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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경북 의성군청소년문화의집에 마련된 산불 진화 헬기 추락 사고 희생자 고(故) 박현우 기장의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애도하고 있다. 뉴스1

“사고 전날 통화에서 남편이 ‘사랑한다’고 말해줬는데….”

28일 낮 12시쯤 경기 김포시의 한 장례식장. 경북 의성 산불 진화 중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희생된 고(故) 박현우(73) 기장의 아내 장광자(71)씨는 남편을 떠올리다 말문이 막혔다. 장씨는 사고 전날인 지난 25일 오후 7시30분쯤 박 기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원도 인제에서 근무해 떨어져 살았던 남편은 매일 같은 시간마다 “저녁 먹었냐”며 안부를 물었는데, 그날따라 연락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씨는 “전화를 받은 남편이 ‘의성에 진화 작업 지원을 나와서 전화를 못 했다’고 했다.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은 게 마지막이었다”고 말하곤 눈시울을 붉혔다.

육군3사관학교를 졸업한 박 기장은 육군항공대에서 비행을 시작했다. 1988년 전역 뒤 민간 항공사에 취업해 40년 넘게 비행 경력을 쌓은 베테랑이었다. 생전 산불 등 방재 작업부터 석유·가스 시추 지원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출동이 잦은 봄·가을철이면 타지에 머물러야 했지만, 가족들에겐 아내의 생일을 살뜰하게 챙기고 시간을 쪼개 가족을 돌보던 다정한 가장이었다.

지난 19일 故 박현우 기장이 아내 장광자(71)씨의 생일을 맞아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이영근 기자


"할아버지는 우리의 영웅"
박 기장은 2022년 울진 산불 당시에도 진화 임무를 맡았다. 그 공로로 같은 해 5월 경북·강원산불 진화 유공자로 정부 포상도 받았다. ‘이제 하늘이 지겹지 않냐’는 지인들의 말에 박 기장은 “나는 비행이 제일 좋다”며 열심히 했다고 한다. 아내 장씨는 “기장 교육과 테스트에서도 ‘매뉴얼대로 조종을 잘한다’는 심사위원 평가를 받을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박 기장의 손자와 손녀는 그의 영전에 손수 적은 편지를 바쳤다. 미국에 사는 박 기장의 손자 최루빈(11)군은 “제 할아버지가 되어 주셔서 고마워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너무 슬프지만, 천국에서 저를 항상 지켜보실 거라고 믿어요. 사랑해요 할아버지”라고 영어로 적었다. 손녀 박소율(8)양은 “할아버지는 우리의 영웅이에요. 하늘나라에서 편히 계세요. 보고 싶을 거예요. 사랑해요”라고 썼다.

故 박현우 기장의 손자 최루빈(11)군이 28일 손수 적은 편지를 할아버지 영전에 바쳤다. 미국에 거주하는 최군은 할아버지의 사고 소식을 듣고 한국으로 건너왔다. 이영근 기자
장례식장을 찾은 지인들은 박 기장이 “투철한 사명감을 가진 조종사이자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이었다”고 기억했다. 박석태 육군3사관학교 12기 동문회장은 “생도 시절부터 임무가 부여되면 자신을 챙기기보다 일을 명확하게 마무리하는 게 우선이었던 바른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말했다. 박 기장과 같은 교회를 다니는 이모(51)씨는 “인자하고 권위 의식 없이 어려운 사람을 먼저 챙기곤 했다”며 “발자취를 좇고 싶은 롤모델 같은 분이었다”고 말했다.




27일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 상의리 주왕산 국립공원 산불 현장에 투입된 헬기가 산불 진화를 위해 물을 뿌리고 있다. 뉴스1


순직자 예우…이천 호국원에 안치
사고 현장에서도 박 기장을 향한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경북 의성군 청소년문화의집 다목적강당에는 박 기장을 애도하는 분향소가 마련됐다. 이날 오후 12시50분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철우 경북도지사, 우원식 국회의장 등도 분향소를 찾았다. 이 대표는 조문록에 “숭고한 희생과 헌신.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보답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시민 추모객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분향소 운영 기간은 29일 오후 9시까지다.

박 기장은 26일 오후 12시54분쯤 의성군 신평면 교안리 한 야산에서 헬기로 산불 진화 작업을 하던 중 추락해 숨졌다. 사고 목격자들은 박 기장이 추락 직전 민가로 향하던 헬기를 야산 방향으로 틀었다고 증언했다. 국토교통부 사고조사위원회는 헬기에서 블랙박스를 수거해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박 기장은 공무 수행 중 사망한 순직자로 예우돼 이천 호국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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