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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에스비에스 플러스’ 갈무리


서보미 | 뉴콘텐츠부장

예능 프로그램 ‘나는 솔로’(이엔에이·에스비에스 플러스)를 다 챙겨 보진 않지만, 유튜브 알고리즘 덕분에 기수별 화제 인물은 얼추 알게 되는 편입니다. 얼마 전 방송이 끝난 24기에서 셀럽이 지독한 ‘옥순바라기’였던 영식이었다면, 현재 방송 중인 25기에서 핫한 인물은 의사 광수입니다.

‘광수 알고리즘’에 이끌려 1986년생인 39살 광수가 1988년생인 37살 여성 미경을 처음 선택한 뒤 일대일 데이트를 하는 장면까지 보게 됐습니다. 그가 호감 가는 여성에게 맨 처음 던진 질문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여성이 출산할 수 있는 시기가 있는데, 압박감을 느끼시나요?” 여성은 당황하면서도 “아직까지 제가 건강하다고 생각하는데, 조급함은 조금 있는 것 같다”고 대답합니다.

데이트 뒤 인터뷰에서 광수는 “그 정보가 제일 궁금했기 때문에 무리하게 (질문을) 시도했다”며 “내 성장이 이제 끝이라면 멀티플라잉(번식 또는 증식) 해서 (나를) 확장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질문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여성의 출산 가능 나이를 모를 리 없는 의사가 굳이 확인하려 했던 정보가 여성의 몸 상태인지 출산 의지인지 궁금하지만, 여기서 따져 묻지는 않겠습니다.

어차피 과거에도 나는 솔로나 스핀오프(파생작) ‘나는 솔로, 그 후 사랑은 계속된다’엔 “여성의 나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남성이 종종 출연해왔습니다. “나는 아기를 갖고 싶은데, 넌 다 좋지만 나이가 단점”이라고 대놓고 말하는 남성도 있었습니다.

나는 솔로가 ‘결혼을 간절히 원하는 솔로 남녀들의 극사실주의 데이팅 프로그램’을 내세우고 있으니, 방송에서 보이는 일부 남성의 태도도 현실을 그대로 반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솔로가 아니라 잠깐 잊고 지냈지만, 2025년에도 광수처럼 ‘남성은 번식 본능에 따라 생식 능력 높은 여성을 선택할 수 있다’는 당당한 태도로, 자신보다 젊은 여성의 ‘노산’(고령 출산)을 걱정하는 남성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어린 여성과 사귀어 성공을 과시하거나, 약한 존재를 보호한다는 만족감을 얻으려는 남성도 적지 않을 겁니다.

가장 큰 문제는 ‘멀티플라잉’과 같은 단어를 공들여 ‘자식’으로 번역해가며 방송을 내보내는 제작사나 방송사에 있습니다. 이번 나는 솔로에서도 제작진은 여성을 도구적으로 대하고, 사람을 나이로 차별하는 광수의 말을 편집하기는커녕 “출산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라거나 “끝없는 성장을 꿈꾸는 마음”으로 포장했습니다.

남성은 나이가 들어도 돈과 사회적 지위, 권력이 있으면 어린 여성과의 사이에서 출산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한 방송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지난해 말까지 방영된 채널에이 ‘아빠는 꽃중년’엔 당시 78살 배우 김용건씨를 비롯해 평균 나이 59.6살에 육아하는 연예인 아빠들이 나왔습니다. 남성이 출산을 쉰에 하든 환갑에 하든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걸 소재로 한 예능은 전혀 웃기지 않습니다.

하다 하다 이젠 여성의 나이에 ‘15살 이하’라는 제한을 둔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까지 등장했습니다. 오는 31일 방송 예정인 엠비엔(MBN)의 ‘언더피프틴’(under15)엔 8살, 9살 여성은 나오지만 16살 여성은 나올 수 없습니다. 어린 여성이어야만 원하는 걸 이룰 기회가 주어지는 구조는 데이팅 프로그램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행히 방송사는 “아동을 성적 대상화 하는 방송을 취소하라”는 여성단체의 요구를 검토하겠다고 하는데, 제작사는 반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여성 나이 타령을 하는 남성이나 방송이 더 늘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2024년 출생·사망통계(잠정)’를 보면 지난해 출산한 여성의 평균 연령은 33.7살로, 1년 전보다 0.1살 높아졌습니다. 태어난 아이 10명 중 3.6명은 35살 이상 고령 산모의 아이였습니다.

혼자 살아남기에도 버거운 일상이 계속되면 출산율은 낮아지고, 출산 연령은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번식’이 더 힘들어지면 일부 남성은 더 노골적으로 출산 가능한 여성을 찾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상상도 하기 싫은 그때 “아이 낳을 수 있냐”는 무례한 질문을 받지 않아도 돼서, 솔로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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