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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더미 된 청송군 파천면 가보니]
집 수십 채 전소, 희생자 안치 장례식장도 불길
연기 피어나는 주왕산 "사수하라" 방어전 총력
27일 경북 청송읍 파천면에서 한 이재민이 화재에 초토화된 마을을 허망히 둘러보고 있다. 청송=문지수 기자


청송(靑松). 푸른 소나무란 뜻이다. 경북 청송군은 이름처럼 마을 전체 면적의 80% 이상이 산림이다. 전국에서 공기가 가장 깨끗해 '산소 카페'라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경북 북부 지역을 휩쓴 화마로 청송은 '잿빛 마을'이 됐다. 수십 채의 집이 전소됐고 화마가 내뿜은 연기 탓에 하늘은 하루 종일 흐렸다.

폐허가 된 '청정 마을'



27일 청송 파천면 병부리로 돌아온 김정숙(66)씨는 와락 눈물을 쏟았다. 불길을 피해 임시대피소로 피했다가 화마가 지나갔다는 소식에 돌아왔지만, 40년 넘게 살았던 집은 폭삭 주저앉아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평생을 바쳐 열심히 가꿨던 1만㎡(약 3,000평) 사과밭에선 연기만 피어올랐다.
창고 문은 안쪽에서 타 죽은 염소 사체가 쌓여 열리지 않았고, 겨우 목숨을 건진 소들은 까맣게 그을려 자꾸만 부스러지는 여물만 씹었다.
"
이게 뭐고… 선하게 사는 데 왜 이러노 이칸다.
" 김씨는 고개를 떨궜다.

27일 경북 청송읍 파천면에서 화재에 전소된 한 주택의 문고리가 불길에 녹아있다. 청송=문지수 기자


이날 한국일보가 둘러본 파천면은 '잿더미'였다. 열기에 오그라든 지붕과 트랙터들이 거리 곳곳에 조각나 널브러져 있었다. 대문만 앙상히 남거나, 지붕만 빼고 전소하는 등 수십 채의 집이 타버렸다. 가게 간판들도 전부 녹아버렸다. 청송에서는 사망자가 4명 나왔는데, 이 중 1명이 파천면에서 미처 대피하지 못한 80대 여성이었다.

산불이 군청 바로 뒷산까지 태운 후 청송 시내엔 100m 앞 간판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연기가 안개처럼 깔렸다. 마스크를 내리고 숨을 들이쉬면 목 안쪽이 따끔거려 매운 기침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가까스로 불길을 피한 주왕산국립공원 초입에서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오자 진화용 헬리콥터가 분주히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산 바로 밑에서 농사를 짓는 김모(62)씨는 "원래 약을 치던 농기계에 물을 1,000L씩 담아 산자락부터 밭까지 뿌리며 불이 번지는 걸 필사적으로 막고 있다"고 토로했다.


27일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경북 청송의 한 사과나무 밭이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다. 청송=문지수 기자


화마, 천년고찰·장례식장도 위협



문화재도 화를 면하지 못했다. 청송에선 국가민속문화유산인 송소 고택의 별당과 현문 등이 불에 그을렸고, 경북 민속문화재인 사남고택도 전소됐다. 천년고찰 대전사는 거듭된 화재 주의보에 석탑 등을 뺀 문화재를 반출하고, 불이 옮겨붙기 쉬운 풍등을 제거하는 등 방어전에 나섰다. 대전사에서 만난 한 스님은 "이 경관이 사라지면 청송군 자체가 크게 흔들릴 거 같아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번 산불 희생자 3명의 시신이 안치된 장례식장도 하마터면 화를 입을 뻔했다. 이틀 전인 25일 청송군보건의료원 장례식장 뒷산까지 산불이 번진 탓이다. 의료원 직원인 70대 배모씨는 "모든 직원이 소화기뿐 아니라 플라스틱 쓰레기통과 냄비에 물을 퍼 와 끼얹는 등 몇 시간에 걸쳐 (화재를) 진압했다"고 전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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