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산불로 사망한 이모(100)씨가 살던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마을이 산불로 폐허가 돼 있다. 연합뉴스
“100세 어머니가 신발을 신는 데만 5분이 걸리는데 불이 집 마당까지 들이닥치고서야 대피문자를 보내면 어떡합니까.”
25일 경북 영덕을 덮친 산불로 어머니를 잃은 김모(65)씨의 하소연이다. 28일 오전 영덕군 영덕읍의 한 장례식장에서 만난 김씨는 “연로한 노인들은 대피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을 고려해서 산불이 영덕군 초입에 들어섰을 때 대피지시를 내렸어야 했다”며 “일찍 잠들어서 대피도 못 하고 뜨거운 불 속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고 울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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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노모 자다가 봉변…아들 “대피문자 너무 늦었다” 탄식
영덕군이 김씨 어머니가 살던 영덕읍 석리에 대피문자를 보낸 시각은 25일 오후 9시다. 영덕군 초입 지점인 지품면 황장리에 대피문자를 보낸 시각은 25일 오후 6시다. 황장리와 석리는 30㎞ 가량 떨어져 있다. 25일 오후 6시 영덕에는 초속 27m의 강풍이 불고 있었고, 시간당 평균 8.2㎞ 속도로 산불이 번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석리 주민들에게 더 일찍 대피문자를 보냈어야 한다는 게 김씨의 이야기다.
산림 당국은 “산림청 분석 이래 역대 가장 빠른 속도”라며 “청송을 넘어 영덕까지 퍼질 줄은 미처 예상하기 어려웠다”고 밝혔지만, 유가족들은 정부의 미흡한 대처에 분통이 터질 뿐이다.
김씨는 “영덕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부산에서 곧장 달려갔지만, 어머니 댁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돌아가신 상태였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해 6월부터 8개월 동안 어머니를 자신이 사는 부산에 모셨다고 했다. 그러다 어머니가 “답답하다”며 3주 전 고향인 영덕읍 석리로 다시 돌아갔다고 한다. 그는 “짐 보따리를 싸 들고 부산 집을 나가시던 어머니를 붙잡지 못한 게 한스럽다”며 “산불이 나던 당일 아침에도 어머니와 통화를 했는데 이렇게 돌아가실지 몰랐다”고 말했다.
영덕 산불로 사망한 이모(100)씨의 빈소가 차려진 영덕읍의 한 장례식장. 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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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산불 사망자 9명 중 3명만 빈소…6명은 DNA 감식 중
영덕읍 매정1리에 살던 80대 노부부는 대피 도중 참변을 당했다. 남편 이모(90)씨와 아내 권모(87)가 잿더미가 된 집 대문 앞에서 껴안고 있는 모습으로 발견돼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28일 오전 영덕읍의 한 장례식장에서 만난 큰아들 이모(60)씨는 “25일 밤 불이 나자 부모님이 대피하려고 문밖을 나섰는데 어머님이 넘어지자 아버님이 일으켜 세우다가 연기에 질식사 하신 거로 보인다”며 “부모님이 꼭 부둥켜안은 채로 돌아가셨다”고 오열했다.
80대 노부부는 25일 오후 8시 40분쯤 조카와 통화하면서 ‘불은 안 보이는데 연기가 꽉 찼다’고 말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고 한다. 이씨는 “당연히 대피하셨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싸늘한 주검으로 만나다니….”라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영덕 산불로 사망한 9명 가운데 6명의 빈소는 아직 차려지지 않았다. 6명의 시신은 영덕의 한 장례식장에 함께 안치돼 있다. 영덕군 관계자는 “사망자 6명의 시신이 너무 불에 타서 신원 확인을 위해 DNA 감식 중”이라며 “신원 확인이 된 뒤에 빈소가 차려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26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한 도로에 산불에 불탄 차량이 세워져 있다. 이 차량에서는 산불 사망자 3명이 나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