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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외상센터' 원작자·의사 이낙준
의사로 시작해 웹소설로 이름을 드높이고 135만 팔로워를 둔 유튜버가 된 이낙준 작가. 글로벌 대박을 터뜨린 '중증외상센터'의 원작자다. 전민규 기자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의 영어 부제(副題)는 "Heroes on Call", 영웅들은 긴급 대기 중이란 뜻이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촌각을 다투는 중증외상센터 의료진의 고군분투를 담은 이 드라마는 국내는 물론 해외 시청자들로부터도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지난 1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지 사흘 만에 글로벌 TV쇼 비(非)영어 부문 3위에 오르더니 한 달 뒤에는 1위를 차지했다.
시청자 만족도 역시 82점으로 높았는데, 생명에 직결되는 필수의료 현장의 중요성과 고뇌를 생생히 담아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원작소설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에 힘입은 바 크다. 원작자인 이낙준(40) 본인이 의사인데다, 드라마 집필 전 취재에도 6개월 넘게 공을 들였다. 그는 어린 시절 드라마 '하얀 거탑'을 보고 외과 의사를 꿈꾸며 의대에 입학했다. 졸업 후엔 외과가 아닌 이비인후과 전문의의 길을 택했는데, 그 사연에도 필수의료 현장의 눈물이 녹아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중증외상센터'의 한 장면. 이런 긴급한 드라마 속 장면은 필수의료 현장에선 일상이다. 사진 넷플릭스
그는 동료 의사들과 함께 유튜브 '닥터프렌즈'를 진행하는 인기 유튜버이기도 하다. 지난 25일 그의 스튜디오 한쪽엔 100만 팔로어를 돌파한 유튜버만 받을 수 있는 골드 버튼이 반짝거렸다.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의·정 갈등 때문일까, 그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Q : 드라마와 소설로 중증외상센터의 고뇌와 함께 의사의 본령이 무엇인지를 환기시켰다는 평이 나옵니다.
A :
"워낙 고생하는 현장 의료진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 기쁩니다. 바이털(vital·생명)을 다룬다는 그 엄중함의 무게를 알리고 싶었어요. 저는 지금 상업 작가로 나섰지만, 제 작품이 이렇게 기여하게 된다면 기쁜 일입니다." 그는 의대에 입학한 뒤에도 외과를 선망했으나 마음을 접었다고 했다. 레지던트 시절 목격한 테이블 데스(death on the table·수술 중 사망)의 충격 탓이다. 놓고 온 물건을 가지러 수술실에 밤늦게 갔다가 귀가하지 못하고 테이블 데스를 자책하던 집도의의 뒷모습을 봤다고 했다. "그날 느꼈어요. 아, 나는 바이털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과는 못 하겠다." 그럼에도 외과에 대한 부채 의식은 마음 한쪽에 남았고,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 집필의 원동력이 됐다.
'중증외상센터' 포스터
Q : 중증외상센터 같은 필수의료 현장의 현실은 어떤가요.
A :
"(잠시 침묵 후) 너무 힘들죠. 일단 다들 법적 소송 하나둘씩은 당하고 있는데 어디에서도 보호해 주고 있지 않아요. 중증외상센터의 특성상 참 힘든데, 지금 같은 상황에선 (개선이)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Q : 왜일까요.
A :
"우선 (정부와 정치권이 의료계) 현장 목소리에 너무 관심이 없어요. 정부 입장에선 굳이 필수(의료)를 굳이 더 살리려고 하지는 않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중증외상센터에 오시는 환자분들의 예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이송 속도입니다. 예산이 뒷받침돼야 하는 부분인데 관심이 다들 별로 없어요. 대화도 안 되고 예산은 계속 삭감되기만 하고요." Q : 일부의 경우 의료 소송으로 이어지지요.
A :
"제가 레지던트 때만 하더라도, 소송은 교수님이 당하는 거였는데 요즘엔 힘없는 계약직인 레지던트도 똑같이 당한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현장 이탈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고, 후배들도 필수의료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더 망설이게 될 수밖에 없죠. 법적 보호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다행히 요즘 그런 움직임들이 있어요. 중증의 경우라면 의도적인 경우가 아니라는 걸 의료진 과실 판단에 넣는 등의 특별법 개정 발의 움직임입니다. 서두르지 말고 의료진뿐 아니라 사회 모든 구성원의 목소리를 찬찬히 듣고 소통하며 법제화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갑자기 무슨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불도저로 해치우려 하지 마시고 천천히 논의돼야 해요." 이낙준 작가는 처음엔 의정갈등 현안에 대해선 침묵을 지키려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전민규 기자
Q : 피부과와 성형외과로 몰리는 건 팩트 아닌가요.
