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이 28일 고려아연 정기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고려아연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측이 28일 열린 정기주주총회(주총)에서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의 이사회 장악 시도를 방어했다. 영풍 지분 25%의 의결권을 놓고 양측은 주총 당일까지 엎치락뒤치락 하며 치열하게 다퉜지만, 고려아연이 지분 100%를 보유한 썬메탈홀딩스(SMH)가 이날 주총 시작 직전 영풍 주식을 장외매수해 영풍 의결권 행사를 차단했다. 영풍·MBK 연합 측은 이사회에 우호 인사 3명을 진입시키는 데 그쳤다.
이날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호텔에서 열린 주총에서 고려아연은 이사 수 상한을 19명으로 제한하는 정관변경 안건을 통과시켰다. 현재 이사 11명 외에, 최 회장 측이 추천한 이사 5명, 영풍·MBK 측이 추천한 이사 3명을 신규 선임하는 안건도 통과됐다. 전체 이사 19명 중 15명(직무정지 4명 포함)은 고려아연 측으로, 장형진 영풍 고문을 비롯해 4명은 영풍·MBK측으로 분류된다.
이날 주총은 당초 오전 9시 개회 예정이었으나 11시 32분에야 시작됐다.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이사회 의장)은 “회사와 모회사 또는 자회사가 다른 회사의 발행주식 총수의 10분의 1을 초과하는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 해당 주식은 의결권이 없다”며 “상법 제369조 3항에 따라 대주주 영풍이 보유한 526만2450주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선포했다.
김영옥 기자
앞서 영풍은 전날 자사 주총에서 기존 주주들에게 주식을 배당하는 방식으로 고려아연→SMH→영풍→고려아연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끊으려 시도했다. 1주당 0.04주의 주식을 배당하는 안건을 통과시켜, 전체 발행 주식 수를 늘려 기존 주주 지분율을 희석시키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SMH는 배당 기준일 당시 명부상 주주가 아니어서 주식 배당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 결과 SMH의 영풍 지분율은 10.3%에서 10% 미만으로 줄어 상호출자 구조가 해소됐다. 영풍 주총이 열린 오후 법원이 영풍의 고려아연 의결권 행사 허용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자, ‘기습 배당’이란 수를 짜낸 것으로 보인다.
이에 영풍 측은 28일 고려아연 주총 시작 전까지 “상법상 상호출자 요건을 피했기 때문에 영풍의 고려아연 지분 의결권이 제한받지 않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려아연은 주총 시작 직전 해외 자회사인 SMH가 영풍의 지분을 장외 매수했다. 전날 일시적으로 10% 미만으로 떨어졌던 영풍 지분율을 10.3%로 높여 순환출자 구조를 다시 형성한 것이다. 9시 48분 이 사실이 공시됐고 이후 주총이 시작되자 영풍·MBK 측에서 고성이 쏟아졌다. 영풍 대리인 이성훈 변호사는 “(예정됐던) 주총 시간은 9시인데, SMH의 영풍 주식 취득 시점은 그보다 더 뒤라는 게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고창현 고려아연 측 법률대리인은 “SMH로부터 오늘 주식 확보 통지를 받았고, 주식 취득 시점은 당초 주총 시작 예정시각(9시)보다 이른 8시 54분”이라고 받아쳤다.
정근영 디자이너
이후 승기를 쥔 고려아연은 이사 수 상한 등 핵심 안건들을 차례로 가결했다. 이사 수 상한은 캐스팅보트를 쥐었던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들의 찬성으로 무난하게 퉁과됐다. 또 표결을 거쳐 이사 임기가 만료됐던 고려아연 측 박기덕, 권순범, 김보영 이사와 영풍 측 소송으로 직무가 정지됐던 제임스 앤드류 머피, 정다미 후보 등 5명이 이사로 선임됐다. 주총 직후 고려아연은 “많은 주주와 국민들께서 국가기간산업 고려아연을 적대적 M&A(인수합병) 위협으로부터 지켜내야 한다는 점에 깊이 공감한 것”이라고 밝혔다.
영풍·MBK 측에선 김광일 MBK 부회장을 비롯한 권광석, 강성두 등 영풍·MBK측 후보 3인이 이사회에 진입했다.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로는 서대원 후보가 선임됐다. 영풍·MBK 측은 “‘반나절짜리 상호주 제한’이라는 기형적 상황이 연출됐다”며 “왜곡된 정기 주총 결과에 대해 즉시항고, 효력정지 등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 바로 잡겠다”고 주장했다.
28일 고려아연 정기주주총회 회의장 앞 고려아연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MBK 경영행태! 노동자와 지역경제가 몰락한다!'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고려아연
이날 주총 이후 고려아연 주가는 8.70% 급락해 76만600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영풍 역시 등락을 반복한 끝에 장마감 기준 3.15% 내린 43만원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