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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전혀 뜻밖의 조합처럼 보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남들은 차마 생각하지 못하는 수단들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냉철하고 합리적인 실용주의자들이라는 점이다. 흔히 트럼프 대통령을 어디로 튈지 모른다고 하지만, 그는 압도적인 힘을 바탕으로 윤리적 고민 따위 없이 상대의 기를 꺾는 행동을 할 뿐이지 실제로 파국적인 선택을 한 적은 없다. 두 대의 자동차가 마주 보고 달리는 치킨 게임에서 내 차가 탱크라면 끝까지 핸들을 꺾지 않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이 대표의 일관된 정치적 선택은
‘사법 리스크 탈피’와 ‘대통령 되기’
천막당사 설치하고선 ‘투쟁’ 표명
조기 대선 위한 헌재 겁박 아닌가

이재명 대표도 마찬가지다. 유력 대선주자로 분류되기 시작한 이래 오늘까지 그의 선택은 늘 예측 가능했다. 그의 목표는 1차로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는 것, 다음으로는 대통령이 되는 것에 맞춰져 있었다. 여당의 대선 후보가 국민을 90대 10으로 가르는 것을 대표 공약으로 내세운다든지, 대선에서 아슬아슬하게 낙선한 후보가 성찰의 시간조차 없이 석 달 만에 국회의원 신분을 획득한다든지, 그리고 두 달 만에 당대표가 되고 총선에서 논란으로 점철된 친명 공천을 강행한다든지 하는 것들은 과거의 정치 지도자들은 ‘알더라도 차마 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자신의 목적에 거슬리는 정치인들의 일상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의 강력한 힘을 가진 강성 지지층을 묵인 방조한 것이 큰 힘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방식이 직접민주주의라고 강변했지만, 그것은 유사 이래 모든 정치사상가들이 독재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경계했던 길이다.

거대 야당이 광화문에 천막당사를 차리고 투쟁의 근거지로 삼는다는 말을 듣고 그 말 자체를 이해하는 데에만도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행정부의 장인 대통령은 이미 직무정지 되어 탄핵심판을 기다리고 있고, 30번의 탄핵에서 보듯이 입법부를 마음대로 휘두르는 거대 정당이 도대체 누구를 상대로 ‘투쟁’한다는 것일까. 이미 현실 세계에는 투쟁의 대상이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유령이랑 싸우겠다는 것일까. 한덕수 권한대행의 탄핵기각 이후 ‘보이지 않는 손’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니, 이들은 혹시 엘리트 카르텔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음모론에라도 빠져 있는 것일까.

유령도 아니고 카르텔도 아니다. 목적은 딱 하나. 헌재를 겁박하겠다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을 반드시 인용하라는 것, 그것도 하루라도 서둘러서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판결이 끝나기 전에 대선을 치를 수 있도록 하라는 뜻이다. 이러한 행위는 비록 불법은 아니라 할지라도 삼권분립을 규정한 헌법 정신에는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한덕수 권한대행이 “여야 합의가 있어야 헌법재판관을 임명하겠다”고 한 것은 사실상 정치가 해야 할 책무를 대신 말한 것일 뿐이다. 그동안 여야 정치인이나 관련 분야 전문가를 막론하고 한국에서는 유럽과 같은 합의정치의 문화와 제도가 크게 부족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해오지 않았던가. 합의정치 공부한다고 국민 세금으로 유럽 여행 다녀온 국회의원만 해도 수백명은 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합의정치의 부재는 극단의 정치로 치달아버렸고, 그 결과가 오늘날의 극단적인 상황이니 윤석열과 이재명은 정치적 과오의 공범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반백 년 지켜본 권한대행이 여야 합의를 요청한 것은 충정이라고 할 밖에 없다. 이미 20여 년 전 노무현 정부에서 관료의 최정상인 국무총리를 지냈고 세월이 흘러 이 어려운 상황에 두 번째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는 70대 후반의 노관료가 어떤 사적인 야망을 앞세우겠는가.

이재명 대표가 결국 대선에 출마할지 못 할지, 만약 출마한다면 당선될 수 있을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만약 당선된다면 그의 임기는 진행 중인 여러 재판의 정지나 효력 여부를 둘러싼 갈등, 그 상황을 원천무효로 만들려는 무리한 입법 시도와 국회 마비, 그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동원했던 극단의 정치에 따르는 중도층 이반이라는 대가 등으로 점철될 것이다. 만약 대선으로 가는 길 어디에선가 멈추어야 하는 상황이 된다 하더라도 그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어제(26일) 선거법 위반 사건 2심 판결에서 무죄 선고가 나오긴 했지만, 이미 친명계 내부에서는 2심에서 피선거권 박탈 판결이 나올 경우 오히려 더 서둘러 그를 대선후보로 선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공식적인 제1야당 후보가 되면 감히 대법원이 건드릴 수 있겠느냐는 또 다른 겁박을 준비했던 것이다.

참담해서 신문을 펼치기 어려운 요즘이다. 추락, 화마(火魔), 땅꺼짐, 계엄, 탄핵, 투쟁에 이르기까지. 이 고통의 카오스가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나라가 완전히 추락하기 전에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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