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트랙터 1대가 서울 경복궁 서십자각 천막농성장 인근까지 진입한 26일 경찰이 트랙터 견인을 시도하자 농민과 시민들이 막아서며 대치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email protected]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소속 트랙터 1대가 26일 새벽 서울 도심에 진입해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했다. 경찰이 트랙터 견인을 시도하자 농민과 시민이 막아서며 대치했다.

이날 오전 4시15분쯤 서울 종로구 경복궁 서십자각 천막농성장 인근에서 전농 소속 트랙터 1대가 발견됐다. 경찰은 이 트랙터가 전날 열린 전농의 상경 시위에 참여했다가 서울 진입이 경찰에 가로막히자, 밤사이 트럭에 실려 우회로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했다.

법원은 지난 24일 전농이 서울경찰청을 상대로 신청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과 관련해 트랙터를 이용한 행진을 금지하고 트럭은 20대까지만 서울 진입을 허용했다. 이에 25일 경찰은 서울 남태령에서 전농 트랙터의 진입을 막아서며 시위대에 해산을 요구했다.

남태령에서 철야 집회를 하던 시민들도 광화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경찰이 광화문에 도착한 트랙터를 강제로 이동시키려 하자 시민들은 스크럼을 짜고 “‘트랙터 상경 시위’를 막아서지 말라”고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탄핵촉구’ 집회 관계자 1명이 연행됐다.

이날 오전 8시쯤 되자 트랙터 인근으로 모여든 시민과 농민은 400여명으로 불어났다. 경찰은 기동대 버스로 시위대 인근에 차벽을 둘러 시민들의 추가 접근을 가로막았다. 오전 8시40분쯤 방패를 든 경찰들이 시위대로 향하는 시민들을 막아서자 시민들은 스크럼을 짜고 트랙터 주위를 에워쌌다. 곳곳에서 “경찰이 포위하려 한다” “팔짱 낍시다” 하는 외침이 들렸다. 시위대 밖에서는 자원봉사에 나선 시민들이 경찰에 끌려나오며 다친 시민들의 손에 약을 발라줬다.

시민들은 “윤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시민들을 서로 지키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전날 남태령에 있다가 새벽에 광화문에 왔다는 백지연씨(31)는 “최근 극우 집회가 판을 치고 있어 걱정돼 나왔다”며 “시민들은 윤석열 파면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 말했다. 대학생 김모씨(24)도 “지난 12월 남태령에서 경찰이 트랙터 유리창을 부수고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것을 보고 걱정이 돼서 나왔다”며 “왜 이렇게까지 트랙터를 막아야 하나”라고 말했다.

탄핵촉구 단체들은 집회를 열고 경찰을 규탄했다. 윤복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은 “트랙터는 평화롭게 농성장 텐트 옆에 주차돼 있었는데,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경찰이 강제로 반출하려 했다”며 “트랙터를 끌고 행진을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집회신고의 범위를 벗어났다는 주장은 잘못됐다”고 했다. 한경례 전국여성농민회 부회장은 “내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농민들은 도저히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상경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며 자진 해산을 촉구했지만 시민들은 “트랙터를 돌려달라”며 연좌 시위를 이어갔다.

경향신문

이예슬 기자 [email protected] 서현희 기자 [email protected]