A :
"그럼에도 필수 과를 선택하는 친구들은 여전히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의사들은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필수 과를 선택하지 않아요. 개인적으론 필수 과라는 말은 좋아하지 않고, 모든 게 필수의료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하여튼 필수 과라고 하는 곳에 의사들이 안 가는 이유를 두고 많이들 금전적인 거 아니냐고 하시잖아요. 아닙니다. 특정 병원을 지원하지 않는 이유는, 돈에 눈이 멀어서가 아닙니다." Q : 그럼 왜인가요.
A :
"필수 과를 택한 이들은 '내가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정도가 된다'면 그냥 하는 친구들이에요. 의사가 없다는 병원의 실상을 보면 혼자 24시간 당직을 1주일에 며칠 이상, 때론 연속으로 서야 하는 등 근무 환경이 열악한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인간적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인 병원들인 거죠. 오히려 그 옆에 더 적게 받아도 더 인간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병원은 의사들이 갑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더 들어주시고 인식 개선이 이뤄졌으면 합니다. '왜 안 하느냐?'고 물으시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왜 안 할까?'라고 물어봐 주시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는 의사의 입장에서만 이야기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작가로서 과로했기 때문인지 망막박리 수술을 받은 환자이기도 했다. 실명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겪은 그는 "환자 입장에선 본인이 겪고 있는 상황이 가장 급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잘 안다"고 말했다.
Q : 중증외상센터 등 필수의료 분야 발전을 위해선 뭐가 가장 시급한가요.
A :
"우리나라가 암 치료에선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세계 10대 센터 안에 3곳이 한국에 있어요. 의료 수준이 낮지 않다는 것이죠. 역량이 없어서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겁니다. 지원해야 할 필요를 못 느끼는 거죠. 중증외상센터 같은 경우엔 사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는 부분이 있는데, 사실 개선돼야 하는 건 한두 가지가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골목길에 앰뷸런스가 못 들어가는 것부터도 다 정비해야 하고, 헬기 이착륙 시 주민의 불편 최소화 등 여러 사람의 의견을 잘 들어서 차근차근 소통하며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요." 대전의 한 의과대학 강의실이 지난 17일 텅 비어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Q : 의·정 갈등, 안 물어볼 수 없는데요.
A :
"지금 너무 큰 대가를 치르고 있죠. 중증외상외과 같은 곳은 이미 10년 전으로 퇴보한 상태가 돼 버렸습니다. 예방 가능했던 사망률도 올라가고 있고요. 현장에 사람이 없으니까요. 지속가능성이 안 보이는 상황이니 후배들도 더 안 들어오죠. 하지만 진짜 무서운 게 또 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 뭔가요.
A :
"의료보험료 고갈 문제요. 국민연금보다 건강보험료가 더 빨리 고갈될 텐데 여기에 대해 아무도 얘기를 하고 있지 않아요. (목소리 톤이 높아지며) 그게 너무 무섭습니다. 사실 싸고 좋다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건데, 우리 의료는 지금까지 그걸 해왔거든요. 하지만 앞으로 고갈되고 세수는 적어질 상황에서 어떤 결과가 올지 두려운 거죠." Q :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
"이것 역시 방 안의 코끼리를 못 본 척하는 건 그만두고, 공론화하고 천천히 시간과 공을 들여 소통해야 한다고 봅니다. 자꾸 없는 척, 얘기를 안 하니까 문제가 더 커지는 것이죠. 그러다 갑자기 벼락치기로 해결하려고 하면 충격파를 키울 뿐입니다." Q : 지난해 저희와 인터뷰에서 "코로나19보다 더 큰 팬데믹이 올지 모른다"고 해서, 그 얘기일 줄 알았습니다.
A :
"그 생각은 지금도 같습니다. 이미 미국에선 젖소에서 조류독감이 돌고 있어요. 소는 웬만해선 조류독감에 뚫리지 않을 거라는 의학적 예상을 깬 거죠. 신종 감염병이 생겼다는 건 대단히 우려스럽습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신종 감염병이 보고되고 있고, 어느 하나라도 우연히 번지게 된다면 우리는 또 팬데믹과 싸워야겠죠. 불행 중 다행은 우리가 코로나19 사태라는 백신을 맞았다는 겁니다. 아마 다음엔 더 잘 싸울 수 있을 거예요." 이낙준 작가는 의학 역사서 집필활동도 하고 있다. 위의 삽화는 그가 지난해 펴낸 『닥터프렌즈 오마이갓 세계사의 일부 』. 사진 김영사
Q : 의사로서, 유튜버로서, 작가로서의 삶은 어떤가요.
A :
"의사로서의 삶은 치열했고, 유튜버의 삶은 새로움의 연속이었어요. 작가로서의 삶은 즐겁고요. 나만의 이야기, 나만의 인물을 창조하는 건 큰 즐거움입니다. 지금은 진료를 못 본 지 꽤 됐어요. 글을 쓴다는 게 즐겁습니다.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무협소설에도 언젠가 도전해 보고 싶어요. 하지만 무엇 하나 제가 미리 계획해서 된 건 없어요. 우연이고 운이 좋았습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이런 길도 있었구나, 싶어요. 인생엔 정답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