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상황이 담긴 1994년에 외교문서가 공개됐습니다. 외교부는 오늘(28일) '30년 경과 외교문서' 2,500여 권 38만여 쪽을 일반에 공개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는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주석 사망에 따른 각국 반응과 정세, 아들 김정일로의 권력 승계에 쏠린 관심들이 담겨있습니다.
■ 김일성 사망 믿지 않은 북한 대사관 "터무니없는 날조 기사"
1994년 7월 8일 새벽 2시, 북한 김일성 주석 사망하자 평양방송은 다음 날인 9일, 이를 발표합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전군 비상경계 태세를 지시하고, 대통령 주재 국가안전보장회의를 개최합니다. 미국 CNN은 현지시각으로 8일 밤 10시부터 톱뉴스로 김일성 사망 보도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해외 일부 북한 공관에서는 김 주석 사망 사실을 모르거나 믿지 않았습니다.
7월 9일 새벽 6시쯤, 독일의 한 특파원이 현지 북한대표부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김 주석의 사망 사실을 묻자 "남반부(남한) 기자가 사실무근의 낭설을 이야기한다" 화를 냅니다. 정오에 다시 전화를 걸자 북한 관계자는 "평양으로부터 아무 연락을 받지 못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울먹입니다. 9일 오전에도 조기를 게양하지 않았던 세네갈 주재 북한 대사관은 본국으로부터 '비상 근무' 지시를 받아 근무 중이지만 김일성 주석 사망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 말합니다.
7월 9일 베트남 현지 매체가 김일성 사망 소식을 보도하자, 주베트남 북한 대사관 측은 '터무니없는 날조된 기사'라며 항의합니다. 베트남 통신 측이 북한 중앙통신이 작성한 김일성 사망 보도 기사를 보여주고 나서야 소동이 진정됩니다. 주인도네시아 북한 대사관도 CNN의 보도에 대해 "허위 보도를 일삼는다"며 믿지 않다가 북한의 공식 발표임을 확인하고 나서야 상황 파악에 나섭니다.
[연관 기사] 김일성 북한 주석 사망 | KBS 뉴스 (1994년 7월 9일 9시 뉴스특보)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3741757
김 주석의 구체적인 사망 원인에도 관심이 쏠렸습니다. 미국 클린턴 대통령은 김일성 주석의 사망에 대해 조의를 표명하는 성명을 발표합니다. 이후 기자회견에서 "김 주석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점 외에 아는 바가 없다"고 답합니다.
중국 관계자는 "그동안 김일성이 심장병을 지병으로 앓아왔으며 1993년 중국의 전문의사가 2~3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했다"고 전합니다. "최근 핵 문제 협의를 위해 82세의 노인으로서는 지나치게 몸을 혹사했다"며 남북 정상회담 등을 앞두고 상당한 스트레스와 과로를 사인으로 추정하거나 "김정일과 의견 충돌로 흥분 상태에서 수면 중 심장마비를 일으켰을 가능성"을 언급하는 또 다른 전문가의 추측도 보고 문서에 담겼습니다.
■ "대통령 조전 집요하게 부탁"... 조문 사절단 받지 않은 이유는?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장례식을 거행하는 7월 17일까지를 애도 기간으로 정합니다. 7월 11일, 평양 주재 외교단 전원을 주석궁으로 불러 조문록에 서명하도록 합니다. 외국 조문 사절은 받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외교문서에는 "사절단 급이 낮을 것으로 예상해 미리 받지 않는다 한 것"이라며 "북한 고위층에 국제 정세를 제대로 판단하는 사람이 있는 듯하다"는 분석이 적혀있습니다.
