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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민농장 대표 이승민(47)씨가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서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손성배 기자

“예사롭지 않은 바람, 활활 타는 마을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경북 산불 현장에 초대형 농약살포기가 나타났다. 경북 구미 옥성면에서 16만㎡(5만여평) 규모의 복합 영농을 하는 승민농장 대표 이승민(47)씨 소유 장비다. 이씨는 28일 오전 세계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안동 도산서원 앞에서 “당근 밭 비닐이 강풍에 날리는 걸 보고 예삿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산불이 삽시간에 번지더라도 광역살포기로 물을 뿌리면 조금은 지연을 시킬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나왔다”고 말했다.

산불 진화에 사용한 광역살포기는 본래 농약을 살포하는 농기계다. 하지만 농약 대신 소방수를 뿌리면 민가 주변으로 번진 산불을 잡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지난 26일 의성 안사면에 도착한 그의 눈앞엔 녹아내린 승용차와 검게 그을린 면사무소 뒷산이 보였다. 4000L 물을 최대 100m 밖까지 분무할 수 있어 민가 근처로 번진 산불을 집중적으로 껐다. 붉은 화염이 살아있는 마을을 찾아다니며 광역살포기를 가동해 소방수를 뿌리고, 채우기를 반복했다.

경북 구미 농부 이승민(47)씨가 4000ℓ 물을 100m까지 분사하는 대형 광역살포기로 경북 의성 안사면 민가로 번지는 산불을 끄고 있다. 사진 이승민씨 제공
산불 진압을 도우러 나온 이승민 대표와 변호진 금용 창업자의 차량이 28일 경북 안동시 도산서원 주차장에 주차돼 있다. 서지원 기자

이씨가 의성 곳곳에 광역살포기를 몰고 산불과 씨름하는 모습은 농민 정보 유튜브 채널 한국농수산TV에 담겼다. 이 영상 조회 수는 게시 하루 만에 100만회를 훌쩍 넘길 만큼 관심을 모았다. 한 시청자는 “부모님 댁 홈카메라로 광역살포기를 봤다”며 “돌풍이 불어 마을을 집어삼킬지 몰라 조마조마했는데, 불을 꺼줘서 정말 감사하다”고 수퍼 챗 후원을 했다. 이씨는 “20대엔 구미 시내에서 스포츠센터를 운영하다 29살에 아버지 가업을 이어받아 농업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며 “산불로 농가들이 피해를 봐 안타까운 마음에 주변에도 도움을 구했다”고 말했다.

이씨 요청을 받은 경북 고령군 소재 다목적 방제기 업체 ㈜금용도 장비 2대를 의성군 안평면과 안동시 길안면에 보냈다. 길안면 만음리에선 산불이 띠를 이뤄 민가로 내려오는 급박한 상황에도 강력한 수압으로 소방수를 뿌려 큰 피해를 막았다. 장비를 끌고 온 금용 창업자 변호진(65)씨는 “37년째 방제 기계 개발 업체를 운영하면서 작은 트럭에도 4000L를 담아 150m 높이까지 쏠 수 있는 방제기를 개발해 특허를 받았다”며 “산불진화대에 미약하지만 도움을 주고 싶다. 이승민 대표에게 감명받아 나왔다”고 했다.

경북 산불 확산에 따른 피해를 막기 위해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 인근 수목을 잘라낸 모습. 사진 도산서원
28일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에서 소방 관계자들이 산불에 대비해 장비를 확인하고 있다. 서지원 기자

이날 이씨와 변씨는 안동 도산서원까지 160㎞ 거리를 2시간 30분 달려 도착했다. 가장 인접한 산불 지역에서 20㎞ 이상 떨어져 있지만, 승용차 속도와 맞먹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번지는 산불을 목격한 터라 염려하는 마음이 컸다. 도산서원엔 경기 포천소방서와 경북 안동소방서 펌프차가 상시 대기하며 도산서원 관리사무소 직원들과 산불 피해 방지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27일부터 임시 휴장을 하고 도산서원 둘레 10m 이내 폭으로 소나무와 단풍나무를 벌목해 산불 방어선을 구축했다.

도규태 도산서원 관리사무소장은 “퇴계 이황 선생의 유품을 한국국학진흥원 수장고로 옮기고 서원 자체가 세계유산인 만큼 화재가 번지지 않도록 벌목 작업을 하고 주변에 물을 뿌려 만반의 준비를 다 했다”고 말했다. 이동신 도산서원 별유사는 “서원을 지키겠다는 선한 마음으로 멀리서 찾아와 주신 농민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씨와 변씨는 안동 산불현장 통합지휘본부를 들렀다가 실시간 산불정보를 확인하며 의성군 안계면, 비안면으로 향했다. 이씨는 “농번기지만, 합심해 산불을 끄는 게 먼저”라며 “세종에서도 1만L 살수차가 오고 있어 광역살포기와 방제기, 살수차가 함께 움직이면서 마지막 불씨까지 끄겠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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