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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선 기독교인의 입에서 온갖 혐오와 배제의 언어가 흘러나온다. 특정인을 구세주 삼고 상대를 악마화하는 정치 논리가 복음을 대체한 탓이다. 같은 기독교인이라도 정치 성향이 다르면 말조차 섞기 어려운 게 작금의 현실이다.
거짓 선동과 분노의 정서가 교회 공동체에 깊게 자리한 데는 근본주의 신학의 영향이 적잖다는 게 전문가의 중론이다. 국민일보 ‘책과 영성’은 근본주의 신학이 한국 기독교에 끼친 영향과 전체주의가 기독교에 미치는 폐단에 대해 다룬 책 4권을 분석한다. 책 선정을 위해 이재근 광신대 역사신학 교수와 배덕만 느헤미야 기독연구원장, 김진혁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 조직신학 교수에게 자문했다.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대장간)는 배덕만 원장이 미국과 한국의 근본주의 형성사를 시대별로 밀도 있게 고찰한 책이다. 정치 신학 관련 저서와 역서를 여럿 출간한 신학자이자 목회자인 그는 2010년 펴낸 이 책에서 “한국 개신교가 근대화 과정에서 행한 수많은 공적에도 근본주의적 속성 때문에 우리 사회·문화에 건강하게 뿌리내리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특히 신학과 윤리, 사회적 측면에서 근본주의를 조명하며 권력과 자본에 취약한 한국교회 현실을 비판한다. 근본주의의 대표적 해악을 ‘분열과 갈등의 촉매’로 보는 저자는 한국교회가 “복음의 자리로 돌아가 사회를 향한 ‘비판적 예언자’가 될 때 ‘개독교’란 오명을 벗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재근 교수가 2015년 펴낸 ‘세계 복음주의 지형도’(복있는사람)는 세계 교회사적 관점에서 근본주의를 설명한다. 교회사학자인 저자는 복음주의 정의와 그 분파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20세기 복음주의가 저항해온 지류 중 하나로 근본주의를 든다. 국내 복음주의권에 근본적인 성향이 짙은 이유로는 미국 교회의 영향력을 꼽는다.
저자의 또 다른 책인 ‘20세기, 세계, 기독교’(복있는사람)에는 국내 개신교 근본주의자의 전형(典型)을 보여주는 인물이 나온다. 미국 신학자 칼 매킨타이어다. 반복음주의뿐 아니라 반공·반세계교회협의회 운동에도 앞장선 매킨타이어는 1950년대 미국 사회를 휩쓴 매카시즘에 적극 협조해 ‘종교적 우파의 기원’이란 평을 받는다. 한국교회에도 영향을 끼쳐 국내 수많은 장로교 분열에도 깊이 관여했다.
“하나님이 아돌프 히틀러 총통을 곤경에 빠뜨리지 않을 거라 믿어요.” 디트리히 본회퍼 등 나치에 대항한 독일 신학자 5인의 설교를 모은 책 ‘역사의 그늘에 서서’(감은사)에 실린 한 독일 군인의 말이다. 전투 중 팔 한쪽을 잃은 한 청년이 희대의 전범을 찬양한 데는 나치의 기만전술이 있었다.
히틀러는 수상 취임 초기 연설에서 “하나님은 독일 민족주의에 대한 신성한 보증”임을 누차 강조했다. ‘기독교는 민족의 도덕적 토대’라고 명시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들의 말에 기독교가 선전용뿐이었다는 게 밝혀지는 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이 책의 저자들은 국가와 종교 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겪는 독일 기독교인에게 “나치 아닌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르라”며 목숨 걸고 설교했다. 루터교 신학자 헬무트 골비처는 나치의 최초 유대인 학살 사건인 ‘수정의 밤’에 관한 설교에서 “스스로 기독교인이라 여기면서도 회개하라는 말에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면 적어도 그는 자기가 하나님의 기준을 정치적 선전과 맞바꿨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일갈한다. 읽을수록 “시대나 상황이 변해도 진리는 언제나 도전적”이라는 편집자 딘 스트라우드 위스콘신대 독일학 명예교수의 말이 체감된다.
‘근본주의를 파헤친다’(가스펠투데이)는 한국 기독교 근본주의 신학을 신학적·목회적 관점으로 분석했다. 집필에는 안교성 임희국(장로회신학대) 교수와 이상학(새문안교회) 지형은(성락성결교회) 목사 등 신학자와 목회자 10명이 참여했다. 향후 한국교회 선교 방향을 조언하는 한국일 은퇴 교수의 진단과 대안이 인상 깊다.
“개신교 전래 초기 한국 사회에 희망을 준 강력한 신앙은 교회에 활력소로 작용했지만 이제는 그 역기능이 심해 개신교 이미지가 끝모르게 추락하고 있다.… 선교적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배타주의적 근본주의 신앙을 극복하고 새로운 개신교 정체성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