절박하게 조전을 부탁하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당시 멕시코 외무성 태평양 국장은 "북한 대사가 대통령의 친전형식으로 직접 서명한 개인적 조전을 보내줄 것을 집요하게 요청했다"고 전했습니다. 멕시코 국장은 "조전이 발송되지 않을 경우 더 이상 대사직을 지탱할 수 없을 정도의 절박한 상황임을 짐작게 하였고, 심리적으로 극한 상태에 달하였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있는 국가의 주재 대사들에게 김일성 장례 기간 동안 조문록 서명해 줄 것을 전화로 수차례 요구한 북한 대사관 측의 행동이 '무례하고, 비상식적'이었다는 비판도 오갔습니다. 현지 북한 대사관의 인력이 부족하고, 복사기 등 비품이 구비되어 있지 않다는 사정을 설명하며 대사관에 조문록 비치되어 있음을 알리는 공지를 주재국의 외무성에서 협조해달라며 부탁하는 어수선한 상황도 발생했습니다.
■ 김정일에 쏠린 각국 관심... "멍청하고 어린애 같다. 승계 권력 오래 못 갈 것"
김일성 주석의 사망 이후, 북한의 후계 구도에도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외교문서에는 김 주석이 과거 중국을 방문했을 때 덩샤오핑 주석에게 김정일 문제를 부탁(중국 표현으로 託孤(부탁할 탁, 외로울 고 : 어버이 없는 어린아이의 뒷일을 믿을 만한 사람에게 부탁함)'해 두었다고 적혀있습니다.
공식 후계자를 발표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들 김정일의 승계가 확정될지, 북한의 정책 계속성이 유지될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김정일의 건강이나 성격 등에 대해 탐문이 활발해집니다. 외무부는 7월 12일 북한에 공관을 둔 국가에 주재하는 대사관에 주재국의 평양 주재 공관을 통해 입수된 북한 동정을 파악해 보고할 것을 지시합니다.
페루 친북협회 사무총장은 "최근 김정일 체중이 20kg이나 감소하는 등 건강이 매우 악화됐다"며 "주재국에서 생산된 약초와 자연요법 치료사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주일 한국대사와 면담한 당시 주일 미국대사는 김정일에 대해 "자신이 보기에는 약간 멍청하고(Goofy) 어린애같아(Childish) 지도자로는 부족한 것 같다"고 평가합니다. 김정일이 심장이 약하고, 말에서 떨어져 다쳤다는 설도 퍼집니다.
주미대사가 작성한 보고 문서에는 '김정일의 정책 성향이나 역할에 대해 불분명하다'고 적혀있습니다.
미국 내 예측은 상반됐습니다. 국무부는 김정일이 과거 북미 협상에서 일정 역할을 했기 때문에 김일성 정책의 계속성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중앙정보국(CIA)은 알려진 김정일의 성향(과격성, 불가측성 등)으로 보아 그렇지 않을 거라고 분석합니다. 미국가정보위원회(NIC) 고위 관계자는 "수년 내 김정일 반대파가 김정일을 제거하는 시나리오가 가장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언급하는 등 권력 승계 이후 북한 내부 체제가 위기에 봉착할 거라는 견해도 나왔습니다.
■ 남북정상회담 무산... 북미 제네바 합의 평가는?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7월 25~27일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남북 정상회담은 무산됐습니다. 남북은 6월 28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예비 접촉 이후, 7월 1일과 2일 실무 절차를 합의했습니다. 7월 8일은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오전 10시, 남북 경호 실무자들이 만나기로 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8일 새벽 2시 김일성 주석의 사망에 따라 북한은 7월 11일 남북한 최고위급회담 연기를 통보합니다.
이후 1994년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간 협의는 진전을 이룹니다. 1993년 1단계, 2단계 회담에 이어 1994년 10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3단계 회담이 열리고, 북미 간 기본합의서에 서명한 '제네바 협의' 당시 상황도 올해 공개된 외교문서에 담겼습니다. 5년 전 외교문서를 공개할 때 일부 비공개 처리됐던 1989년 '무라야마 일본 총리 특별담화' 내용도 검토를 거쳐 올해 공개 문서에 포함됐습니다.
