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 자동차 관세를 발표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각) 미국 밖에서 만드는 자동차에 예외 없이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현대자동차그룹 등 국내에서 완성차를 만드는 기업들도 다음달 3일 발효할 관세를 부과받게 됐다. 트럼프는 현대차그룹의 미국 조지아주 공장 준공식에 맞춰 이번 발표를 함으로써 ‘미국에서 팔려면 미국에서 만들라’는 관세 정책의 홍보 효과를 높이는 모양새도 연출했다.
트럼프는 이날 “우리 나라에서 사업을 하면서 일자리를 빼앗고, 부를 빼앗고, 많은 것들을 빼앗는 나라들에 비용을 물리겠다”며 자동차 관세 부과를 발표했다. 그는 또 “그들은 친구든 적이든 우리 나라에서 너무 많은 것을 빼앗았다. 솔직히 많은 경우 친구가 적보다 훨씬 나쁘다”고 주장했다.
트럼프가 여러 차례 예고해온 자동차 관세의 발표 시점은 때마침 현대차가 생산 능력을 연간 50만대까지 늘리기로 한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의 준공식을 한 날이다. 앞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24일 백악관에서 자동차와 제철 등 분야에서 미국에 210억달러(약 30조7천억원) 규모의 투자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는 이 자리에서 “현대차는 위대한 기업”이라며 투자를 크게 반겼다.
트럼프는 현대차의 투자 발표 때 미국에 투자하기 때문에 “관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 생산품에는 관세를 매기지 않겠다는 원론적 발언이라는 게 일반적 해석이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현대차가 자동차 관세 발표를 앞두고 대규모 투자를 선언했기 때문에 트럼프가 어떤 식으로든 보답을 하지 않겠냐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발표로 현대차는 미국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면서도 관세 문제를 두고는 인센티브를 받지 못한다는 점이 드러났다. 트럼프가 임기 말까지 자동차 관세를 유지하겠다고 밝히기는 했어도 언행이 자주 바뀌는 그의 특성 때문에 정책이 변할 가능성도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국 자동차 업계부터 챙기는 미국 행정부가 외국 기업을 특별히 배려하지는 않을 공산이 커 보인다. 다만 현대차로서는 대규모 투자가 앞으로 현지 생산시설 설치 등과 관련해 유리한 대우로 이어질 가능성 정도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며칠 안에 자동차 관세를 발표하겠다고 밝힌 시점도 공교롭게도 24일 현대차의 대미 투자 발표 자리였다. 트럼프는 정 회장과 함께한 자리에서 “아마 며칠 안에” 자동차 관세를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결국 트럼프는 현대차의 대미 투자 발표일과 조지아주 공장 준공일에 맞춰 전 세계를 상대로 한 고율의 자동차 관세를 예고하고 발표한 셈이 됐다. 그 과정에서 현대차의 대미 투자는 ‘관세를 부과받지 않으려면 미국에서 생산하라’는 그의 주장에 현실감을 불어넣는 소재로 이용된 측면이 있다. 현대차는 자동차 관세나 상호관세 부과를 앞두고 트럼프의 기조에 적극 부응하는 발표를 한 셈인데, 트럼프로서는 이런 발표의 ‘단물’을 잘 빨아먹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