공간을 가득 채우는 건 알싸하고 달콤한 마늘 향이다. 수북하게 쌓인 갖가지 빵 중에서 유독 ‘홍성 마늘’이라는 이름이 많이 보인다. 홍성이 고향인 이들과 홍성이 좋아서 내려온 청년들은 홍성 특산물을 활용한 빵을 개발하기 위해 힘을 합쳤다. 그렇게 더호봉의 대표 메뉴인 홍성 마늘빵이 탄생했다. 익히면 단맛이 나는 홍성 마늘의 특성을 살리고 마늘을 듬뿍 넣어 식감을 더했다.

그 외에도 홍성 마늘 바게트 스틱, 홍성 마늘 스콘, 홍성 마늘 소금빵 등 마늘을 활용한 변주가 다채롭다. 오랜만에 방문하면 새로운 빵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이토록 다양한 마늘빵은 홍성에 대한 더호봉의 애정을 상징한다고. 창가에 앉아 애정이 담긴 빵을 한입 크게 베어 문다. 창밖에는 홍주읍성이 보이고, 입안에는 홍성 마늘빵이 가득하니 모든 게 홍성다운 순간이다.

마음속까지 따뜻한 기분, 홍성전통시장

홍성을 맛본 후, 홍성의 삶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싶어졌다. 봄과 이야기가 조화로운 홍성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홍성전통시장이다. 1943년에 개설된 오일장(1·6일)으로 공식 점포 수만 350여개에 달한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이렇게 반가울 수 있던가. 마침 크게 장이 열렸다. 정신이 없을 정도로 활기찬 시장엔 갖가지 먹거리가 가득하다. 만물이 깨어나고 피어나는 계절에 떠난 여행, 그 끝을 장식하기에 완벽한 장소다. 뜨끈한 소머리국밥은 여행자의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고, 노부부가 정성으로 구워내는 호떡은 포근하게 온기를 더해준다. 홍성을 뒤로하고 떠나는 길, 그렇게 봄을 닮은 안온한 마음만 남았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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