정부는 국민 알권리 보장과 외교 행정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생산된 지 30년이 지난 외교문서를 해마다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1989년, 1994년 외교문서 원본은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 열람실'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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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성 사망 믿지 않은 북한 대사관 "터무니없는 날조 기사"
1994년 7월 8일 새벽 2시, 북한 김일성 주석 사망하자 평양방송은 다음 날인 9일, 이를 발표합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전군 비상경계 태세를 지시하고, 대통령 주재 국가안전보장회의를 개최합니다. 미국 CNN은 현지시각으로 8일 밤 10시부터 톱뉴스로 김일성 사망 보도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해외 일부 북한 공관에서는 김 주석 사망 사실을 모르거나 믿지 않았습니다.
7월 9일 새벽 6시쯤, 독일의 한 특파원이 현지 북한대표부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김 주석의 사망 사실을 묻자 "남반부(남한) 기자가 사실무근의 낭설을 이야기한다" 화를 냅니다. 정오에 다시 전화를 걸자 북한 관계자는 "평양으로부터 아무 연락을 받지 못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울먹입니다. 9일 오전에도 조기를 게양하지 않았던 세네갈 주재 북한 대사관은 본국으로부터 '비상 근무' 지시를 받아 근무 중이지만 김일성 주석 사망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 말합니다.
7월 9일 베트남 현지 매체가 김일성 사망 소식을 보도하자, 주베트남 북한 대사관 측은 '터무니없는 날조된 기사'라며 항의합니다. 베트남 통신 측이 북한 중앙통신이 작성한 김일성 사망 보도 기사를 보여주고 나서야 소동이 진정됩니다. 주인도네시아 북한 대사관도 CNN의 보도에 대해 "허위 보도를 일삼는다"며 믿지 않다가 북한의 공식 발표임을 확인하고 나서야 상황 파악에 나섭니다.
[연관 기사] 김일성 북한 주석 사망 | KBS 뉴스 (1994년 7월 9일 9시 뉴스특보)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3741757
김 주석의 구체적인 사망 원인에도 관심이 쏠렸습니다. 미국 클린턴 대통령은 김일성 주석의 사망에 대해 조의를 표명하는 성명을 발표합니다. 이후 기자회견에서 "김 주석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점 외에 아는 바가 없다"고 답합니다.
중국 관계자는 "그동안 김일성이 심장병을 지병으로 앓아왔으며 1993년 중국의 전문의사가 2~3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했다"고 전합니다. "최근 핵 문제 협의를 위해 82세의 노인으로서는 지나치게 몸을 혹사했다"며 남북 정상회담 등을 앞두고 상당한 스트레스와 과로를 사인으로 추정하거나 "김정일과 의견 충돌로 흥분 상태에서 수면 중 심장마비를 일으켰을 가능성"을 언급하는 또 다른 전문가의 추측도 보고 문서에 담겼습니다.
1994년 7월 당시 북한 매체가 보도한 김일성 주석의 사망을 슬퍼하는 평양 시민들
■ "대통령 조전 집요하게 부탁"... 조문 사절단 받지 않은 이유는?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장례식을 거행하는 7월 17일까지를 애도 기간으로 정합니다. 7월 11일, 평양 주재 외교단 전원을 주석궁으로 불러 조문록에 서명하도록 합니다. 외국 조문 사절은 받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외교문서에는 "사절단 급이 낮을 것으로 예상해 미리 받지 않는다 한 것"이라며 "북한 고위층에 국제 정세를 제대로 판단하는 사람이 있는 듯하다"는 분석이 적혀있습니다.
절박하게 조전을 부탁하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당시 멕시코 외무성 태평양 국장은 "북한 대사가 대통령의 친전형식으로 직접 서명한 개인적 조전을 보내줄 것을 집요하게 요청했다"고 전했습니다. 멕시코 국장은 "조전이 발송되지 않을 경우 더 이상 대사직을 지탱할 수 없을 정도의 절박한 상황임을 짐작게 하였고, 심리적으로 극한 상태에 달하였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있는 국가의 주재 대사들에게 김일성 장례 기간 동안 조문록 서명해 줄 것을 전화로 수차례 요구한 북한 대사관 측의 행동이 '무례하고, 비상식적'이었다는 비판도 오갔습니다. 현지 북한 대사관의 인력이 부족하고, 복사기 등 비품이 구비되어 있지 않다는 사정을 설명하며 대사관에 조문록 비치되어 있음을 알리는 공지를 주재국의 외무성에서 협조해달라며 부탁하는 어수선한 상황도 발생했습니다.
■ 김정일에 쏠린 각국 관심... "멍청하고 어린애 같다. 승계 권력 오래 못 갈 것"
김일성 주석의 사망 이후, 북한의 후계 구도에도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외교문서에는 김 주석이 과거 중국을 방문했을 때 덩샤오핑 주석에게 김정일 문제를 부탁(중국 표현으로 託孤(부탁할 탁, 외로울 고 : 어버이 없는 어린아이의 뒷일을 믿을 만한 사람에게 부탁함)'해 두었다고 적혀있습니다.
공식 후계자를 발표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들 김정일의 승계가 확정될지, 북한의 정책 계속성이 유지될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김정일의 건강이나 성격 등에 대해 탐문이 활발해집니다. 외무부는 7월 12일 북한에 공관을 둔 국가에 주재하는 대사관에 주재국의 평양 주재 공관을 통해 입수된 북한 동정을 파악해 보고할 것을 지시합니다.
페루 친북협회 사무총장은 "최근 김정일 체중이 20kg이나 감소하는 등 건강이 매우 악화됐다"며 "주재국에서 생산된 약초와 자연요법 치료사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주일 한국대사와 면담한 당시 주일 미국대사는 김정일에 대해 "자신이 보기에는 약간 멍청하고(Goofy) 어린애같아(Childish) 지도자로는 부족한 것 같다"고 평가합니다. 김정일이 심장이 약하고, 말에서 떨어져 다쳤다는 설도 퍼집니다.
주미대사가 작성한 보고 문서에는 '김정일의 정책 성향이나 역할에 대해 불분명하다'고 적혀있습니다.
미국 내 예측은 상반됐습니다. 국무부는 김정일이 과거 북미 협상에서 일정 역할을 했기 때문에 김일성 정책의 계속성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중앙정보국(CIA)은 알려진 김정일의 성향(과격성, 불가측성 등)으로 보아 그렇지 않을 거라고 분석합니다. 미국가정보위원회(NIC) 고위 관계자는 "수년 내 김정일 반대파가 김정일을 제거하는 시나리오가 가장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언급하는 등 권력 승계 이후 북한 내부 체제가 위기에 봉착할 거라는 견해도 나왔습니다.
■ 남북정상회담 무산... 북미 제네바 합의 평가는?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7월 25~27일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남북 정상회담은 무산됐습니다. 남북은 6월 28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예비 접촉 이후, 7월 1일과 2일 실무 절차를 합의했습니다. 7월 8일은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오전 10시, 남북 경호 실무자들이 만나기로 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8일 새벽 2시 김일성 주석의 사망에 따라 북한은 7월 11일 남북한 최고위급회담 연기를 통보합니다.
이후 1994년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간 협의는 진전을 이룹니다. 1993년 1단계, 2단계 회담에 이어 1994년 10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3단계 회담이 열리고, 북미 간 기본합의서에 서명한 '제네바 협의' 당시 상황도 올해 공개된 외교문서에 담겼습니다. 5년 전 외교문서를 공개할 때 일부 비공개 처리됐던 1989년 '무라야마 일본 총리 특별담화' 내용도 검토를 거쳐 올해 공개 문서에 포함됐습니다.
정부는 국민 알권리 보장과 외교 행정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생산된 지 30년이 지난 외교문서를 해마다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1989년, 1994년 외교문서 원본은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 열람실'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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